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경화증 환자다. 고혈압과 당뇨 약도 먹고 있다. 약 먹어 가면서 송전탑 저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더럽게 살고 싶지 않다."20여 년 전부터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에 사는 이남우(70) 어르신은 요즘 농성장에서 더 많이 지낸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가 진행하는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일 차려진 밀양시청 앞 '릴레이 단식 농성장'을 지키기도 하고, 산에 올라 공사를 막기 위해 현장을 지키기도 한다. 이 어르신은 "건강을 챙길 겨를도 없다"고 할 정도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 6호기에서 생산될 전력을 수도권으로 가져가기 위해 초고압 765kv 송전탑 건설공사를 벌이고 있는데, 밀양 주민들은 몇 년째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밀양에만 모두 69기의 송전탑이 들어서는데, 밀양 단장․부북․산외면 등 4개면은 대책위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산 위에 오르내리며 공사를 막기도 한다. 지난 1월 고 이치우(74) 어르신이 분신사망한 뒤, 한때 중단되었던 공사가 재개됐다.
이남우 어르신은 공사 저지활동에 나섰다가 한전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남우 어르신은 "끝까지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다음은 21일 오후 이남우 어르신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 힘들지 않으신지?"숨만 쉬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챙길 겨를이 없다. 주민들한테는 너무 긴박한 상황이다. 주민들이 죽느냐 사느냐, 후손들이 죽느냐 사느냐, 밀양 땅이 황폐화되느냐,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하느님 덕분에 숨만 쉬고 산다. 끝까지 할 것이다."
- 송전탑 건설에 왜 반대하시는지?"76만5000볼트의 송전철탑이 지나가게 돼 있다. 그러면 송전탑 경과지 주변은 좌우로 2km씩, 그러니까 4km 이내가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살 수 없고 소돼지며 동물도 사육할 수 없다. 식물도 재배할 수 없게 된다. 전자파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거짓말을 해왔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경기도와 충남 지역에는 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 땅값도 많이 떨어졌다던데?"재산 가치가 폭락한 게 아니고 몰락이다. 더 큰 문제는 전자파로 뒤덮일 밀양 땅을 후손들에게 되물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조상들은 목숨 바쳐 나라와 국토를 지켜왔다. 우리도 조상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밀양을 죽이는 현실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국책사업이니까 협조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는 말이냐. 전자파로 인한 땅을 후손에 되물려 줄 수 없다.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공사를 저지하고 있다."
- 지난 1월 고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시고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주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주민들은 그 뒤부터 용감해졌다고나 할까. 뒤를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 200여 개 사회단체들도 동참하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다."
- 언제부터 밀양에서 살았는지?"20년 정도 됐다.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이다. '뇌동맥경화증'이 있는 환자다. 요양하려고 물 좋은 곳 찾아서 직장 그만 두고 온 지 20년이다. 이곳은 암 환자가 와서 살다가 완치되는 곳일 정도다. 이런 곳은 나라에서 보존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나만 피해를 보고 말라고 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 마을은 신이 만든 땅인데, 사람 사는 곳에 생존권을 위협하는 물질을 왜 넣느냐는 것이다."
- 요즘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시겠는데."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해서 싸운 지 7년째다. 최근에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밀양 4개면 22개 마을 주민들이 거의 대부분 다 그렇다. 70~80살 먹은 노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지에 오르내리고 있다. 3명이 실신해서 입원하기도 했다."
- 마을 공동체가 파괴될 것 같은데?"송전탑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과지 주민들이다. 요즘 한전은 주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한테 피해가 없다고 하면서 꼬드긴다. 젊은 사람들이 한전을 위해 손을 들게 한다. 찬성하는 사람들과 송전탑을 막는 주민들이 싸우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그것이 한전의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공동체의 미풍양속이 짓밟히고 있다. 그것이 더 안타깝고 분통이 터진다. 마을과 마을, 주민과 주민 사이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빨리 공사가 중단되어야 한다."
-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 반대한다는 말도 있던데."한전에서 그렇게 소문을 냈다고 본다. 우리는 보상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상을 받으면 반푼이라도 풀릴지 모르지만, 후손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나. 밀양은 지역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존돼야 한다."
- 그래도 정부가 하는 일 아니냐."국책사업이기에 협조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있더라. 한전은 조폐공사,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과 같이 뒤에 '공사'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한전 지분을 보면 29%만 국가가 갖고 있고, 나머지 71%는 개인이 주식을 갖고 있다. 국책사업이라고 하면 주민은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냐."
- 엄용수 밀양시장과 조해진 국회의원은?"엄용수 시장과 조해진 의원도 출마 당시에는 자기 머리에 철탑을 꽂았지 밀양 땅에는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약을 해놓고 지금은 완전히 나 몰라라 한다. 우리가 오죽했으면 밀양시청 앞에 엄 시장과 조 의원의 이름을 거명해서 펼침막을 내걸어 놓았겠나."
- 송전탑 반대 활동하니까 자녀들은 무엇이라고 하는지?"뇌동맥경화증 환자라는 걸 아이들도 안다. 고혈압과 당뇨 약도 먹고 있다. 약 먹어 가면서 송전탑 저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 더럽게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물론 못하게 한다. 건강 걱정 때문이다. 사나이가 더럽게 살아서 뭐하나."
- 한전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고 하던데."3명한테 10억 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는데, 거기에 들어 있다. 또 매일 100만 원씩을 내라는 가처분신청도 2건이나 받아놓고 있다. 평생 피와 눈물과 땀으로 일구어 온 논밭이고 보금자리다. 그거 다 가져가고 송전탑 세우지 않는다면 흔쾌히 승낙하겠다. 어디 가서 집도 논밭도 없이 거지 행세를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겠다."
-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정당을 초월해서, 민심을 올바르게 헤아리고, 서민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 정치가가 그립다. 정치권에 765 송전탑 백지화에 앞장 서 달라고 호소한다. 이 무더위 속에 할매 할배들이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회에서 진상조사단을 꾸려야 하고, 국회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올 때가지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이것이 순리고 도리다. 주민들은 더위를 무릅쓰고 산에 움막을 쳐놓고 밥을 해먹어 가면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위정자들은 뭐하고 있나. 수십 수백명이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한 명 죽었으면 되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