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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항은 방송사업자의 양심의 자유와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에 위배돼 위헌이다."

23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심의 규정을 위반한 방송사업자에게 '시청자 사과 명령'을 내리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조항은 방송사업자의 의사에 반해 시청자에 사과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사업자의 인격권을 제한한다"며 "또 주의, 경고 등의 조치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사과를 명령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MBC가 프로그램 <뉴스 후>에 대해 '시청자 사과 명령'을 내린 방통위를 상대로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고, 이 법원이 직권으로 사과명령의 근거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데 따른 것이다. 방통위는 종합편성체널 허가 등 방송법 개정문제를 다룬 <뉴스 후>의 지난 2008년 12월 20일과 이듬해 1월 3일 방송이 심의 규정을 위반했다며 시청자에 사과하도록 지난 2009년 명령했다.

이번 결정으로 현재 폐지된 <뉴스 후>는 '시청자 사과방송'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조능희 책임PD 등 제작진들이 지난 2010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조능희 책임PD 등 제작진들이 지난 2010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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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 PD수첩 >이다. MBC는 < PD수첩 >의 2008년 4월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보도에 대해 두 차례나 '시청자 사과'방송을 했다. 한 번은 방통위의 심의 결과에 따라, 또 한 번은 자체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때마다 MBC노동조합과 시민사회는 '양심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했다. 이번 헌재 결정은 그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조능희 전 < PD수첩 > CP(책임 PD)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로써 대법원의 무죄판결에도 '사과방송'을 빌미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 PD수첩 > 제작진을 징계했던 사측의 논리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당시 광우병 보도로 정직 징계를 받았던 그는 지난달 MBC노조의 파업 복귀 이후 시사교양국이 아닌 사회공헌팀으로 발령을 받아 MBC 일산 사옥에서 근무 중이다.

"PD수첩 제작진 징계논리 무너져... 엄기영은 PD수첩을 MB정권에 바쳤다"

MBC < PD수첩>은 2008년 8월 12일 밤 <뉴스데스크>가 끝난 뒤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MBC < PD수첩>은 2008년 8월 12일 밤 <뉴스데스크>가 끝난 뒤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 MBC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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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CP는 "이번 결정을 <뉴스 후>에 대한 시청자 사과 명령에 위헌 결정으로만 보면 아주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 PD수첩 >의 사과방송은 엄기영 전 사장과 MBC 경영진이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고 정권에 굴복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제작진과 MBC노조는 '시청자 사과'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보고 이를 막으려고 주조정실 앞을 지켰다"며 "우리가 막자 MBC 역사상 최초로 주조정실이 아닌 곳에서 테이프를 돌렸다"고 말했다.

MBC는 지난 2008년 8월 12일 < PD수첩 >의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해 첫 번째 사과방송을 했다. 이는 방통위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 내린 첫 번째 '시청자 사과 명령'이었고, 당시 엄 전 사장은 "MBC의 미래를 총체적으로 판단해 대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0일 안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나 엄 전 사장은 이를 포기하고 서둘러 사과 방송 결정을 내린 것. 경영진은 또 이날 조 CP와 프로그램 진행자인 송일준 부국장에 대해 보직 해임 징계를 통보했다.

조 CP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야당 몫 위원 3명이 빠진 상태에서 대통령과 여당에서 추천한 6명이 졸속적으로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고 밀실에서 사과명령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뿐 아니라 사내 변호사도 위헌이기 때문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위헌재청을 하자고 했다"며 "이를 다 무시한 것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로 나온 엄 전 사장이 < PD수첩 >을 이명박 정권에 바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08년 2월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합해 출범한 방통위는 산하에 방심위는 방송에 문제가 있을 경우 경고, 주의, 시청자 사과 조치 등을 결정한다. 방통위가 5명의 위원 가운데 여당이 3명을 추천해 독립성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방심위 또한 9명 위원 가운데 대통령과 여당이 6명을 위촉하고, 위원장까지 지명하게 돼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2008년 말에도 <뉴스 후>에서 정부의 방송법 개정 문제를 다루면서 비판하는 방송을 했는데, 이때는 엄 전 사장이 타협하고 재심청구와 행정법원 소송을 냈다"며 "위헌 신청도 MBC가 낸 게 아니라 법원에서 판사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제기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적 가치를 지킨 것은 MBC노조와 PD수첩"

조능희 PD수첩 광우병 보도 당시 책임프로듀서(자료사진).
 조능희 PD수첩 광우병 보도 당시 책임프로듀서(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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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MBC가 지난해 9월 < PD수첩 >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또 한 번 '시청자에게 사과'한 것과 관련해 "김재철 사장도 마찬가지다. 대법원 판결을 왜곡해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제작진을 두 번 죽인 것"이라며 "언론이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고 정권에 아부를 위해 < PD수첩 >을 또 한 번 팔아먹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결국 2008년 사과는 검찰수사의 빌미를 제공하고 조중동의 공격논리를 만들어 준 것, 또 '사과'를 빌미로 제작진을 징계한 것 모두 방통위의 반헌법적인 '시청자에게 사과'를 수용하면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 CP를 비롯한 < PD수첩 > 제작진 5명은 광우병 관련 보도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에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보도를 내보낸 데 이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에 사과문 게재했다. 이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회사 명예훼손'을 이유로 조 CP와 김보슬 PD에게 정직 3개월, 송일준, 이춘근 PD에게 감봉 6개월 등의 징계를 내렸다.

조 CD는 "사과방송을 틀기 위해 주조정실을 왔다 갔다 했던 당시 보직자들이 지금 김재철 사장을 옹호하며 편파방송의 주역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자는 징계를 받고 양심을 판 자들이 그 자리에 있다"며 "결국 헌법의 가치를 지킨 것은 MBC노조와 < PD수첩 >"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기본인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중요한 게 아니고,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먼저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며 "최근 <PD수첩>이 보도했던 다우너소(주저앉는 소, 광우병 의심 징후)가 또 다시 미국에 등장했다,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진다"고 강조했다.


태그:#PD수첩, #MBC, #김재철, #엄기영,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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