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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춘천박물관 산책로에서 만나는 석조 유물들. 문인석 등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국립춘천박물관 산책로에서 만나는 석조 유물들. 문인석 등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 성낙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우리나라는 곳곳에 유물이 산재해 있다. 사람들과 차량의 왕래가 잦은 도시는 물론이고, 인적이 드문 강원도 산골의 어느 한적한 길가에도 유물 한두 점이 외롭게 서 있는 것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너무 흔해서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문제다. 밭 한가운데 어린아이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철제 울타리를 둘러쳐 놓은 게 전부인 탑들이 그 자리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을지 안쓰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탑들을 모두 박물관 안으로 옮겨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유 교수의 말은 우리 국토 안에 존재하는 유물과 유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박물관 안에 전시돼 있는 유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듯이, 국토 전체를 하나의 박물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땅 어느 곳에 존재하는 유물이든 함부로 대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다.

세월의 이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유물들, 오랜 풍상에 표면이 서서히 바스러지고 있는 게 눈에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그 유물들은 사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 유물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유 교수가 말한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표현은 '전 국토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로 바꿔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잔편만 남은 양양 선림원지 종. 왼쪽에 있는 종은 불에 탄 종을 원래대로 복원한 것. 통일신라 시대 작품이다.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잔편만 남은 양양 선림원지 종. 왼쪽에 있는 종은 불에 탄 종을 원래대로 복원한 것. 통일신라 시대 작품이다. ⓒ 성낙선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보물창고'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르고도 이 정도인데, 만약에 과거에 그런 불행한 역사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마구잡이로 도굴하고 강탈해간 우리 유물이 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본이 자기네 국보로 간직하고 있는 유물의 상당수가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들이다. 만약에 그 유물들이 지금까지 우리 땅에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아마 우리나라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은 또 '전 국토가 보물창고'라는 말로 바꿔 부를 수도 있다. 박물관에 있는 유물치고 '보물' 아닌 것이 없다. 거의 대부분 '국보' 아니면 '보물'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인 우리나라는 또 그런 국보와 보물이 너무 많아서 무엇이 '진짜 보물'인지를 모르고 지나칠 때도 있다.

들판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있는 보물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이러저러한 이름이 붙은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역시 마찬가지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모두 다 빛을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때때로 '유홍준'이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그 흔한 보물에 관심을 가지려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국립춘천박물관과 어린이문화사랑방.
국립춘천박물관과 어린이문화사랑방. ⓒ 성낙선
전 국토가 보물창고인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보물 한두 점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 보물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그동안 무심히 보아 넘겼던 마을의 유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 별 관심이 없었던 '동네 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인 나라답게 우리나라는 웬만한 지역에 박물관이 하나씩은 들어서 있다. 춘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시 중앙에 상당히 큰 규모의 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름은 '국립춘천박물관'이다. 강원도에서 발굴하거나 기증 받은 유물 2만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박물관 역시 '동네 박물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박물관이지만, '국립'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평소 이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그렇게 많지 않다. 당연히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그래서 동네 사랑방 구실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박물관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박물관 탓이 아니다. 동네에 있는 박물관을 단순히 '동네 박물관'으로 치부하고, 그 무엇 하나 자세히 살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다.

 한송사 터에서 발견된 석조보살좌상.
한송사 터에서 발견된 석조보살좌상. ⓒ 성낙선

국립춘천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보물들

 창녕사 터 나한상 중, 할머니 형상의 나한상.
창녕사 터 나한상 중, 할머니 형상의 나한상. ⓒ 성낙선
국립춘천박물관 역시 소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이 보물들 중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들도 있다. 이 보물들은 이곳을 찾아오지 않고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유물들의 구성은 다른 박물관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는 그 앞에만 서면 좀처럼 다른 유물로 발을 옮겨 딛기 힘든 두 가지 보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한송사 터 보살상(석조보살좌상)'이다. 이 보살상은 순백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유리알처럼 밝은 빛을 띠고 있어 좀처럼 시선을 떼기 힘들다. 부처상과 보살상을 막론하고 이처럼 아름다운 조각상도 드물다. 표면에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지 않았다면 더욱 더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을 것이다. 이 보살상은 어린아이 모양으로 크기가 아담해서 더 정이 간다.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누군가에겐 그 이마에 박힌 보석이 매우 값진 물건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살상은 정작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는 표정이다. 볼과 턱이 도톰한 게 매우 후덕한 인상이다. 명상에 잠긴 듯 지그시 감고 있는 눈이 그 눈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없이 편안하게 만든다.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인데도 전체적인 윤곽선이 하늘거리는 비단만큼이나 부드러워 보인다. 머리에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는 게 또 다른 특징이다. 이 보살상은 국보 제124호다. 고려 전기의 보살상으로 강릉의 한송사 터에서 발견됐다. 이 보살상은 1912년 일본에 밀반출되었던 것을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되찾아왔다.

