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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 여부를 둘러싸고 경기도, 강원도, 전북도 등 진보성향 교육감 지역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사이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교과부는 16일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국가인원위회(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하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과부는 학생부 기재를 거부하거나 보류할 경우, 교원 및 시도교육청 담당자에 대한 특별 감사(특감) 등을 통해 강력한 책임을 묻는 등 엄중 조치할 것도 경고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도 24일 "학교폭력 관련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 학교의 경우, 그 명단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하며 대학들과 이 명단을 공유할 것"이라고 덩달아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일부 교육청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교과부의 '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기록' 지시를 강원·전북·경기·광주교육청이 거부하거나 유보하기로 한 것. 대부분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들이 선출직으로 당선된 지역들이다. 하지만 이들 교육청의 반발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2월 교과부가 학생부 기록 등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내놓을 때부터 일부 교육감과 교육단체들은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가 학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학생부에 주홍글씨처럼 적는 것이 과연 교육적이냐"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학교폭력 기재, 1995년 시행 두 달 만에 중단...비교육적·법취지 위배"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4일 공개한 보도자료.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4일 공개한 보도자료.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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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범죄를 저질러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에도 학생부에 적지 않도록 돼 있는데 학교폭력을 기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찌감치 제기됐었다. 이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와 관련 "학교 당국이, 교육 당국이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끝까지 선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 원인이 경쟁교육에 있으면 경쟁교육을 바꾸고 경쟁교육을 엄벌에 처해야 되는데, 거꾸로 아이들의 미래까지 엄벌에 처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것은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법의 취지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것(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기록)은 1995년도에도 시도하려다 두 달 만에 역풍을 맞아 포기했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도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적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개선하라고 교과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이를 근거로 일부 교육청은 학생부 기록에 대한 반대 뜻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교과부는 특단의 압박용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최근 지역 국립대학들이 총장직선제를 놓고 교과부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울 때도 교과부는 특감을 들고 나서 압박용 또는 옥죄기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당장 교과부는 전북교육청에 대해 23일 특감에 돌입한데 이어 경기·강원교육청에 대해서도 조만간 특감에 착수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교육청은 교과부의 방침과는 달리 학생부 기재를 전면 보류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한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일제히 "전북교육청에 이어 경기·강원교육청이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한 정부 방침을 거부하기로 했다"며 "학생부 내용을 중요 전형 자료로 삼는 대입 수시전형 모집에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라고 보도하면서 '불안'과 '혼란'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해당지역 언론들은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를 모두 꾸짖는 양비론과 기계적 균형보도만을 고수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언론의 상관조정 기능이 중요한 이때 교과부와 교육청 모두를 비판하거나 기계적 균형보도를 일삼아 학부모와 학생 등 교육 수요자들을 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다.

[전북] "전쟁 중", "싸움"...지역신문들 갈등·혼란만 부추겨

<전북도민일보> 24일 기사.(인터넷신문 캡쳐)
 <전북도민일보> 24일 기사.(인터넷신문 캡쳐)
ⓒ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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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교과부의 특감 대상이 된 전북지역 언론들은 '충돌'. '전쟁', '싸움' 등의 표현을 제목과 기사에서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이 문제만 나오면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보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23일 성명을 내고 "폭력사실 기재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삶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반교육적 만행"이라며 "교직원들은 교과부의 지침이나 이를 강제하기 위한 특감에 대해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대응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지역언론들은 교과부의 특감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듯하다. 특히 지역신문들은 "교과부 특감팀은 23일부터 도교육청 8층 중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학교폭력 조치사항 생활기록부 기재 지침을 고의로 누락한 교원의 징계를 위해 현지 조사 준비에 들어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뿐, 사설과 칼럼을 통한 상관조정 기능은 찾아볼 수 없다.    
     
<전북도민일보>는 24일 '특감에 특별성명 '교육청 전쟁중''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교과부 특검에 도교육청이 특별성명으로 맞불을 놓는 등 학교폭력 사실 학생부 기재를 두고 양 기관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교과부와 전북교육청의 입장을 똑같이 분할해서 전달했다.

"교과부는 전북 뿐 아니나 학생부 기재를 보류한 경기·강원교육청에 대해서도 내주부터 특별감사를 벌이겠다고 밝혀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기사는 "교과부 감사총괄팀 10명은 23일 전북도교육청 8층 중회의실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자료를 수집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기사는 "교과부는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교장·교사 및 시·도교육청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등 엄중 조치한다는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기사는 바로 이어 전북교육청 입장을 내보냈다. "김승환 교육감은 이날 성명에서 '헌법상 기본권 보장의 원칙 등 헌법을 파괴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훼손하며 교원들에게 징계 등의 협박은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다'며 직원들에게는 '현행 법령상 교과부 장관에게는 전북의 교원을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감사에 정중하면서도 당당히 응하라'고 주문했다"고 전달했다. 양 기관의 팽팽한 신경전만 있고, 대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전북일보>도 이에 앞선 21일 '교과부,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거부 '도교육청 특감''에 이어  22일 '교과부-교육청 '싸움'…일선 학교 '등 터질라''란 제목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전북도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및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식 등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면서 일선 학교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4일에는 '도교육청·전교조, 교과부 특감에 '반발''이란 제목의 기서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23일부터 학교폭력 조치사항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침에 맞서는 전북도교육청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며 "이에 도교육청과 전교조 전북지부는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항의집회 계획을 밝히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고 팽팽한 양측 입장만을 전달했다.

