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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대개 성인 여성들은 이 네 글자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이 아파 가는 곳임에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곳임에도 다른 병원과는 다르게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성인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가 넘는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한마디로 "가기 싫은 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산부인과 이렇게 바꾸자'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산부인과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담은 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30대가 돼서야 산부인과를 처음 가봤다. 아랫배의 통증이 좀 지나치다 싶어도 '생리통일꺼야, 아님 배란통일꺼야, 아님 생리 후통일꺼야…'라며 자위했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암세포까지 떠올리고, 입원하면 만화책을 봐야 하나 상상으로 이어지는 건강염려증 환자로서 나는 웬만해서는 병원을 내 발로 찾아간다(치과 빼고). 병을 키우는 게 꽤 무서운 일이란걸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근데 유독 산부인과는 그렇지 않았다. 피하고 도망치고 멀리하고 달아나고 싶었다. 거의 한 달 내내 아프거나 뻐근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산부인과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 계기가 뭐였을까 되짚어 봤다.

"처녀막 찢어질 수 있는데 검사 할래요?"... 불쾌했다

 한 산부인과 간판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 산부인과 간판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몇 해 전, 건강검진 때 자궁 검사를 앞두고 간호사가 물었다.

"성 관계 경험 있으세요? 혹시 처녀막 찢어질 수 있는데, 검사 하실래요?"

순간적으로 처녀막이란 단어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나한테 묻고 싶은 게 뭘까, 짧은 시간 한꺼번에 물음이 쏟아졌다.

'처녀냐고 묻는 건가. 꽤 아플 것이라고 예고하는 건가. 처녀막이 있느냐고 묻는 건가. 어리니까 처녀여야 한다는 건가... 등'

그리고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불쾌했다. 대상화 되는 기분이기도 했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느낌이었다. 나에게 선택지가 있는가, 날 비난하는 것은 아닌가, 괜히 그랬다. 꼭 단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검사는 안 한다고 했지만 나의 거절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처녀라고 생각할까? 내가 겁이 많아서 못한다고 생각할까? 처녀막이 찢어지는 걸 두려워한다고 생각할까? 그나저나 왜 그걸 물어본걸까?'

나중에 알았다. 삽입성교 경험이 없으면 질초음파 과정에서 심리적인 위축감과 실제 통증이 있을 수가 있는 점, 그리고 질주름(처녀막이란 표현, 잘 생각해보면 꽤 불쾌한 거다. 막이면 막이지 웬 처녀막? 맘껏 비웃고 싶다! 특히 병원에서 그 표현 쓰는 건 더 아니다)이 찢어질 수 있다는 두 가지 이유때문에 묻는 것이었다.

아…너무 거칠다. 그 정보를 알고 싶었다면 조금 더 질문의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줘야 했던거 아닌가.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때 수치심과 당혹감 때문에 궁금한 것을 바로 물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올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 본 1000명의 여성들에게 산부인과 이미지, 경험, 불편했던 말 등을 포함해 산부인과 이용실태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50%가 넘는 여성들에게 산부인과란 곳은 한마디로 "가기 싫은" 곳이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성인 여성들은 산부인과 하면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며 가기 싫다고 말했다.

"왠지 수치심을 느껴서, 부끄러워서."
"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내 스스로 나를 조절 못해서, 기구와 의자가 무섭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름부터 부인과임."
"남자랑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주변 시선이 좋아 보이지 않음."
"평범한 이유에서 가도 내원 사실 자체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 불만이다."
"죄 짓고(섹스를 했다는 것 자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병원의 미용 목적 홍보들이 거슬림, 차가운 기계를 몸 속에 집어넣는 것, 권위적인 의사와의 만남이 싫다."
"육체적 고통이 아닌 심리적 고통이 동반되는 곳, 갈 때까지 맘을 크게 먹어야 함."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위한 곳은 아닌 듯, 진료자세 때문에 돼지 바비큐가 된 느낌이다."
"설명은 안 해주는데 다짜고짜 질초음파 했던 불쾌함 때문에."
"혼전에 산부인과 들어갈 때 뭔가 눈치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함, 질병에 대한 두려움."

산부인과 가는데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

영화 '산부인과'의 한 장면.
영화 '산부인과'의 한 장면.
산부인과도 병원이다. 내 몸의 신호를 체크하고, 아프면 치료하러 가는 곳이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데 생각이 이렇게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산부인과는 그 사회의 성 의식이나 여성 고유 질병에 대한 이해 등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규범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성 의식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다.

단순히 물어봐야 할 질문이니 물어보는데 환자가 예민하게 구는 문제로만 귀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느끼는 과도한 수치심이나 소극성, 위축감이 단순히 환자 개인의 태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최근 유방암,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생식기질환 등 여성 고유의 영역에 속하는 질병의 발병률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30~40대 여성들에게서 발생률이 높았던 자궁근종이 20대 여성들에게서도 빈도높게 발병된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언론은 "흉터 없이 할 수 있는 수술방법"을 보도한다든가, "여성들의 성경험이 많아진다"는 자극적인 보도를 하곤 한다. 여성의 질환 자체에는 집중하지 않는 듯 하다. 근본적으로 왜 여성 질환의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학적·사회조건적 원인 파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는 성관계 시작의 나이대가 낮아지고 출산 시기가 늦어지면서 사회·환경의 조건적 변화에 따른 여성질환 실태의 변화 추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산부인과의 물리적·정서적 문턱을 낮출 필요성이 있다.

단순히 산부인과 의사의 태도를 바꾸는 것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성 환자의 주체성 찾기부터, 의사들의 경우 환자에게 묻는 질문들의 정확한 목적과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배려까지. 여성들이 온전히 자신의 몸의 고통이나 통증에 귀 기울이고, 치료를 위해 방문하는 데 거리낌을 갖지 않는 것이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김희영님은 한국여성민우회(www.womenlink.or.kr) 활동가 입니다.



#산부인과#민우회#한국여성민우회#여성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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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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