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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박불똥 작. 못들은 늘 망치에게 머리를 맞으며 살았다. 어느날 못들이 힘을 합쳐 장도리를 포위하여 꼼짝 못하게 제압했다. 그러나 못의 뒷통수를 내려 친 것은 누구일까...
▲ Road 1 (망치) 2012년 박불똥 작. 못들은 늘 망치에게 머리를 맞으며 살았다. 어느날 못들이 힘을 합쳐 장도리를 포위하여 꼼짝 못하게 제압했다. 그러나 못의 뒷통수를 내려 친 것은 누구일까...
ⓒ 박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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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소재 트렁크 갤러리. 10월 전시회 초대 작가는 박불똥. 박불똥은 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미술 출신 중견 작가로 사진콜라주 작업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오브제를 활용한 사진 작업을 통해 한국사회의 제반 모순을 특유의 화법으로 들추고 꼬집는 문제작들을 선보였다. 이번 개인전 주제는 <못-쓸-것>.

트렁크 갤러리는 사진 미디어 전문 갤러리다. 회화에 견주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거나, 예쁜 사진만을 선호하던 편협된 사진계의 통념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출발했다. 사진에 에디션 제도를 도입하고, 작가들의 창작 여건을 투명하고 합리적인 유통구조로 지원하면서 사진에 대한 낡은 벽을 허물고 보다 현실적이며 인문학적인 담론의 봇물을 터트려왔다.

트렁크 갤러리 박영숙 관장은 '미친년'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여성주의 사진작가로도 유명한 사진계의 대모. 네이버 포토갤러리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과 코디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72세의 영원한 현역으로 통한다. 2012년 박불똥 초대전은 이민호·김미루·박연희·김시영·류정민·홍승희·김진희에 이어 8번째로 기획된 셈. 오픈 전날 트렁크 갤러리 박영숙 관장을 만났다.

"박불똥은 민중미술의 선두주자였고 일찌기 사진을 미디어로 활용 할 줄 아는 작가였지요. 사진가들이 쉽게 다룰 수 없는 서사적인 내용들을 시니컬하게 담아 내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죠. 이번 작업은 과거와 달리 전복적인 사유를 촉구하는 박불똥만의 울림이 있어요. 미비하고, 소소한 사물이나 일상사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생명을 불어넣고 전복을 꾀하는 모습에서 다양한 울림이 와요. 이 느낌의 파동은 일반 사진가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박불똥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지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호랑나비는 죽어서 내게 날개를 남겼다.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이슥할 무렵이면 날개 달린 갖가지 미물들의 사체가 산중 작업실 마당 곳곳에 산발한다. 그것들은 대개 개미들의 식량이 되거나 비바람에 부대끼며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 주운 호랑나비 한 마리, 어느덧 몸은 다 바스라지고 고운 날개만 두 쌍 남았다.  그보다 앞서, 타이어에 펑크를 낸 작은 쇳조각을 이것도 인연이라 여기며 소중히 보관해뒀었는데 그 모양이 호랑나비 날개와 잘 어울린다. 버려진 철사토막을 덧붙여 작년에 <Butfly 1>을 만들었다' (박불똥 작업노트 중에서)
2011년 작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호랑나비는 죽어서 내게 날개를 남겼다.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이슥할 무렵이면 날개 달린 갖가지 미물들의 사체가 산중 작업실 마당 곳곳에 산발한다. 그것들은 대개 개미들의 식량이 되거나 비바람에 부대끼며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 주운 호랑나비 한 마리, 어느덧 몸은 다 바스라지고 고운 날개만 두 쌍 남았다. 그보다 앞서, 타이어에 펑크를 낸 작은 쇳조각을 이것도 인연이라 여기며 소중히 보관해뒀었는데 그 모양이 호랑나비 날개와 잘 어울린다. 버려진 철사토막을 덧붙여 작년에 <Butfly 1>을 만들었다' (박불똥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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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여름장마철 폭우로 넘쳐난 계곡물이 마을길을 군데군데 파먹고 들쑤셔놓았다. 그런 길을 걷다가 한 곳에 한 식구인 듯 우르르 모여 있는 알루미늄캔의 삭다 남은 ‘유해’ 여러 구를 발견했다. 마치 산사태 때 유실된 고분 속 인골을 보는 것 같았다. 알루미늄캔은 재활용선호도가 높은 편인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못 쓸 것’이 되었나? 그 중 서너 개를 골라 작업실 테이블 위에 갖다 두고서 이따금씩 들여다보며 공연히 뇌까리곤 한다. 얘들은 어쩌면... 아마... 틀림없이... 유목민이었을 거야. (박불똥 작업노트)
▲ Nomad 3 (유목민) 어느 해인가, 여름장마철 폭우로 넘쳐난 계곡물이 마을길을 군데군데 파먹고 들쑤셔놓았다. 그런 길을 걷다가 한 곳에 한 식구인 듯 우르르 모여 있는 알루미늄캔의 삭다 남은 ‘유해’ 여러 구를 발견했다. 마치 산사태 때 유실된 고분 속 인골을 보는 것 같았다. 알루미늄캔은 재활용선호도가 높은 편인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못 쓸 것’이 되었나? 그 중 서너 개를 골라 작업실 테이블 위에 갖다 두고서 이따금씩 들여다보며 공연히 뇌까리곤 한다. 얘들은 어쩌면... 아마... 틀림없이... 유목민이었을 거야. (박불똥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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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은 전시명과 작품명을 각별히 여긴다. 작품과 작품명은 자물쇠와 열쇠처럼 아주 긴밀하고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박불똥'으로 알려진 예명 속에도 자신의 미학과 정치적 지향점을 심어 놓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작용과 정치권력의 속성에 대한 통찰을 '박'터지게, '불똥'튀게 일 삼겠다는 뜻이다. 또한 한자 뜻을 풀면 어질 '박'+ 푸닥거리 '불'+ 붉은칠할 '동'이다. 원시공동체에 대한 열망으로써 모순투성이 현실을 타파하고 싶다는, 다소'불온한' 꿍꿍이를 소박하게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거풍'이 불자 떠오르는 작품

