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신 : 28일 오후 5시 41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광폭행보가 전태일 열사 앞에서 28일 오전 저지됐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는 박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어두운 이면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박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은 박정희 시대의 과오를 안고 가겠다는 후보의 의지란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박 후보를 멈춰세운 것은 현 시대의 어두운 이면이었다. 1895일 간의 농성, 김소연 분회장의 94일 단식 농성 등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대명사가 됐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 있었다. 22명의 동료들을 앞세우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한 달 동안 농성 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태일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다, 전태일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다, 전태일은 재능교육 특수교육 노동자다, 전태일정신 훼손하는 정치놀음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당직자들과 기자들을 골목 밖으로 몰아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도 "전태일 정신 없이 재단에 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 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하루하루 생존의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공권력을 넘어서는 용역이라는 폭력배들에게 짓밟히는 이 무법천지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우선 시정하고 해결하려는 마음의 진실이 먼저 앞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쌍용차 22명의 노동자들의 죽음이 있는 대한문 분향소부터 방문하고 쌍용차 문제부터 해결한 후에 오는 게 순서라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다시는 오지 말라, 여기가 어디라고" VS "경제민주화 해주세요, 믿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날 전태일 여사의 어머니 고(故) 이소선 여사 빈소에 헌화·조문한 뒤, 전태일 열사와 함께 청계천피복노조 활동을 했던 '바보회' 회원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발길을 돌리는 그를 향한 상반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골목길을 막아섰던 한 남성은 박 후보의 등 뒤에서 "다시는 오지 말라,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고 소리쳤다. 또 다른 남성은 "경제민주화 해주세요,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가 차에서 내리자, 다리 위에 있던 시민들 중 일부가 박수를 쳤다. 노동자들의 반발에 "박 후보가 무슨 잘못이냐"면서 박 후보를 두둔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강경했다. 동상 앞을 지키고 섰던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박 후보를 향해 "전태일 정신을 모독하지 마시라"고 소리쳤다. 동상 앞에 주저앉아 박 후보의 헌화마저 막았다.
박 후보의 재단방문 및 동상 헌화를 준비하고 안내했던 김준용 국민노총 자문위원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김정우 지부장은 김 위원을 향해 "여기가 어디라고 (박 후보를) 모시고 오나, 제 정신인가"라며 "다 팔아먹고 잘 한다"고 비난했다. 한 여성은 김 위원을 향해 "전태일을 팔아 장사하지 말라, 노동부 장관이라도 하려고 하느냐"고 힐난했다.
김 자문위원은 친박 외곽조직인 '국민희망포럼'의 노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전태일 열사 유족이 요구한 '쌍용차 분향소' 방문 이뤄질까 박근혜 후보가 다시 전태일재단을 방문할 가능성은 낮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후보가) 재단 방문 준비를 많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무산돼 안타깝다"며 "그 쪽에서 오지 말라면 못 가는 것이지,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박 후보를 수행한 이상일 대변인도 '재방문 가능성'에 대해 "다시 되겠나"라며 낮게 평가했다.
다만,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등이 요구했던 '선(先)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분향소 방문' 요구가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제로 이날 예정에 없던 박 후보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분향소 방문 얘기가 돌아 남대문경찰서 소속 전경버스들이 대한문 일대에 배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측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재단 방문 이후 일정은 없었다"며 "분향소를 방문하려다 취소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이번 재단방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도 나온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박 후보가 재단 측이 고민하고 있는 '전태일기념관' 건립 문제 등 여러 사안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비정규직·최저임금 등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박 후보의 생각도 이날 일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은 "박 후보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분향소를 찾는 건 어렵다"고 짚었다.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해결을 위한 소위' 구성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상황인데, 박 후보가 분향소를 찾을 경우 당의 입장이 애매해진다는 설명이었다.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이창근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박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은 앞뒤가 바뀌었다"며 "전태일 열사는 단순한 1명의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인만큼 정말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면 내용적으로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쌍용차 문제 등 노동현안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한 다음 전태일재단을 찾아가는 게 순서였단 얘기다.
새누리당 "아무리 방해하고 장막 치더라도 박근혜 통합 행보 막지 못할 것" 한편, 새누리당은 재단 방문 무산에 대해 안타깝지만 박 후보의 '광폭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재단 방문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고 앞으로 국정에 그 분의 유지가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보수와 진보로 분열된 현재의 우리사회를 통합하여 100% 대한민국을 구현하려는 국민통합에 대한 소신과 각오가 깃들여져 있었다"며 "이번 방문 무산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가로놓인 큰 벽과 강을 실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누리당은 이러한 큰 벽과 강을 앞으로도 계속 허물거나 메워서 국민통합을 위해 더 큰 노력과 소통을 하겠다"며 "다만, 전태일 열사의 동생분이 민주당 현직 국회의원(전순옥 의원)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좀 더 열린 자세를 갖고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상일 대변인도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박 후보가 재단을 방문하려 한 것은 산업화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시대의 그늘에서 고통을 겪었던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며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박 후보는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 고초를 겪는 서민들의 손을 잡고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태일 동상 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해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재단 방문 무산 이후 진행된 청계청 6가 '전태일 동상' 헌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재단 방문을 저지한 김정우 쌍용차노조 지부장은 동상 앞까지 후보를 쫓아와 박 후보의 헌화를 막았다. 김 지부장이 동상 앞에 주저 앉아버리자, 박 후보는 5초 정도 머뭇거리다 국화다발을 김준용 국민노총 상임자문위원에게 건넸다. 김 자문위원은 박 후보의 재단 방문 등을 추진한 인사다. 김 자문위원이 놓은 헌화 다발은 바로 난간 밑으로 치워졌고 이후 한 학생에 의해 건너편으로 던져졌다.
