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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주 초등학생 사건 보고 너무 너무 화가 나서요. 집회 하면 나와주실 분 있나요?"

31일 저녁,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한 건의 집회 신고가 들어왔다. 집회 명칭은 '성범죄자 사형 집행과 강력범죄 처벌 촉구'. 신청자는 집회 신청 절차도 제대로 몰랐던 한 평범한 아가씨였다.

반복되는 아동 성범죄에 시민들이 분개하고 나섰다.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요리 사이트에 성범죄자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집회 참여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는 관련 청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김유진(가명)씨가 요리 사이트 82cook에 올린 '성범죄자 강력처벌 촉구 집회' 공지글.
 김유진(가명)씨가 요리 사이트 82cook에 올린 '성범죄자 강력처벌 촉구 집회' 공지글.
ⓒ 82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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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몰 후 안전하게 다니고 싶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정희(가명)씨는 31일 오전 나주에서 벌어진 아동 성범죄 기사를 접하고 화가 치밀었다. 자녀는 없지만 한국에서 수십 년 살아온 그녀에게 성범죄는 쉽게 공감 가능한 일이었다. 얼마 전 '조두순 사건' 가해자가 징역 단 12년을 받아 분노했던 기억도 오롯이 떠올랐다.

이번 사건도 그냥 넘기면 또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녀는 몇 차례 참여했던 촛불집회의 기억을 살려 자주 가던 요리 사이트인 82cook에 회원들의 의향을 묻는 글을 올렸다. 성범죄자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집회 계획에 호응하는 회원들이 제법 있었지만 김씨는 정작 집회신고를 하는 방법을 몰랐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함께 무턱대고 찾아간 시청 앞 파출소에서는 김씨에게 남대문경찰서로 가라고 일러줬다.

경찰서 문을 열고 집회신청서를 받아들긴 했지만 집회 장소부터 난관이었다. 처음에 막연히 생각했던 장소는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이었지만 시청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 '광장허가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담당 경찰관은 허둥지둥하는 김씨에게 서울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김씨도 어딘지 정확히 모르는 장소였다. 집회 목적은 딱히 논리적인 말이 생각나지 않아 '대한민국에서 일몰 후 안전하게 다니고 싶다'고 적었다.

우여곡절 끝에 개인 자격으로 집회신고를 마친 김씨는 집으로 돌아와 82cook 자유게시판에 집회 참여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집회 일시는 2일 오후 4시부터 8시, 참여인원은 100명. 첫 번째 올린 요청 글에는 50개의 댓글이 달렸다. 김씨는 게시물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씨는 집회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구호 같은 건 외쳐본 적이 없는데 걱정"이라면서 "이렇게라도 해야 언론에서도 나서주고 국회의원들도 관심 가져서 뭔가 바뀌지 않겠냐"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청원에 올라온 성범죄자 강력처벌 촉구 게시물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청원에 올라온 성범죄자 강력처벌 촉구 게시물들.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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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강력 처벌요구, 불안하기 때문"
온라인 게시물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는 나주 성폭행 사건 관련한 각종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누리꾼 '지유엄마'는 '7세 여아 성폭행 강력처벌 바랍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나요?'라는 청원을 올렸다. 그는 청원서에 "서명을 해주시면 탄원서로 작성해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썼다. 이 청원서에는 하루만에 2만 7000여 명의 서명이 몰렸다.

서명이 많지 않은 청원 중에는 과격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들도 있다. 누리꾼 '더나은사회를위한나의바램'은 "유아성범죄자는 사형시켜 달라"면서 "강한 법이 죄를 없앨 수 없지만 우리 아이들만은 법이 지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누리꾼은 "범죄자에게 인권은 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인권이 없는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누리꾼 '꽃밭'은 '물리적 거세의 법률적 도입'을 청원 주제로 올렸다.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 다양한 예방수단에도 불구하고 성범죄는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성범죄자들에게 여성과 여아는 우리 모두가 지켜줘야 할 대상이며 그들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한술 더 떠 "예멘처럼 공개총살을 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대중들의 반응에 대해 "당장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어느 정도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조두순 사건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유형의 성범죄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등,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불안에 대해서 대응을 하려는 노력"이라며 "실제로 법적인 처벌의 수위가 낮은 점이 이런 요구를 불러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태그:#조두순, #성범죄자, #거세,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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