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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학교폭력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반대 학부모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학교폭력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반대 학부모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이주호 장관)의 훈령에 반발하던 학교들이 교과부가 특별감사를 시작하자 점점 손을 들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청 교육감이 교과부에 항의해 200시간 넘게 연속 근무 중이지만, 도 교육청 산하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이 교과부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딱 한 곳, 경기도 용인의 흥덕고등학교는 교장과 일반 교사들이 뭉쳐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를 끝까지 거부하고 있다.

6일 오전 교과부와 경기도 교육청의 '칼날' 대립을 보여주는 흥덕고를 찾았다. 학교 교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학생들이 그린 'GMO 유전자 식물 퇴출', '육식은 나무를 없앤다'는 환경 포스터가 걸려 있고, 2층 식당 앞에는 학생들의 지문이 '꾹꾹' 찍힌 'NO 학교 폭력' 포스터가 있다. 일반 고등학교의 복도라면 입시정보와 대학 안내 홍보물로 삭막했겠지만 혁신학교 흥덕고는 달랐다.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를 거부로 교과부의 특별감사를 받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흥덕고등학교. 흥덕고는 2009년 혁신학교로 시작해 올해 첫 입시를 치르고 있다.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를 거부로 교과부의 특별감사를 받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흥덕고등학교. 흥덕고는 2009년 혁신학교로 시작해 올해 첫 입시를 치르고 있다. ⓒ 강민수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학교 종소리가 울린다. '뎅뎅뎅' 대신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온다. '꺄르르륵' 웃는 학생들은 수준별 수업에 맞춰 자신의 반으로 흩어진다. 노래가 멈추면 학교는 다시 학습의 시간으로 젖어든다.

2009년 혁신학교로 첫 신입생을 받은 흥덕고는 내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현재는 3개 학년, 23개 학급, 630명의 학생과 50여 명의 교사가  있다. 학교는 첫 입시를 치르는 상황에서도 맞춤형 수업과 지도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 분위기 흐린 교과부 감사관들

하지만 지난 3일 학교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교육과학기술부(이주호 장관)의 감사관들이 학교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흥덕고 교장실에서 감사가 시작되자 교사 10여 명이 밖에서 '교사의 양심으로 학교폭력관련 학생생활기록부 입력을 반대한다'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4일에는 이범희 교장과 박정달 교감이 도교육청에서 감사를 받았고, 급기야 5일에는 2학년 담임 교사 5명도 감사를 받았다.

학교 관계자들은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가 교육의 자율성을 앗아가고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박정달 흥덕고 교감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지도를 통해 반성하고 개과천선할 수 있는 학생에게 '학교 폭력'의 낙인찍는 것은 교육의 자율성을 앗아가는 일"이라며 "낙인찍는 게 능사가 아니라 교육 현장의 교사에게 맡겨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만주 혁신부장(국어 담당)도 "학교폭력은 발생원인, 진행과정, 결과 처리까지 천차만별한데 획일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다"며 "이는 학교 폭력을 또 다른 폭력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학교 내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가 열리고 관련 사항을 교과부에 보고하게 돼 있다. 올해 초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한 학생이 늘어나자 교과부는 특단의 대책으로 학교 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훈령을 마련했다. 오는 7일이 대학입시 활용을 위한 각 학교장의 학생부 승인 마감 일이어서 교과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긴장된 '감사' 끝나고 터져나온 환호성에 다시 '감사'

 5일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거부를 이유로 경기도 교육청에서 교과부 감사를 받은 정은희 교사.
5일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거부를 이유로 경기도 교육청에서 교과부 감사를 받은 정은희 교사. ⓒ 강민수
5일 도교육청에서 감사를 받은 정은희(윤리 담당) 교사. 정 교사는 "감사관은 화를 내듯이 교육부의 지침을 왜 따르지 않냐며 따졌다"며 감사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정 교사를 감사한 사무관은 "강원도 교육청에서 일제고사 반대했던 교사가 해직된 사례가 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으며 "이번에도 교과부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해고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정 교사는 전했다. 해고라는 단어를 듣고 정 교사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해직교사가 된다? 걱정하셔서 해주신 말씀이신데 그냥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끝나고 나오는데 선생님들의 환호성을 받았다"며 "감사 받느라 긴장이 됐지만 금세 풀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동료교사와 학부모 30여 명이 도교육청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5명의 교사의 감사가 벌어지는 복도에서 미리 피켓과 대자보 등을 준비한 교사들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직접 학교에 전화를 해 방침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일선학교를 방문하고 감사하는 것은 정상적 교육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밝혔다.

교사들의 이같은 대응에 학생들은 반긴다. 자신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유진선(고2)양은 이에 대해 "선생님이 우리를 위하는 모습에 마음이 든든하다"며 "학생부에 적는다고 학교 폭력이 본질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닌데 왜 표면적인 것만 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유양은 "청소년기면 누구는 한번쯤은 우발적으로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런 일로 학생부에 기재가 된다면 평생 낙인이 찍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감사총괄담당관실 관계자는 해고로 교사들을 압박한다는 논란에 대해 "학교생활기록관리지침에 따라 (초중등교육법20조) 학생부는 학교장이 교과부장관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입력하게 돼 있다"며 "지침에 따르지 않으면 법령 위반으로 징계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기도 교육청 감사 진행에 대해 "처음에는 78개 학교가 거부했으나 이중에서 감사 이후 77개학교는 기재하겠다고 의사 밝혔다"며 "흥덕고는 끝까지 기재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자치권과 학생 인권을 지키려는 흥덕고 교사들과 교육 현장을 훈령과 방침으로 단순화하려는 교과부의 싸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흥덕고#학교폭력 학생부 기재#김상곤 교육감#이주호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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