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남녘땅, 가야산 기슭에 합천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언덕 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원폭 피해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진 걸까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마당에는 히로시마에서 건너온 도토리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고 이순기 할아버지와 그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가져와 심은 도토리나무를 소재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원자폭탄 피폭자의 아픔 그리고 핵과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을 따뜻하고 잔잔하게 담아낸 이야기 그림책이 나왔다.
<평화를 꿈꾸는 도토리나무>(오카도 다카코 지음·마쓰나가 요시로 그림, 도토리숲)는 한국인 원폭피폭자의 이야기를 그린 동화이지만, 이야기를 쓴 사람도 그림을 그린 사람도 일본인이다.
연극, 뮤지컬의 각본과 노랫말 등을 써 온 일본 도치기현 출신의 작가 오카도 다카코씨는 한국인 원자폭탄 피폭자인 이순기씨가 남긴 수기를 읽고, 그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이순기 할아버지와 일본인 의사 마루야마씨의 우정에 감동을 받아 동화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어린시절의 이야기에 창작도 들어갔기 때문에 작가의 뜻에 따라 동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실명을 그대로 따지 않고 김순기로 살짝 바꾸어졌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순기 할아버지, 원자폭탄 맞던 그날동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김순기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가네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자랐지요. 그 무렵, 한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나라말과 나라 이름을 쓸 수 없었답니다. 쌀이며 논밭을 일본에 빼앗기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바다 건너 일본의 히로시마 공장 같은 곳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속아서 따라간 사람들도 있었고요." 순기의 부모는 일제강점하 피폐해진 고향에서 살 길이 막막해지자 생계를 위해 일본 히로시마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태어나 일본 이름을 갖고 일본말을 배우며 살았던 어린 시절의 순기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한글을 배우고 그 기쁨에 벅차 학교 칠판에 한글로 '어머니'라는 글자를 쓴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에게 다짜고자 얻어 맞았다.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막무가내로 맞고 울던 소년 순기에게 짝꿍이던 다케오가 다가와 손바닥 위에 도토리 몇 알을 놓아주며 속삭인다.
"우리 함께 도토리 주우러 갈까?" 그뒤로 다케오는 순기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당시 아시아와 태평양을 침략하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전쟁 중이던 일본은 점점 패색이 짙어졌고 1944년 무렵부터는 잦은 공습을 받았다.
일본 전국에 불타는 마을이 점점 많아지던 어느 여름. 1945년 8월 6일 아침, 별안간 주위가 새하얗게 빛나더니 어마어마한 폭풍이 일고 태양이 폭발한 것처럼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숯처럼 불타 재가 되고 부상을 당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순기와 다케오는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 다케오를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덤벼드는 불길을 피해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온 순기가 본 것은 새까맣게 불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뒹구는 모습이었다. "물…물!"을 애타게 찾으며 간신히 기어서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그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하나로 16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어요. 그 가운데 3만 명이 한국 사람이었어요." 전쟁이 끝나고 조국이 해방되자 다행스레 살아남은 순기의 가족은 고생 끝에 고향 합천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도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도 할 수 없던 순기에게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고운 아내를 맞아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소박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런 그에게 원폭 후유증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는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한동안 가족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 한국에서는 치료법을 몰라 죽은 듯이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를 줍다1996년 합천에 원폭피해자를 위한 복지회관이 건립되었다. 어느새 할아버지가 된 김순기도 복지회관에 들어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원폭 후유증의 치료를 위해 일본 히로시마의 전문병원을 방문한다. 오랜만에 다시 밟은 히로시마에서 그는 피폭자 의사 마루야마씨를 만난다. 어린 시절의 친구 다케오의 눈을 쏙 빼닮은 의사 마루야마씨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치료를 받는 김순기 할아버지를 형제처럼 늘 위로하고 격려해주었고, 김순기 할아버지도 마루야마씨를 의지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날 아침, 김 할아버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목숨이 불탄 곳에 조성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둘러 보았다. 공원 내에는 얼마 전에 공원 밖에 쓸쓸하게 놓여 있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오게 된 한국인 원폭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도 있었는데, 그 비석 앞에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 도토토리에는 평화에 대한 동포들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여 이 도토리를 합천으로 가지고 돌아와 밭에 심었다. 열심히 거름을 주고 정성을 쏟아도 좀처럼 싹이 트지 않던 도토리에 조그만 싹이 트자, 곧바로 일본에 있는 마루야마씨에게 소식을 전했다.
"도토리가 힘을 주었군요. 김순기 선생님 인생은 인류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입니다. 글로 남기는 게 어떨까요?" 마루야마씨에게서 이런 권유를 받은 김 할아버지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래, 이대로 끝나선 안 돼. 한국 사람들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슬픔을 전하지 않으면…'이라고 생각하고, 한 줄 두 줄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 할아버지에게 죽음이 가까워져 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마루야마씨가 일본에서 합천까지 와서 김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앉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이렇게 둘이서 함께 '한 사람의 역사'를 완성했다.
김순기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몇 해 뒤, 밭에 심은 도토리나무가 자라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앞마당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옮겨 심던 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피폭자들이 모여 평화를 기원하며 함께 흙을 덮었다.
실제로 경남 합천에 있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입구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그 도토리나무가 있다. 물론 실제 모델인 이순기 할아버지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가져와 심은 그 도토리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2000년에 싹이 튼 이 나무는 현재 만 열두 살이 되었고, 어른 키만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도토리를 심으며 원폭의 아픔을 딛고 평화에 대한 소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준 것처럼, 지금 합천은 피폭자의 아픔을 배우고 나누며, 핵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고자 하는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는 평화의 마을로 변화해 가고 있다.
<평화를 꿈꾸는 도토리나무>는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한국인 피폭자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잔잔한 글과 그림이 이야기를 어둡거나 무겁게 이끌지 않고 서정성을 유지하며, 한 장면 한 장면에서 평화, 슬픔, 우정을 담아 오래도록 남을 울림을 준다.
이순기 할아버지와 도토리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본문 뒤에는 또 하나의 읽을거리를 덧붙여져 있다.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국내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그리고 3세들의 건강과 복지, 인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하며, "원자폭탄 피해자 분들의 아픔이나 삶의 모습은 감춰야 할 부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도움을 주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인세 일부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한국원폭2세환우의 쉼터 합천평화의집, 평화박물관에 기부되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