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떼기로 장사꾼한테 넘겨놨더니, 포도가 다 썩고 나니까 못 사겠대요. 계약금만 받고 밭 전체를 손해본거죠"경상남도 거창군에서 2300㎡ 규모의 포도농장을 경영하는 임정희(가명)씨는 썩어버린 포도를 가려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손이 부족했던 임씨는 지난달 초 장사꾼에게 5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농장 전체를 팔아버렸다. 일명 밭떼기다.
하지만 장사꾼은 임씨의 포도농장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그 사이 포도는 알이 터지며 썩어버려 상품가치가 현저히 떨어졌다. 결국 장사꾼은 이달 초에야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해왔고, 계약금 100만원 이외에 손해보상은 받을 수 없었다.
이처럼 손해를 보더라도 손쉽게 농장 작물을 팔 수 있는 밭떼기는 일손이 부족한 농가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출하시기를 맞출 수 없어 장사꾼에게 몽땅 팔아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밭떼기 거래의 70% 이상이 농가와 장사꾼 간의 구두계약으로 체결하다 보니 임씨와 같은 경우에는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특히, '밭에 칼을 대야 나머지 금액을 지불한다'는 암묵적인 거래가 더해져 농가들을 괴롭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사꾼이 농장을 포기하기 전까지 농가들은 수확을 할 수 없어 썩어가는 농작물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임씨는 "장사꾼이 우리 농장과 계약을 했음에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농장에만 손을 대느라 신경도 안 쓰고 있다"며 "그냥 200만원에 가져가라고 했는데도 거부해 결국 농사 지은 거 버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포도를 따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웅양사과포도영농조합에서는 계약서를 구비해 놓고 장사꾼과 농가들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계약서 작성은 거의 없다. 정부도 밭떼기 거래 시 서면계약서 작성을 의무화 하는 '밭떼기 거래 서면계약 의무화'를 추진 중이지만 양파와 양배추 등 2개 품목에만 불과하다.
웅양사과포도영농조합 관계자는 "계약서가 있지만, 연로한 노인들은 잘 모를뿐더러 강제규정도 없다보니 장사꾼들이 꺼려한다"며 "사과나 포도같은 작물에도 밭떼기 서면계약 의무대상을 확대해 농가를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거창인터넷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