 창녕사 터 나한상.
창녕사 터 나한상. ⓒ 성낙선

산수가 아름다운 강원도에서 이런 유물을 접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기 힘들다. 이 역시 춘천을 여행하는 또 다른 묘미가 될 수 있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보물은 '창녕사터 나한상'이다. 이 33인의 나한상들은 수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다. 이 나한상들은 나한상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도, 지극히 세속적이다. 인간적인 면이 강하다.

 창녕사터 나한상 중, 바위 뒤에 숨어 무언가를 엿보는 나한상.
창녕사터 나한상 중, 바위 뒤에 숨어 무언가를 엿보는 나한상. ⓒ 성낙선
'나한'은 '최고 깨달음을 얻어 불법을 지키고 대중을 구제하는 임무를 지닌 불교 성자'를 이른다. 그런데 이들 나한상에서는 그런 종교적인 색채를 발견하기 어렵다. 나한상이라기보다는 그냥 '강원도 어느 마을에 사는 한 동네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사실에 가깝다.

나한상들은 모두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한 나한상은 바위 뒤에 숨어 얼굴만 살짝 내민 채 무언가를 훔쳐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할머니 형상을 한, 한 나한상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다. 그 주름이 인간사의 고단함을 말해준다.

이 나한상들을 조각한 인물은 종교보다는 인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가 살아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을 다루는 조각가로서는 천재였던 것이 분명하다. 차가운 돌조각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나한상들은 무엇보다 전체가 한 가족인 듯 친밀한 모습을 하고 있어 더 정겹다.

이 나한상들은 영월 창녕사지 오백나한전 건물터에서 발굴됐다. 만들어진 연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이 나한상들은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보물들 중에 보물이다. 이런 보물을 곁에 두고서 멀리 다른 보물을 찾아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국립춘천박물관은 이 나한상을 전시하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 춘천을 여행하면서 국립춘천박물관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국립춘천박물관 뒷편 야산으로 나 있는 그림 같은 산책로.
국립춘천박물관 뒷편 야산으로 나 있는 그림 같은 산책로. ⓒ 성낙선

내 집 앞, 작은 공원과도 같은 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은 주택가에 접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문턱이 매우 낮다. 편할 때 아무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곳 중에 하나다. 박물관 시설 중 일부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실이나, 놀이터로 사용된다. '어린이 문화 사랑방'은 어린이들이 우리 문화유산을 직접 만들어보는 '문화재 놀이터'다.

 국립춘천박물관 안 어린이도서실.
국립춘천박물관 안 어린이도서실. ⓒ 성낙선
국립춘천박물관은 유물 전시 외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때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진 전시회가 열린다. 지금은 '국립춘천박물관, 10년의 발걸음'이라는 주제로, 2002년 개관 이래 지금까지 박물관이 걸어온 '길'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강원도에 왜 국립춘천박물관이 존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립춘천박물관은 2003년 '올해의 우수건축상'을 수상한 건물이다.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박물관 뒤 야트막한 산 위로 나 있는 구불구불한 산책로도 자못 예술적이다. 짧지만 아름답다. 이 산책로 역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못지않은 보물이다.

박물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매일 아침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애막골새벽시장'이 열린다. 전통시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들러봐야 할 시장이다. 이 시장은 근처 아파트에서 새벽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시장은 산책을 마친 뒤 아침 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로 북적인다.

이 시장에서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비롯해, 소소한 일상용품들이 팔린다. 심지어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파는 사람도 있다. 이 시장은 무엇보다 상인 같지 않은 상인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국립춘천박물관의 나한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춘천박물관, 10년의 발걸음' 전시장.
'국립춘천박물관, 10년의 발걸음' 전시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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