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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26일, '행주산성 누리길'을 걸었다. 걸은 거리는 4km 남짓. 짧은 거리지만, 걷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 길이었다. 이 길, 미완성이다. 고양시에서 현재 한강을 따라 걸으면서 한강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는데, 사전답사를 겸해서 미리 고양시 관계자들과 같이 걸었던 것이다.

지난 4월 19일, 고양시는 고양시 시정연수원 광장에서 한강 철책선을 제거하는 행사를 연 바 있다. 행주산성에서 일산대교에 이르는 12.9km의 철책선을 제거될 예정이었다. 당시 행주산성에서 김포대교까지 3.6km를 먼저 제거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철책선은 장항습지 보호와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일부는 제거되지 않은 상태다.

고양시는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철책선을 따라 '행주산성 누리길'을 조성,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으로 길 조성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분단의 산물인 철책선을 남겨두어 역사적인 의미를 살리고 시민들이 걷기 좋은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 고양시의 계획이다.

현재 고양시에는 고양누리길 5개 코스(행주누리길, 고양동누리길, 서삼릉누리길, 송강누리길, 고봉누리길)가 만들어져 많은 시민들이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 고양시는 올해 안으로 이 길 외에도 북한산과 행주산성에 이르는 길을 새로 조성할 예정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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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고양시 관계자들과 함께 사전답사를 한 '행주산성 누리길'은 고양시 시정연수원 앞에서 시작해 한강 철책선을 따라 이어지다가 행주산성 정상으로 가는 길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예상거리는 4km.

이 길의 일부 구간은 오랜 세월동안 군부대만이 드나들었던 지역이라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 있으며, 일부 구간은 아예 길이 사라졌다. 이런 길을 사전답사라는 명목으로 기웃거려 본다는 건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사전답사에는 윤성선 고양시푸른도시사업소장, 이태형 녹지과장을 포함한 고양시 관계자들과 이미숙 고양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고양시는 고양누리길 조성과 관련, 시민단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행주산성 누리길은 <고양 누리길> 가운데 유일하게 한강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행주산성 누리길 입구는 현재 문이 닫혀 있다.
행주산성 누리길 입구는 현재 문이 닫혀 있다. ⓒ 유혜준

고양시시정연수원 앞에서 길은 시작되나, 입구는 철망으로 만든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군부대만 이용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을 통해 이어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었지만 나무계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거의 없는 오래되어 낡았다. 계단 주변은 흙이 움푹 파이고 나무가 불거졌다. 듬성듬성 이어진 계단을 걸어 한참을 올라가니 한강이 보이고 작은 초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소 주변을 둘러본 윤성선 소장은 "초소를 그대로 보존, 손을 봐서 전망대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강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철책선이 한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철책선 바깥은 잡풀이 잔뜩 우거져, 한강 조망이 쉽지 않았다. 잡풀을 제거한다면 푸른 한강이 한눈에 쏙 들어올 것 같기는 한데, 그 또한 쉬운 작업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철책선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철책선 바깥은 한강이다.
철책선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철책선 바깥은 한강이다. ⓒ 유혜준

철책선은 한강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길은 한 사람이 넉넉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였다. 한참을 걸으니 철책선은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데 길은 사라졌다. 대신 산으로 이어지는 외길이 보인다. 좁은 오솔길은 부근에 산소들이 흩어져 있어 성묘나 벌초를 하러 오는 이들이 다녀서 만들어진 길이라는 게 이태형 과장의 설명이었다.

군부대가 있는데 어떻게 들어오느냐는 내 질문에 이 과장은 행주산성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었다고 알려준다.

이곳에서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윤 소장은 한강 철책선을 따라 걸어보겠다면서 길이 없이 풀이 우거진 철책선을 따라 갔고, 이 과장은 능선을 따로 외줄기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걷기 좋은 길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아마도 그 길을 '행주산성 누리길' 코스에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포함 3명이 이 과장의 뒤를 따랐다. 이 길, 인적이 드물어 풀이 웃자라 있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의 아주 걷기 좋은 흙길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완만하게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걸으면서 흠뻑 흘린 땀을 식혀준다. 완만한 경사가 굽이치며 이어지는 길은 걷다보니 제주의 어느 오름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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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는 중하 정도라고 하면 될까. 걷다가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멀리 행주대교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더불어 눈으로 스며든다. 이 길, 아주 마음에 든다. 길이 너무 좋다고 하니 앞서 걷던 이태형 과장이 슬며시 웃는다.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길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한 이십 분 남짓 걸었을까? 오르막을 숨 가쁘게 올라가니 툭 트인 전망이 나타난다. 절반은 강이요, 절반은 뭍인 풍경이다. 길 초입에 들렀던 전망대 후보인 초소보다 전망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행주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서, 철조망을 따라 에둘러 길을 잡아 진강정에 도착했다. 사각형 정자인 진강정 역시 한강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강이란, 물이란 멀리서 바라만 봐도 마음을 말갛게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진강정에서 행주산성 대첩비가 있는 정상을 올랐다가 행주산성 입구로 내려가면 다시 길의 시작점인 시정연수원으로 내려갈 수 있다.

오솔길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듯이 걸었던 우리(나, 이태형 과장, 김귀선 계장)와 달리 어려운 길을 개척(?)하러 간 윤성선 소장과 이미숙 국장, 정창식씨 등은 봉변(?)을 당했다. 벌에 쏘인 것이다.

 행주산성 누리길에서 보이는 풍경
행주산성 누리길에서 보이는 풍경 ⓒ 유혜준

한강 철책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가마우지와 백로 서식지가 있었다고 한다. 오래도록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한강변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 길에서 새들의 흔적을 발견한 윤 소장 일행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그곳에 살던 벌들이 인기척에 놀라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벌들에게 쏘인 일행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마우지 같은 새들의 서식지임이 확인된다면 보호해야 할 것 같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훼손되지 않도록 일부 구간은 사람들의 통행을 막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걷기 좋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가 벌침에 쏘인 윤 소장은 이렇게 걸은 소감을 밝혔다. 새로운 길을 만들거나 잇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답사를 나서면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길을 걸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늘었다. 벌떼들.

이번 답사와 관련, 이태형 고양시녹지과장은 "사람들이 즐겨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보호와 환경훼손 등의 문제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행주산성 누리길은 신중하게 구간과 거리를 확정할 생각"이라며 "가급적이면 구조물이나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길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고양시는 '행주산성 누리길'을 앞으로 몇 차례 답사를 더 하고 길을 정비한 뒤에 올해 안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행주산성 누리길#고양시#고양누리길#한강#철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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