박 후보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장소를 찾아가 한동안 김 자문위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김 자문위원에 따르면, 박 후보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화해·협력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김 자문위원이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를 잘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니, 박 후보는 "꼭 그렇게 하겠다"면서 "오늘 못 뵌 분들에게도 뜻을 전해달라, 유족들에게도"라고 답했다.
이후 박 후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 김정우 지부장 등은 박 후보의 차에 몸을 던지며 "열사의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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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보강 : 오전 10시 54분]
박근혜 후보는 오전 10시 20분께 전태일재단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박근혜 후보는 박계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불편하게 해드린 건지 모르겠다"며 "오늘 찾아뵙지 못하고 다른 기회에 뵙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발길을 돌린 박근혜 후보는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다리로 이동하고 있다. 박 후보는 이곳에 있는 전태일 동상에 헌화할 예정이다.
한편, 박근혜 후보 쪽은 전태일 열사의 친구였던 김준용 국민노동조합총연맹 상임자문위원을 통해 박계현 사무총장에게 연락해 재단 방문 약속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태일 열사의 유족인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과 전태삼씨는 박 후보의 재단 방문 사실을 뒤늦게 통보받았다.
[1신 : 28일 오전 10시 30분]
28일 오전 9시 45분께 쌍용차노조 조합원과 민주열사추모연대 회원 10여 명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 입구를 막아섰다. 현재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으로 예정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박근혜 후보는 쌍용차 분향소에도 들리지 않았고, 이런 곳을 방문하려면 마음의 진실을 앞세워야 한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길로 와야 한다, 너무 일방적인 통행이다, 맞이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김명운 민주열사 추모연대 의장은 "이소선 여사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방문을 거부한 것은 노동자 탄압세력의 대표인 박근혜 후보와 만나서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었다"며 "전태일 열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죽인 게 아닌데, (박근혜 후보가) 왜 사과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는 산업화 사람목숨보다 돈만 목적으로 사는 사회에 경고하고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분신을 선택한 것"이라며 "박근혜 후보는 쌍용차 분향소나 용산 참사현장에 가 보셨나, 그렇지 않고 여기 와서 손 한번 붙잡는다고, 국민 화해가 이뤄지나, 쇼는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쪽은 앞서 박계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등과 연락해 이날 오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빈소에 헌화·조문하고 재단관계자들과 환담 한 뒤, 전태일 열사 동상을 서 있는 청계천 다리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날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이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 성명 발표 |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이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 재단 방문에 대해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전순옥 의원은 27일 밤 낸 성명에서 "(박근혜 후보가) 비정규직, 최저임금, 청년실업, 가계부채 등 이 나라 노동현실의 절박함을 온 몸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정책을 가장 앞에 세울 때 나를 포함한 이 나라 국민들이 전태일 재단 방문의 진심을 믿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쌍용자동차 희생자와 유가족들, 용산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먼저 찾고 가장 나중에 전태일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과거 5.16쿠데타와 유신, 군사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전순옥 의원의 성명 전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내일 전태일 재단을 방문해 전태일 정신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소식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박근혜 후보가 좋은 취지로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이 나라 노동의 현실은 그렇게 쉽게 개선될 수 없을 만큼 문제투성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과거 5.16쿠데타와 유신, 군사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전태일 재단의 방문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면 비정규직, 최저임금, 청년실업, 가계부채 등 이 나라 노동현실의 절박함을 온 몸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정책을 가장 앞에 세울 때 나를 포함한 이 나라 국민들이 전태일 재단 방문의 진심을 믿고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쌍용자동차 희생자와 유가족들, 용산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먼저 찾고 가장 나중에 전태일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969년 스물 한 살 전태일이 노동자의 현실과 그 대책에 대해 피와 눈물로 써내려간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낸 지가 4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땅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는 9월 3일은 나의 어머니 이소선의 첫 번째 추모일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 나라 노동자들이 모두 어머니라고 불렀던 그는 1970년 척박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며 산화한 전태일의 어머니로서 이 땅의 노동자들과 함께 전태일 정신을 맨몸으로 지켜왔다. 그들의 바램은 오직 하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바로 지금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