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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거리 서울 강남역과 광화문 사거리는 비만 오면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큰비만 오면 어김없이 잠기기 때문이다. 올해도 비가 오자 어김없이 강남역이 잠겼다. 시민들은 한창 유행하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빗대어 강남은 '침수스타일'이라고 풍자하고, 서초구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시가 천억원이 넘는 대심도터널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강남역의 문제는 하수관거 부족이 아니라 삼성전자 사옥과 전철역을 연결하는 지하연결통로 공사를 무리하게 승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였음이 감사원 보고서를 통해서 밝혀졌다.

☞ 관련기사 : "강남역 상습침수, 서초구의 삼성전자 배려 때문"

서울환경연합은 이같은 감사결과에 대해서 삼성전자 지하주차장을 임시저류조로 이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광진구 스타시티 빗물저류시설의 교훈

오세훈 전 시장의 전셋집으로 알려진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 주변은 상습 침수지역이었던 곳이지만 지하공간의 빗물 저장장치를 이용해서 침수피해를 줄인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는 "빗물 3000톤을 저장해서 크게 홍수방지용, 조경관리용, 화재방지용 등으로 나누어서 수도이용료를 줄이고 홍수로 인한 피해를 줄였다"고 설명한다. 3000톤 중 홍수방지용은 1000톤 규모로 스타시티 건물 옥상과 단지내로 떨어지는 빗물을 저장하고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신축건물이며, 지을 때부터 지하공간을 저류조로 기획한 사례다.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의 지하저류조. 홍수방지 용도로 1천톤을 저류할 수 있다.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의 지하저류조. 홍수방지 용도로 1천톤을 저류할 수 있다.
ⓒ 신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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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의 경우 도림천 수방대책으로 거론되었던 관악산 댐 건설 사업이 효과측면과 환경파괴, 주민반대 등의 이유로 무산되었다. 대신 서울대학교 앞에 6만톤을 저류할 수 있는 저류조를 2012년 연말까지 만들고, 그 전까지는 강남순환고속도로 터널 공사장을 임시저류시설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 역시 집중호우 시에 물 6만톤을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서울대학교에 만들어지는 빗물저류조의 경우 약 233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빗물저류시설 사례가 치수에 있어서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경우였지만, 한계도 있다. 스타시티의 경우 신축하는 건물에 대해서만 가능한 모델이며, 신축하는 경우에도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의무화하는 설치대상과 규모는 아주 제한적이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공공청사의 경우 지붕면적이 1000m² 이상인 경우 저류시설을 지붕면적의 5% 규모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관악산 댐의 경우 산에 댐을 만드는 상황은 면했지만, 또다시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전역이 시간당 100mm수준의 강우에 견딜 수 있도록 방재성능을 향상하는 데에는 약 17조 원이 소요된다(서울시 보도자료, 2011. 12.7). 이런 경우 답은 두가지밖에 없다. 가뜩이나 빚이 20조 원이나 되는 서울시 재정에 치명적 영향을 주면서까지 시설을 만들거나 혹은 돈이 없으니까 실현가능하지 않은 계획이 되거나.

광화문 홍수 논쟁... 시민들은 서울시를 믿지 않았다

2010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1일 오후 서울 지역에 천둥ㆍ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최고 100㎜에 달하는 기습폭우가 쏟아지면서 일부 도로가 통제되고 주택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물에 잠긴 광화문 사거리에서 얕은 도로로 피해 운행하는 차량들.
▲ 물에 잠긴 광화문 사거리 2010년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1일 오후 서울 지역에 천둥ㆍ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최고 100㎜에 달하는 기습폭우가 쏟아지면서 일부 도로가 통제되고 주택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물에 잠긴 광화문 사거리에서 얕은 도로로 피해 운행하는 차량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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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홍수 논쟁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2010년 추석연휴 첫날 광화문 사거리가 물바다가 되자 서울시에서는 100년 만의 폭우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천재지변이라는 논리를 강하게 폈다. 하지만 관동대학교 토목공학과 박창근 교수는 광화문 광장 지하연결보도 인근에 위치한 C자형 관거를 문제로 제기한 바 있다. 즉 빗물이 흘러가야 할 관이 일자가 아니라 급격하게 굽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당시 이 문제제기는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됐고, 서울시는 이 문제점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후에 관거형태를 좀 더 완만하게 바꾸는 공사를 진행했다.

또한 광화문 광장의 과도한 포장이 문제를 키웠다는 서울환경연합의 주장은 2년 뒤인 2012년 감사원 보고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1년에 또다시 광화문이 잠기자 서울시는 또다시 100년만의 홍수라고 주장했고, 시민들은 이를 믿어주지 않았다.