[경기] "도교육청-교과부 충돌", "점입가경"...싸움구경만

<경기일보> 17일 기사.(인터넷신문 캡쳐)
 <경기일보> 17일 기사.(인터넷신문 캡쳐)
ⓒ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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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방침에 보류의사를 밝힌 경기지역 일부 신문들의 관련보도에서도 대안 없는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일보>는 17일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도교육청-교과부 충돌', '학교폭력 가해자 학생부에 빨간줄 그어? 말어?'란 제목과 함께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를 놓고 도교육청과 교과부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균등하게 지면에 반영했다.

기사는 16일 도교육청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인용해 "학교폭력 사안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은 인권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을 뿐 아니라 학생 선도를 위한 적절한 교육적 방안이 아니다. 이 조치는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어 교과부 입장도 비슷한 분량으로 전했다. 기사는 "교과부는 학생부 기재를 거부하거나 보류한 교원 및 시도교육청 담당자에 대해서는 특별감사 등을 통해 강력한 책임을 묻는 등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나섰다"며 "기재를 보류하고 있는 도교육청의 대응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 관계자와 교과부 관계자의 말도 나란히 인용해 전달했다. 싸움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 기사는 대신 무거운 판단은 독자들에게 안겼다.

<경인일보>는 24일 '전면에 나선 경기도교육감… 학교폭력 기재 갈등 '점입가경''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국가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를 밀어붙인 교육과학기술부와 법적 효력을 지닌 훈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경기도교육청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며 역시 양비론적 보도태도를 보였다.

"김상곤 교육감이 전면으로 나서 교과부를 비판하며 사실상 이행 거부를 밝혔고, 교과부는 일선 교원들의 징계까지 거론하며 도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는 기사는 "27일까지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특별감사를 벌여 교육청 담당자와 학교장, 관련 교사를 문책키로 결정, 양 기관의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불안감만 가득 담긴 기사다.

 [강원] "대립 심화, 갈등 증폭"...기계적 중립보도 '열중'

<강원일보> 24일 기사.(인터넷신문 캡쳐)
 <강원일보> 24일 기사.(인터넷신문 캡쳐)
ⓒ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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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 언론들도 이 문제에 대해선 양비론과 기계적 균형보도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강원일보>는 24일 '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기재 대립 심화'란 주제목과 함께 '교과부 "특별감사·담당자 문책"…도교육청 "길들이기·권한 침해"'란 부제목을 뽑았다. 제목에서부터 팽팽한 입장차를 그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기사는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라는 지침을 보류하고 있는 도교육청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이겠다고 밝혀 양측의 대립각이 날카로워질 전망"이라며 중계하듯 양측 입장을 대변했다.

기사는 먼저 "교과부는 23일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한다는 교과부의 기존 방침에 변화가 없음에도 도교육청이 학생부 기재를 전면 보류하고 있어 경기도교육청과 함께 다음 주 초에 특별감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고 교과부 입장을 전했다.

기사는 이어 "교과부의 가치와 다르다고 특별감사 운운하는 것은 협박이자 시·도교육청 길들이기와 다름없다고 도교육청이 반발했다"며 "교과부가 미기재 교원에 대해 엄중 조치하겠다는 것은 교육감이 가진 교원 징계에 대한 권한을 침해하는 직권남용이다. 도내 학교는 교과부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도교육청의 확고한 원칙을 준수해 달라"는 도교육청 입장을 나란히 실었다.

<강원도민일보>도 이날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갈등 증폭'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교육과학기술부와 강원도교육청 간 갈등이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교과부와 도교육청 입장을 균등하게 처리했다.

기사는 "학생부 기재를 전면 보류하고 있는 도교육청에 대해 시정을 명령한 후 27일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교육청의 기재 보류 조치를 직권취소하고 법령대로 학생부를 작성토록 학교현장에 직접 안내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는 교과부 입장과 "교과부의 가치와 다르다고 특별감사 운운하는 것은 협박이자 시·도교육청 길들이기와 다름없다고 규정하는 등 학생의 중요한 정보를 기재할 경우 충분한 의견수렴절차가 있어야 함에도 교과부는 졸속적·비교육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교육청 입장을 전달했다.

[전남] <무등일보> "학교폭력 없애자고 주홍글씨 새겨서야" 상관조정

<무등일보>가 10일 내보낸 사설.(인터넷신문 캡쳐)
 <무등일보>가 10일 내보낸 사설.(인터넷신문 캡쳐)
ⓒ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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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교육청은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와 관련, 현재 고교 3학년에 한해서만 입시 전형을 이유로 학교폭력 사실을 기록하기로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보류하기로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학교폭력 가해사실에 관한 학생부 기재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지만,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3 학생들의 경우, 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타 지역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입시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 같은 방침을 내린 것.

이 과정에서 <무등일보>는 적극적인 상관조정 기능으로 다른 지역신문들의 무비판적 중립보도 또는 양비론과 차별화를 이뤄 눈길을 끈다. 신문은 지난 10일 '학교폭력 없애자고 '주홍글씨'를 새겨서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가인권위원회도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와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공개 등 몇 가지 대책이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재검토를 권고했고, 이에 따라 교육청들이 잇따라 보류 방침을 밝힌 게 지금까지의 경과"라고 운을 뗐다.

이어 사설은 "현행 소년법도 장래 신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소년원 경력의 공표를 금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형사범죄로 소년원 교육을 받은 경우라도 학생부에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따진 뒤 "이런 제반 법령 등을 검토해 내린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교과부가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가해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도 있다는 점에서도 재고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태그:#학교폭력, #학생부, #진보교육감,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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