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심은 고구마가 100년 만에 한 번 볼 수 있다는 행운의 꽃을 피워 주더니 줄기도 무성하게 잘 자라났다. 그러나 줄기가 너무 무성하여 뿌리가 땅에 내리면 고구마 알갱이가 실하게 들지를 못한다. 그래서 줄기도 들어주어 뿌리가 내리지 못하도록 하면서 따낸 고구마순으로 나물을 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구마 순을 따다보니 어릴 적에 어머님께서 고구마순을 따서 된장 무침을 해주시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어머님이 해주신 된장초무침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군침이 돈다. 매미가 맴맴 울어대며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며 어머님께서는 고구마순을 따서 껍질을 벗기고, 끓는 물에 데쳐서 된장과 식초에 버무려 고구마순 된장무침을 만드시곤 하였다. 그 맛이 얼마나 새콤하고 시금하던지….
고구마순을 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구마줄기를 들어서 잎을 잡아당기기만 하며 고구마순은 뚝뚝 잘 떨어진다. 문제는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고구마 순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셨다. 고구마 잎을 따내고 순을 삶아서 찬물에 식히면 고구마 순이 잘 벗겨진다.
그런데 고구마순을 삶지 않고도 껍질을 벗기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내 친구가 알려준 비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고구마를 막 따내서 바로 벗겨내야 한다. 물기가 댕댕할 때 벗겨내야 잘 벗겨진다.
고구마 잎이 달린 바로 아래쪽을 손으로 비비면 껍질이 일그러지며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껍질을 아래로 벗겨 잡아당기면 껍질이 물보라를 튀기며 술술 잘 벗겨진다. 껍질을 벗길 때 튀겨 나온 물보라 향기는 매우 그윽하고 싱그럽다.
아내와 나는 TV 앞에 앉아 어린 시절 시골에서 고구마를 쪄먹던 일, 고구마 나물을 해먹던 일, 화로 불에 고구마를 구어 먹던 일 등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고구마에 얽힌 이야기는 동화처럼 끝이 없이 많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광주리나 따낸 고구마 순이 어느새 다 벗겨졌다. 한쪽에는 벗겨진 고구만 순이, 다른 한쪽에는 벗겨놓은 고구마 껍질이 산을 이루고 있다. 도심에 살면 언제 우리가 이런 솔깃한 재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는가? 행복은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는 순간에 있다.
"여보, 큰 냄비에 물을 좀 끓여요. 고구마순을 바로 삶아야 하니.""오케이, 물을 얼마쯤 넣을까요?""여러 차례 나누어 삶아야 하니 냄비에 반쯤 차게 해야 겠어요."물이 펄펄 끓여지자 고구마순을 나누어서 데쳤다. 아내는 고구마순을 푹 삶아야 한다고 했다. 완전히 삶아지자 집게로 건져내서 찬물에 식혔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여 삶은 고구마 순을 나물로 묻혀먹기도 하고, 김치를 담아 먹기도 한단다.
아내는 고구마순에 된장, 마늘다짐, 풋고추, 들깨기름, 고추장을 버무려 그 위에 현미식초를 살짝 곁들여 고구마순 된장무침을 만들었다. 고구마순 된장무침을 쌀밥에 버무려 한입 떠 먹으니 맛이 새콤 달콤하다.
고구마순은 섬유질의 대명사로 변비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칼슘, 칼륨, 비타민A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고구마순 된장 무침은 어쩐지 아련하고 행복한 추억시간으로 빠져 들어 가게 한다. 나는 고구마순 한 접시에 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고 행복한 포만감에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