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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를 틀어올리고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시절에도 교육은 았었습니다.
 상투를 틀어올리고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시절에도 교육은 았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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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용 용어일지는 모르지만 '교육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회적 계층이 등장했습니다. '취업률 전쟁에 내몰린 대학'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시리즈물로 게재되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일시적인 현상이거나 일시적 시사용어쯤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암울한 이런 현상은 점점 더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교육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상투를 틀어 올리고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일본강점기에도 교육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하는 방식이나 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시대나 국가적 가치를 담아내고 있는 교육 목표나 목적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졌을 겁니다.

어떤 시대, 어느 국가의 책임하에 교육용으로 발행하여 사용되던 책이 있다면 그 책에 실린 내용이야말로 곧 그 시대 그 국가에서 추구하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대한제국 학부 편저, 박병기·김민재 번역, 소명출판 출판의 <근대학부편찬수신서>는 대한제국 시대인 1895년에 학부에서 편찬한 '숙혜기략'과 '소학독본' 그리고 1907년에 편찬한 '보통학교 학도용 수신서'의 개략을 번역해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대한제국시대 도덕·윤리교재 <근대학부 편찬 수신서>

'학부'는 대한제국시대(1984~1910)에 학교 정책과 교육에 관한 사무를 맡아 처리하던 정부기관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 관련 역할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의 학부는 학무국과 교과서의 편집, 번역과 검정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는 편집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근대학부편찬수신서> 표지
 <근대학부편찬수신서> 표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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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학부 편찬 수신서>는 학부의 편집국에서 펴낸 책이니 오늘날의 1종 교과서 (국정교과서)로 '도덕'이나 '국민윤리' 교과서와 비유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듯합니다.

'숙혜(夙慧)'는 '일찍 숙(夙)', '슬기로울 혜(慧)'로 '일찍 깨닫는다'는 의미로 <숙혜기략>은 일찍 깨달은 명사들의 일화를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였다는 신농씨(神農氏) 이야기부터 만 권의 책도 오래지 않아 밝게 분별하였다는 당나라 이옹(李邕)의 이야기까지가 나이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자가 숙혜기략을 통해 명사들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보통학도들에게 배움의 바탕을 제공(되는 것)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봄의 운동대회에 각 학교의 학생 수천 명이 모였는데, 그 중에서 잘 달리는 사람 삼십 명을 택하여 삼백 보 경주를 시켰다. 수동이가 가장 먼저 질풍과 같이 달려나가고, 정동이는 그 다음에 달려나갔는데, 두 사람의 사이는 겨우 삼척(三尺)에 지나지 않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누가 일등상을 탈까 하여 모든 눈이 주시하였다. "수동이, 수동이"라고 부르는 자도 있었고, "정동이, 정동이"라고 소리 지르는 자도 있었다. 두 사람은 전심전력으로 일등을 서로 다투었다.

이 사이에 정동이가 오른손을 내밀어 수동이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뒤로 물러나게 하고, 수동이보다 앞섰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정동이다. 정동이다"하며 박수갈채를 하였다. 정동이는 일등상을 탈 줄 알고 득의양양하였다.

그러나 심판은 정동이의 비열한 행동을 미워하여 일등상은 수동이에게 주고, 정동이는 당일의 운동을 금지할 뿐 아니라 일주일간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있기를 명하였다. -<근대학부수신편찬서> 182쪽-

학부편찬 보통학교 학도용 수신서 권3 제8과 군자의 경쟁 내용 중 일부입니다. 100여 년 전, 대한제국에서는 무조건적인 승리보다는 떳떳한 경쟁을 교육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과 사의 구별', '정직', '조세', '규칙', '예의', '친구', '약속' 등은 물론 '박애'와 '동물 대우'까지를 아우르고 있어 시대의 가치가 무한경쟁보다는 정정당당한 화목이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통감부의 영향력 받고 있던 대한제국

책의 내용 중 몇몇 삽화는 일본인이 우월적 이미지로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근대학부편찬수신서>188쪽-
 책의 내용 중 몇몇 삽화는 일본인이 우월적 이미지로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근대학부편찬수신서>188쪽-
ⓒ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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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독본'과 '보통학교 학도용 수신서'는 위에서 인용한 '군자'처럼 내용별로 사례를 들며 이야기처럼 전개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다 보면 어느새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에 젖어들게 합니다.

다만 대한제국시대임에도 통감부(統監府,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일제가 식민 지배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에 두었던 기관)가 이미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음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역자가 해제의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책의 내용 중 몇몇 삽화는 일본인이 우월적 이미지로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근대학부편찬수신서>에는 이 수신서들이 가지는 역사적 위치와 현대적 의의까지를 부록으로 싣고 있을 뿐 아니라 수신서의 영인본(影印本 원본을 촬영하여 복제한 인쇄물)까지 포함하고 있어 100여 년 전의 교과서 편제와 인쇄형식, 삽화들을 원본에 가깝게 볼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학부 편저, 박병기·김민재 번역, 소명출판 출판의 <근대학부편찬수신서>는 100여 년 전에 발행된 책들을 현대어로 번역해 놓은 단순한 번역서가 아닙니다. 국가교육으로 담아내야 할 도덕과 윤리의 가치 변화, 교과서 체제의 변모, 인쇄술의 발달까지도 한 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역사의 편린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근대학부편찬수신서>┃편저자 학부┃역자 박병기 김민재┃펴낸곳 소명출판┃2012.07.30┃값 32,000원



근대 학부 편찬 수신서

박병기.김민재 옮김, 소명출판(2012)


태그:#근대학부편찬수신서, #김민재, #박병기, #소명출판, #숙혜기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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