태풍이 지나자 선거풍이 분다. 문득 떠오르는 박불똥 작품이 있다. 지난 전시에 출품된 작품인데 대통령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정치가들은 말로 먹고 산다. 말 잘하면 정치가가 되기도 하지만 사기꾼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정치가가 사기꾼이 되기도 하고 사기꾼이 정치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질을 검정해보는 것이 중요하단다. '자질'이라고? 이 말, 잘 걸렸다.

지난 대선 기간의 한 날 저녁. TV뉴스를 틀어 놓은 채 발톱을 깍고 있는 데 여자 앵커의 방송멘트 한 줄이 귀에 쏘옥 들어 왔다." 대선 후보드레 자지를 점검해 보는 시간입니다." 후잉? 다행히 대선 출마자 중 여성은 없었다.(박불똥의 좔 전 2011년 발행 팜플릿 중에서) 박불똥은 사소한 일상 언어에서도 정치를 희화할 꺼리를 낚아 채 웃음을 준다. 올 해는 대선 후보자들의 자질을 점검할 때 특별히 주의 할 대목이다.
▲ 대선후보자들의자질을점검해보는시간입니다 지난 대선 기간의 한 날 저녁. TV뉴스를 틀어 놓은 채 발톱을 깍고 있는 데 여자 앵커의 방송멘트 한 줄이 귀에 쏘옥 들어 왔다." 대선 후보드레 자지를 점검해 보는 시간입니다." 후잉? 다행히 대선 출마자 중 여성은 없었다.(박불똥의 좔 전 2011년 발행 팜플릿 중에서) 박불똥은 사소한 일상 언어에서도 정치를 희화할 꺼리를 낚아 채 웃음을 준다. 올 해는 대선 후보자들의 자질을 점검할 때 특별히 주의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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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통령 선거 이명박 후보 선거홍보용 인쇄물에 호츠키스를 찍어 만들어 그 해 충청각에서 열린 달콤, 살벌, 대선전(유병학 기획)에 출품한 박불똥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다.
▲ 호치키스1 2007년 대통령 선거 이명박 후보 선거홍보용 인쇄물에 호츠키스를 찍어 만들어 그 해 충청각에서 열린 달콤, 살벌, 대선전(유병학 기획)에 출품한 박불똥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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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의 작품은 정치권력이 일방적으로 쏘아 대는 말장난의 총구를 권력자를 향해 구부려놓거나 해학적 수사로 무장해제 시켜 '끽'소리 못 나게 한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제작한 <호치키스1>은 대통령 선거 홍보용 인쇄물을 소재로 한나라당 후보 코밑에 철심을 찍어 댄 작품이다. 후보시절 유세 때 '저를 찍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한 사람은 나중에 대통령이 됐다. 그가 원한 대로 찍어 주었더니 결과는 채플린 감독 영화 제목 '독재자'처럼 되고 말았다. 박불똥은 이 작품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되기 전에 예견해 만든 작품이었다.

노골적인 표현 행위에도 불구하고 박불똥의 작업과정은 어린이들 놀이 마냥 단순하고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그의 예지는 사냥감을 포착하고 달려드는 송곳니처럼 간담을 서늘케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역설과 반어를 고추냉이 마냥 살짝 찍어 발라, 한 주먹에 가볍게 쥐어다 펴 보이는 순발력은 박불똥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감각적인 초밥이다. 그 맛은 새콤 쫀득하다.

