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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중순 초여름, 40대 중반의 한 남자 김철수(가명)씨가 대전역 지하철 광장으로 내려섰습니다. 지하철 광장으로 내려선 그 남자는 뚫어져라 한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남자가 보고 있는 곳은 지역의 민간단체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홍보하는 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였습니다.

이튿날 김철수씨는 민생상담네트워크새벽 상담센터(이하 새벽)를 찾아가 자신의 문제를 상담했습니다. 김철수씨는 새벽의 민생상담활동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았습니다. 

새벽 홍보활동  민생복지상담단체 박람회
▲ 새벽 홍보활동 민생복지상담단체 박람회
ⓒ 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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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씨는 어린 시절 충남의 한 중소도시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외톨이로 자랐습니다. 김철수씨는 의붓아버지와 의붓형제 사이에서 가족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청소년기가 되어 그는 무작정 서울로 가출을 했고, 모든 가족관계가 단절된 채 고아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김철수씨는 서울에서 이것저것 일용노동을 하며 눈 너머로 자동차정비 일을 배웠습니다. 그 후 전국을 떠돌며 작은 카센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까지 내려가서 자동차정비공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차량도색부서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김철수씨는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도 좀 모으게 되었고, 장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도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 중반, 김철수씨는 자기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철수씨는 그동안 모은 돈에다 카드대출 등 여기저기 빚을 내어 무허가 자동차도색공장을 차렸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자 친구도 3000만 원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김철수씨는 작은 카센터를 돌며 도색차량을 수주하는 영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한파가 몰아치면서 사업이 휘청거렸습니다. 작은 카센터들과 거래도 끊기고 차량도색수리 대금도 떼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철수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차량도색공장을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색공장을 처분한 돈으로 빚을 정리하고 나니, 자신이 투자했던 돈과 여자친구의 출자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그 바람에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고, 김철수씨는 다시 홀로 전국을 유랑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철수씨는 오랫동안 반 노숙을 하며 전국을 떠돌았고 간간이 일용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김철수씨는 몇몇 중한 질환을 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도 못 가고 제때 치료를 못한 채 2007년경 대전으로 와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철수씨는 길거리에서 쓰러졌고 119구조 차량에 실려 충남대병원응급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김철수씨는 병원에서 수술 및 통원치료를 받으며 1000만 원이 넘는 병원비가 발생했습니다. 김철수씨는 급한 대로 신용카드대출을 받아 병원비를 충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질병은 수술과 병원 치료 후로도 별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철수씨는 일용노동마저 할 수 없었고 카드빚만 점점 쌓여갔습니다.

도저히 살길을 찾지 못한 김철수씨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김철수씨는 몇 달 동안 병원과 약국을 드나들며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009년 6월 충분한 수면제를 모았고 자살결행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김철수씨는 버스를 타고 한적한 교외로 나가려다 대전역 부근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초여름 햇살이 유난히 뜨겁고 무더워서 무심결에 대전역 지하철광장으로 내려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새벽 홍보부스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튿날 새벽상담센터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파산면책은 금융자본주의 시장사회의 인간권리

 동아시아 금융피해자 교류회 이모저모
 동아시아 금융피해자 교류회 이모저모
ⓒ 금융피해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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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주의 시장사회에서 기업은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회생도 하고 파산도 합니다. 소위 법인격을 부여받은 기업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 사회는 매우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피와 살을 가진 진짜사람은 생사존망의 상황에서 파산을 하거나 회생을 하는 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폄훼할까요? 생사존망의 위기상황에서 아무런 길이 보이자 않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빚이 삼사대 후손에게까지 세습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마땅한 일일까요?

금융자본주의 시장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다 빚을 지게 되고 파산에 이르게 되는 상황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도리어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가난한 서민들일수록 경제위기와 사회적 역경을 버텨내기 더더욱 힘에 겹습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 영세자영업자와 하루벌이 노동자들의 양산, 소득과 경제상황의 양극화 등 가난한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사회경제위기를 만나면 속절없이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문제이거나 개인의 무능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의 금융자본주의가 일으키는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수많은 기업들의 파산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는 것처럼, 개인의 파산상황 역시 역시 사회적 책임의 문제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치여 절망과 고통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개인채무자에게 공권력과 사법권을 동원하여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열하고 비도덕적인 행위입니다.

김철수씨는 새벽상담센터의 상담을 통하여 우선 기초생활수급자신청을 안내받아 수급자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자체의 실사를 거쳐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법원에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한 후 파산면책을 받았습니다. 현재, 김철수씨는 어느 정도 건강도 회복했고 미래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민생상담네트워크새벽은 민생복지상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입니다. 주요 상담내용은 기초법 등 복지상담, 개인파산면책 및 회생상담, 저소득생활경제상담, 기타 주민생활법률상담 입니다.



#김철호#개인파산면책 무료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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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와 불평등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다. 필자는 희년빚탕감 상담활동가로서 '생명,공동체,섬김,나눔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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