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우리나라 주요 정당 대선 후보가 된 것은 박근혜 후보가 처음이다. 박 후보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드문 기록도 세웠다." <조선일보> 8월 21일 사설."만약 '독재자의 딸'인 박 의원이 대세론을 유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우리 사회는 '박정희 독재 18년'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될 것이다." <한겨레> 8월 21일 정석구 칼럼(논설위원실장)지난 20일 사상 처음으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여성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진보와 보수의 대척점에 선 언론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조선일보>는 21일 사설 '박 후보, 비장한 각오로 자신과 당을 바꾸라'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드문 기록도 세웠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한겨레>는 시각을 달리했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은 기명칼럼 '독재자의 딸 무대에 오르다'에서 박근혜 후보를 가리켜 "독재자의 딸"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만약 '독재자의 딸'인 박 의원이 대세론을 유지하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우리 사회는 '박정희 독재 18년'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보수신문들의 '박근혜 띄우기'
여성이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언론이 크게 부각시킬 만한 이슈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선거기사에서 공정성에 입각한 비판과 검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더욱 그렇다.
아직 대선이 4개월여 남았다. 다른 정당들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특정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 결과를 놓고 마치 대선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홍보하듯 보도하는 보수신문들의 태도가 볼썽사납다. 후보를 극찬하는 보도가 과연 언론의 올바른 태도일까?
<조선일보>와 정치적·이념적 궤를 함께하는 다른 보수신문들 역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애드벌룬 띄우기식 보도를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하 조중동)의 21일자 1면 머릿기사 제목에서 공통적으로 묻어났다. '대통령의 딸, 대통령 후보 됐다'라고 제목에서부터 박 후보를 띄운 <조선>과 경쟁이라도 하듯 <동아>는 "불안의 시대엔 안정된 지도자 필요", <중앙>은 '후보 박근혜, 도전은 이제부터'란 낯간지러운 제목들로 도배했다.
1면 머릿기사에 박근혜 의원의 새누리당 대선 후보 확정 소식과 꽃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띤 모습을 대문짝만하게 편집했다. 1면뿐만 아니라 3~4개 종합면 지면들도 박근혜 후보 확정과 관련된 특집기사들로 가득 채웠다.
내각제라면 박근혜는 벌써 두 번 총리를 지냈을 것? 조중동은 모두 박근혜 후보 이름 세자 뒤에 '대망론', '희망론' 등의 관점에서 제목과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날부터 '새누리 대선후보 박근혜'란 기획특집을 3·4·5면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21일 3면 "제 삶은 대한민국...마지막으로 무거운 책임 다할 것", "불통-고집 이미지는 실체 없는 낙인찍기" 등의 기사에서 박 후보의 수락연설을 비판과 검증기능 없이 내보냈다.
또 4면에서는 '22세 퍼스트레이디…"한 인간으로서의 꿈을 던져야 했다"-대선후보까지 걸어온 길'에서 박 후보의 출생과정에서부터 학창시절, 퍼스트레이디 시절 등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찬사일색의 기사와 사진들에선 마치 대선에서 승리한 듯한 뉘앙스마저 짙게 풍겼다.
<동아일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3면 '박 "우리 주권-안위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 안겠다"', ''민생정책 잘 가다듬으면 야 후보 누가 되든 승산', 4면 "성난 파도 피하니 탄탄대로가...""책임 있는 자리 오르면..", 5면 "말 안 바꿀 거란 믿음 줘" vs "자기 고집의 갑옷에 가려져", '원칙과 소신-공고한 지지기반 자산/중도-2040 끌어안을 정책-비전 필요'란 제목들의 기사에서 박근혜 후보의 따뜻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가 하면 그의 일대기를 지면에 담아냈다.
<중앙일보>도 3면 '박근혜 "국민 대통합 최우선...100% 대한민국 만들 것', 4면과 5면 '교수 꿈꾸다 22세에 퍼스트레이디...천막당사 리더십으로 대선주자 대열에', "확고한 지지 기반 있다 vs "젊고 개혁적 측근 없다" 등의 제목과 기사에서 긍정적인 내용을 주로 담았다.