이번 트렁크갤러리 <못-쓸-것>전에는 신작 15점이 걸렸다. 거의 사람 등신대 크기다. 소재로 쓰인 오브제들은 작고 시선을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못 쓸 것'들이다. 트렁크갤러리 10월의 전시 박불똥의 <못-쓸-것> 전 작업노트를 읽어보면 그동안의 시대와 시련에 대한 미학적 입장을 작심한 듯 독립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하나같이 일상에서 자연히 나온 '못 쓸 것'의 디테일을 나 자신에 빗대어 카메라로 포착한, 결국 자화상들이다. 그 '못 쓸 것'은 동시에 작업의 사변(思辨)을 이끄는 주제이기도 하다. (중략) '못 쓸 것' 전은 내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한 '쓰레기', 우연히 만난 인연의 일단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 '못 쓸 것'이 명색이나마 미술작품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쓸 것'으로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못 쓸 것' 展은, 지난 날 엄연한 '쓸 것'이었으나 세월의 침식으로 이제 하등 '못 쓸 것'이 되고만 이 세상 모든 자질구레한 인간 사물 사건 일 등에 대한 관심의 이해의 애정의 존중의 끝내는 존경의 헌화이다."

현실-예술의 경계서 민중적 관점을 잃지 않은 박불똥

저 못들을 박았을 또 다른 망치! 저 망치의 속박을 화해라는 이름의 정치 쇼로써 결국 풀어주고 마는 빠루! 그리하여 환호에서 탄식으로, 허탈감에 젖어야 할 저 못들!...(박불똥 작업노트)
▲ Road 2 (빠루) 저 못들을 박았을 또 다른 망치! 저 망치의 속박을 화해라는 이름의 정치 쇼로써 결국 풀어주고 마는 빠루! 그리하여 환호에서 탄식으로, 허탈감에 젖어야 할 저 못들!...(박불똥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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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못 쓸 것'에 대한 예술적 전복이다. 이러한 시도 속에는 박불똥이 현실과 예술의 경계에서 민중적 관점을 잃지 않고 살아온 감각과 믿음이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불똥은 그동안 삶, 가능한 모든 현장 속에서 만져보고, 꼬집어 보며 몸을 사리지 않고 표현해 왔다. 쉽게 팔리지 않고 스스로 못 쓸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삶과 작품들을 껴안고 일관되게 버텼다. 이제 박불똥이 시도하는 <못-쓸-것>에 대한 예술적 전복은 시대가 요청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새로운 전복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사고의 전복, 민중적 사변의 예술적 확산을 노리고 있다.

"빠루를 보면 불가피한 폭력의 어떤 기운 같은 것이 거기서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다. 비약하여 지난 독재 권력들의 상징으로도 읽는다. 그런 빠루를, 야만스런 시대의 폭력성을 '못'들이 꼼짝 못하게 제압하여 칠성판에 눕혔다.

정확히는, 못들로 하여금 빠루를 제압하게 조치한 건, 망치의 타격이고 그 망치를 휘두른 또 다른 어떤 배후의 힘이다. 소인국에서 결박당한 거인 걸리버, 그의 정치성향이 어떤가에 따라 빠루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풀려날 수도 있다.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피투성이가 되었는가 하면 전두환이 팔순잔치에서 여봐란 듯이 풍악을 울려대며 여전히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노라면 이놈의 세상, 빠루든 망치든 못이든 모두 차라리 '못 쓸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퇴행성 회의도 든다.

못을 박아오던 망치가 못에 의해 제압당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내 시선은 그 상태 너머의 어떤 것을 향한다."(박불똥의 작업노트 중)

어른이 드러누운 만큼 큰 실제 작품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진저리를 치게 된다. 그 시선은 중의적이고 열려 있어 사변의 확장을 자극한다.

망치로 뒷통수를 맞기만 하던 못이 여럿이 모여 드디어 망치를 제압한다. 그러나 망치를 제압한 못들은 또 다른 망치에 의해 뒷통수를 맞은 결과다. 그 망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지붕 위로 올라가 쫓아 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Road 1(망치)>와<Road 2(빠루)>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민중과 정치, 자본 권력의 관계와 속성을 명징하게 드러낸, 박불똥 작업의 진수를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박불똥은 누구?
박불똥(朴祓彤·Park Bul-Dong, 본명 :박상모·朴相模·Park Sang-Mo)
1956년 경남 하동 출생 198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개인전:
1985년 - 눈빛 展 / 관훈미술관, 서울
1987년 - 졸작 展 / 그림마당 민, 서울
1989년 - 결사반대 展 / 그림마당 민, 서울
1992년 - 관능의 불구에 대한 자백 展 / 금호미술관, 서울 / 다다갤러리, 부산
1993년 - Reproductive 오리지널 展 / 신세계갤러리, 서울
1996년 - 곤충채집 展 / 사비나갤러리, 서울
1999년 - 사유재산 展 / 사비나갤러리, 서울
2001년 - 토끼와 거북 展 / 갤러리아츠윌, 서울
2011년 - 박불똥의 좔 展 / 갤러리자인제노, 서울
2011년 - 박불똥의 형이하 악 展 / 관훈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 :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전화번호02-3210-1233
누리집 : http://www.trunkgallery.com



태그:#박불똥, #<못-쓸-것>전,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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