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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동반성장의 전도사다. 그는 "가진 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못받은 자들이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동반성장의 전도사다. 그는 "가진 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못받은 자들이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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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총리로) 들어갔을 때는 감세(減稅) 안 했어요. 확실하게 안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어느덧 올라가 있었다. 기자가 '총리하실 때 (기업 등에) 감세 안 하셨나'라고 묻자 곧장 답이 돌아왔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의 11일 인터뷰에서 경제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경제학자로서 정 전 총리의 이름 앞엔 항상 '개혁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어왔다. 야당을 비롯해 진보개혁진영에서 그를 잠재적 대선 후보로 여겨왔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민주당 등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정 전 총리는 "저는 일생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다"면서 "학교 총장과 총리 역시 사회로부터 받은 빚을 갚기 위해서 나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현 정부의 총리 입각 과정에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와 암울한 경제 현실에 더 주목했다. 그는 "한국경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 다음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경제 위기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그렇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양극화 문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가 지탱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구조적인 문제다. 서민들 문 닫는 가게들이 훤이 보이지 않나. 경기가 너무 침체돼 있다."

- 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셨는데, 그동안 경제정책을 평가해주시면.
"경제살리기라는 큰 기대를 받았지만, 결국 (국민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기지 않았나 싶다."

"현 정부 친재벌정책으로 경제체질 너무 약화... 하체 부실한데 상체만 비대"

그는 '실망과 분노'라는 표현을 썼다. 이어 "수출 대기업 중심의 친재벌 정책으로 우리나라 경제 체질을 너무 약화시켰다"고 했다. 또 한국경제를 사람에 비유하면서, "하체는 부실한데 상체만 비대해서야 제대로 걸어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 정부에선 금융위기 극복을 성과로 말하고 있다.
"물론이다. 위기극복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사용한 고환율 정책은 서민과 내수기업에 피해주는 것이었다. 이를 빨리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정부에 계실 때 힘드셨나.
"보람도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자감세를 막은 것이나 의미 있는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다시피 세종시 문제로 내 진정성이 훼손됐을 때 힘들었다."

- 세종시에 대한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단지 정부 부처를 반으로 쪼개서 비효율을 낳는 것보다 문화와 기업, 과학이 어우러지는 도시가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이제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슬기롭게 꾸려나가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책보다는 정치논리와 이해 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 총리시절 감세를 안 하셨나.
"(곧장) 총리가 된 다음에는 안 했다. 확실하다. 기업들이 법인세를 깎아달라고 해왔지만,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15%도 안 된다.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만 동반성장 외쳐, 재벌들 국민 저항 자초"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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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은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항상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기업들의) 투자가 안 되는 이유는 세금이 높아서가 아니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마땅히 투자할만한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돈만 100조다."

그는 기자에게 "100조가 얼마나 큰 돈인 줄 아느냐"고 되물었다.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하자, 경제학자답게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1조의 100배예요. 그럼 1조가 얼마나 큰 돈이냐면 부처님, 예수님이 태어나서 하루에 매일 100만 원씩 다 써도 평생 1조를 다 못 써요. 그렇게 많은 돈이예요. 대기업들에겐 첨단 핵심기술을 공급하도록 해야죠. 학교와 연구소, 기업들이 서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기업들의 돈이 중소기업으로 합리적으로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죠."

- 그동안 계속 말씀하고 계시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군요.
"왜 중요하냐면,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촉진하기 위해선 동반성장으로 가는 길이 최선이다. 함께,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다."

- 대통령도 동반성장을 꽤 중시했던 것 같은데.
"대통령과 몇차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말로만 외쳤다. 정부는 오히려 지원보다는 딴지를 걸었다. (동반성장은)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 기업 쪽에서도 반발이 있지 않았나.
"저는 오히려 재벌들이 나서서 동반성장에 앞장서기를 바랬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정말 무서운 국민들의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금 보라. 재벌들이 경제민주화의 대상이 돼서 정치권과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지 않나. 재벌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한국경제 심각한 위기... 가진 자 양보하고 못받은 자들 제대로 받아야"

- 이번 대선에선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주요한 아젠다로 삼고 있다.
"동반성장이 경제민주화보다 큰 개념이다. 동반성장으로 가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들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 행위를 하는 당사자끼리 대등한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대등한 입장이어야 한다."

정 전 총리는 "과거 1990년에 여러 교수들과 <도전받는 한국경제>라는 책을 냈었다"면서 "그 책에서 이미 제가 '한국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글을 통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틀을 정리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 경제민주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 중요하다. 현재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소기업이다. 4명 규모의 소상공인이나 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84%나 된다. 20명 아래 기업수는 97%가 넘는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좀 더 커갈 수 있는 방안이 중요하다."

그의 해결 방안 역시 동반성장이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중소기업과 합리적으로 나누고, 정부의 복지 기반을 강화해서 노동자들의 기초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덧 그와의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대구로 내려가는 고속열차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경제 이야기를 풀어갈 때는 좀 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인터뷰 말미까지 그는 동반성장 중심의 사회를 말하고 있었다. 그의 당부다.

"가진 사람들이 먼저 양보해야 합니다. 너무 많이 가져간 자기 몫을 내놓아야죠. 재벌은 물론이고, 노조도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못 받은 자들이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청업체들이 단가를 제대로 받아야죠. 마지막으로 시만시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감시가 있어야 합니다. 시민이 스스로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자리 잡아야죠."


태그:#정운찬, #동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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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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