<중앙일보>는 이에 앞서 21일자 ''주요국 최초 여성 대통령' 될까'란 김진 논설위원 칼럼에서 "한국이 내각제라면 박근혜는 벌써 두 번 총리를 지냈을 것이다"며 "230여 년 동안 미국에 흑인 대통령은 있지만 여성 대통령은 없다. 프랑스와 러시아에도 없다. 브라질·필리핀에는 있지만 이들은 주요국이 아니다"고 크게 의미를 부여한 뒤 "과연 12월에 '주요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 신문의 제목과 기사에선 좀처럼 비판적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줄서기 경쟁을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조선일보>는 특히 박근혜 후보를 위해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했다. 다음날인 22일에도 <조선일보>의 1면과 종합면 3면의 박근혜 특집 시리즈는 계속 이어졌다. 1면 머릿기사 '50% 비박을 향한 헌화'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헌화했다"는 기사와 함께 큼지막한 사진을 내보낸데 이어 3개 면을 특집으로 장식했다. 23일에도 특집기사를 2개면에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22일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박근혜 후보의 사생활 논란을 다뤘지만 내용 자체는 최 목사의 행보와 박근혜 후보 측의 반박 등이 중심을 이뤘다. "대선후보로서 해결할 문제"라고 제기했지만 '해묵은 '최태민 의혹'…박 후보 정치적 고비마다 불거져'란 제목과 "알 수 없다", "본적도 없다" 등 반박 일색의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도 이날 '봉하마을에 간 박근혜'란 제목의 내부칼럼 횡설수설에서 박근혜 측 이야기를 빌어 "국민대통합의 첫 발걸음"이라고 표현했다. 기사는 "살아 있을 때 둘 사이의 앙금과 관계없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이유는 없다"면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도 박정희 묘역을 찾을지 궁금하다"고 뜬금없이 민주당을 쏘아붙였다.
이처럼 보수신문들의 지면에선 비판은 없고 찬사일색 뿐이다. 박 후보의 사진 크기와 기사의 분량만큼 야당 대선 후보에게도 적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런 가운데 보수신문들이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의 딸'로 미화하는 것과는 달리 외신들은 그를 '독재자의 딸'로 잇따라 표현한 점이 주목을 끈다. <로이터> 통신사는 지난 5일 "피살당한 한국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아시아의 경제강국인 한국을 이끌 최초의 여성이 되기 위해 7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미리 준비된 대본에 의지하는 "수첩공주(notebook princess)"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미국 통신사 AP와 프랑스 통신사 AFP도 박근혜 의원을 "독재자의 딸"로 표현해 왔다. 이밖에 <르몽드> <뉴욕타임스> 등 잇따른 외신보도에서 박 의원을 '독재자의 딸'로 소개했다.
박근혜 후보의 과거에 갇힌 역사인식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딸 스베틀리나 스탈리나가 던진 메시지가 새삼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후보가 5·16 군사 쿠데타를 쿠데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과 대조를 이룬다. 그는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거나 "아버지로서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다.
그러나 그건 정확한 답변이 아니다. 정수장학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필립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이자 박 후보는 최 이사장 직전에 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수억원의 연봉도 받았고, 최 이사장이 박 후보에게 수천만 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도 밝혀졌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공익재단이라는 입장만을 되풀이 할 문제가 아니다.
박 후보는 "과거는 묻어두자"고 곧잘 말하지만 이는 대통령 후보가 할 소리는 아니다. 그 과거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신문들과 우리 사회의 보수층은 박정희 개발독재의 향수에 빠져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후보의 높은 지지율도 상당부분 이에 기인하고 있다.
여전히 유신독재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 문제만 나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과거는 묻어두는 게 아니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반성하고 성찰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건 그리 멀지 않은 역사가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