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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 아침에는 배추애벌레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어쩐 일일까?"
"일요일이라 배추벌레들도 모두들 교회에 갔는지도 모르지요. 배추애벌레들도 좀 쉬는 시간이 있어야하지 않겠어요."

요즈음 김장배추에 서식하는 배추애벌레를 잡아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아침에 한 번 저녁때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나무젓가락으로 배추애벌레를 잡아주느라 정신이 없는데요, 지난 목요일 날은 13마리, 그제는 5마리, 어제는 3마리… 그런데 오늘(9월 16일 일요일) 아침에는 이상하게도 배추애벌레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무젓가락으로 배추애벌레를 잡아내는 장면. 성충이 되면 아름다운 배추흰나비가 된다.
 나무젓가락으로 배추애벌레를 잡아내는 장면. 성충이 되면 아름다운 배추흰나비가 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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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배추애벌레가 오늘 아침에는 한 마리도 없다고 말을 했더니 배추애벌레도 일요일 날은 교회도 가고 먹는 일을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내의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지난 8월 20일 날 텃밭에 김장용 배추모종 120포기를 심고, 무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배추에 파란 배추애벌레가 생겨 배추를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배추애벌레는 배춧잎 색깔과 똑같은 보호색을 하고 있습니다. 녀석은 배추색깔과 너무나 비슷하여 식별하기가 어려운데다가 배추 속 가장 심장부 깊숙이 박혀 가장 여린 싹부터 갉아먹기 시작하므로 찾아내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배추 속 중앙에서부터 배춧잎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배추애벌레는 배추색과 똑 같은 보호색을 띠고 있어 발견하기 어렵다.
 배추 속 중앙에서부터 배춧잎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배추애벌레는 배추색과 똑 같은 보호색을 띠고 있어 발견하기 어렵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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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농약을 살포하라고 하지만 그 여린 배춧잎을 갉아먹는 배추애벌에게 차마 농약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먹는 배춧잎에 농약을 치기도 꺼림칙 하고요. 허지만 대량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사치스러운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대로 두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애벌레들이 배춧잎을 온통 갉아먹고 말기때문입니다. 때문에 농약을 전혀 치지않고는 배추농사를 짓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농약을 살포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농약 성분이 다 발효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기도 합니다.

배추애벌레와 벼룩풀벌레가 긹아먹은 배춧잎은 온통 구멍 투성이다.
 배추애벌레와 벼룩풀벌레가 긹아먹은 배춧잎은 온통 구멍 투성이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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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애벌레는 배춧잎 등을 갉아먹으며 번데기로 변했다가 성충이 되면 아름다운 배추흰나비로 변합니다. 배추애벌레가 배춧잎을 사각사각 갉아 먹을 때에는 징그럽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자라나면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꽃가루받이를 하여 식물을 번식시키는 유익한 곤충이기도 합니다. 애벌레일 경우에는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해충'이 되지만, 나비가 되면 이로운 '익충'이 되는 것이지요.

배추애벌레는 성충이 되면 아름다운 배추흰나비가 되어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익충이 된다.
 배추애벌레는 성충이 되면 아름다운 배추흰나비가 되어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익충이 된다.
ⓒ 브리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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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벌레들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꾸며 열심히 배춧잎을 갉아 먹는 녀석들을 나무젓가락으로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녀석들은 주로 아침 해가 뜨기 직전과 해가질 녘에 나타나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머리에 랜턴을 두르고 배추 속을 들여다보며 잡아내고 있는데 참으로 식별하기가 어렵군요.

비닐봉지에 잡아넣은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배추 밭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언덕배기에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지리산 쌍계사 뒤 불일암에서 만났던 스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곤충들도 다 생각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 지네나, 벌레를 잡으면 저 멀리 산에다 방생을 해줘 봐요. 그럼 언젠가는 녀석들이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은혜를 갚을 거니까."

흰나비가 될 꿈을 안고 열심히 배춧잎을 갉아먹는 배추애벌레
 흰나비가 될 꿈을 안고 열심히 배춧잎을 갉아먹는 배추애벌레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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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 배추벌레가 다시 배추밭으로 와서 배추를 갉아먹으면 어쩌려고  놓아주세요."
"아마 녀석들이 배추 밭까지 기어 오려면 한 1년은 걸릴 걸. 그러니 염려놓으시라고요. 하하하."

그런데 배추애벌레들이 내 마음을 알아차렸을까요? 어제 아침에도 오늘 아침에도 배추 밭에서 배추애벌레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아마 녀석들이 생명을 살려준 대가로 동료들에게 소문을 냈는지도 모르지요. "생명을 살려준 찰라 아저씨네 배추 밭은 손 대지말자"고 말입니다. 


태그:#배추애벌레, #배추흰나비, #김장배추, 무,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금가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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