하수관이 C자형으로 급격하게 휘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광화문사거리외 2개소 침수방지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2004.6) 자료
▲ 서울 광화문 사거리 간선암거(백운동천 암거) 모식도 하수관이 C자형으로 급격하게 휘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광화문사거리외 2개소 침수방지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2004.6) 자료
ⓒ 박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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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수문제의 원인을 천재지변 혹은 지형적 문제로 돌리면서 부단히 대심도터널을 만들어서 일거에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만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서에서는 하수관거 설계변경을 무리하게 승인한 것이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삼성전자의 지하주차장을 임시저류조로 활용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서울대학교 한무영 교수, 관동대학교 박창근 교수 등 최고의 전문가들은 "홍수라고 하는 현안을 민관이 함께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답은 지역에 있다. 광화문과 강남역의 경우처럼 지역은 공간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낸다. 그 문제를 심도있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엄한 하늘을 탓할 수밖에 없다.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처방도 잘못되고 결과적으로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지역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올바른 진단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하늘의 심술?

2011년 7월 27일 오전 8시경 강남역 이면도로. 흙탕물로 가득한 모습. (엄지뉴스 전송: 7572님)
 2011년 7월 27일 오전 8시경 강남역 이면도로. 흙탕물로 가득한 모습. (엄지뉴스 전송: 7572님)
ⓒ 엄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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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문제의 진단을 하늘의 심술로 결론내리고, 이후에 할 수 있는 처방은 대규모 공사로 '뭔가 하고 있다'는 명분을 얻는 것이다. 공사를 하고나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더 큰 공사를 제시한다. 이런 왜곡된 정책결정과정에서 관련 업체는 큰 수익을 누리겠지만 시민들은 또다시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로 그동안 서울시에서 하수관거가 견딜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비가 와서 홍수가 난 경우는 많지 않다. 사업을 집행하는 측의 입장에서 보면 큰 규모의 예산을 운용하면서 단일사업을 추진하는 편리함이 있겠지만, 서울시의 재정은 악화되고 근본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는 한계가 생긴다. 광화문 레인가든(빗물정원) 도입처럼 보도블럭과 차도의 빗물을 끌어들여서 지하토양으로 흘려보내는 등의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들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민관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공사를 승인하고, 도시의 불투수층을 늘린 것은 정부의 책임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답을 내놓으라고 주문하고 나머지는 뒷짐지고 서 있을 일은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 5월말 다음 아고라에 수해커뮤니티맵을 만들고 막혀있는 빗물받이 신고를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도로와 하수관거를 연결하는 빗물받이가 막히면 하수관거까지 물이 흘러가지 못한 상태에서 홍수가 나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의 관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 방법이다.

삼성전자 지하주차장 활용하면 어떨까

물순환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신축건물뿐만 아니라 기존 건물에 저류시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강남역 홍수 역시 관거용량을 넘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설을 단순히 늘리는 차원의 접근이 아닌, 위험을 분산시키는 형태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를 선두로 해서 강남역 인근 건물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홍수가 집중되는 시기에 지하주차장을 임시저류조로 개방하고, 설비를 갖출 수 있도록 관에서 함께 지원하는 일은 매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일년에 한두번 쓸까말까한 대심도터널을 짓느라 몇 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건설에 필요한 천억원의 예산도 아낄 수 있다.

강남역 침수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삼성전자 지하연결통로.
 강남역 침수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삼성전자 지하연결통로.
ⓒ 신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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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저류조로 제안된 강남역 삼성전자 지하주차장 7층. 최대 약2만톤 규모의 빗물저류가 가능한 수준이다.
 임시저류조로 제안된 강남역 삼성전자 지하주차장 7층. 최대 약2만톤 규모의 빗물저류가 가능한 수준이다.
ⓒ 신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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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저류시설뿐만 아니라 인근 공원이나 운동장 임시저류, 유출저감효과가 높은 투수블록의 확충, 레인가든 도입 등의 다양한 정책 역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도심의 지표면은 콘크리트 재질의 아파트, 도로, 인도 등으로 덮였다. 이같은 도시화로 인해 불투수면적이 1962년 7.8%에서 2006년에는 47.5%까지 증가했다. 정부는 이처럼 왜곡된 물순환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에 대해서 장기적 대안이라는 이야기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장기적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시도를 누군가가 언젠가는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만들어가면 생각보다 오래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빗물을 적절히 재이용하고 지하수로 돌려보내면, 홍수피해도 줄어들고 물자원도 아낄 수 있다. 또한 지하수가 말라서 인공적인 펌프로 유량을 감당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매커니즘을 따르는 방향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다.

곧 태풍 산바가 우리나라를 지나갈 것이라고 한다. 대책이 시급하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다음 아고라 통해 누리꾼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이슈 청원
▲ 삼성전자 지하주차장을 일년에 두달만 빗물에게 빌려주세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다음 아고라 통해 누리꾼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이슈 청원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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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재은 기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강남역침수, #빗물저류, #삼성전자,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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