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소주를 10병 먹는다. 그래도 안취하더라."최근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선창규(53)씨는 씁쓸한 말들을 토해냈다. 막걸리 몇잔에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했다.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앞서 검찰이 뒤집어 씌운 '광우병 쇠고기 유통업자'라는 누명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맨날 '약자를 돕겠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 정의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그들에게 '정의'는 없다. 오죽했으면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검사에게 '천벌을 받을 거다'고 말했겠나?"평생 검찰 청사를 드나든 적이 없는 선씨에게 '검찰'을 되돌아보게 만든 '사건'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의 비아냥 "광우병 쇠고기 판 사람이 천주교 신자?"
전남 순천출신인 선씨는 20살 때부터 축산물 유통분야에서 일해왔다. 한양유통과 갤러리아백화점을 거쳐 지난 2000년부터는 프랑스 유통업체인 한국까르푸로 자리를 옮겨 상품개발과장과 구매부장을 지냈다. 한국까르푸가 이랜드 홈에버로 바뀐 뒤에는 직수입팀장으로 일하다 지난 2007년 3월 퇴사했다.
이후 선씨는 28년간 쌓은 축산물 유통 경력을 살려 '축산물 유통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와 대형마트를 연결해주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축산물 유통분야에서 한우물을 파온 경력 때문인지 성과도 좋았다.
그런데 지난 2009년 2월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김석우)는 서울 강남 개포동 아파트 앞에서 그를 긴급체포했다. '광우병 쇠고기 정국'의 후폭풍이 여전한 때였다. 검찰은 그의 동생과 처남이 운영하는 업체까지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그는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동생과 처남의 업체까지 압수수색했다"고 압수수색의 불법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검찰의 한 수사관은 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다가 성모 마리아상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비아냥댔다.
"광우병 쇠고기 팔아먹은 사람이 천주교를 다니네."수사 초기 검찰은 한국까르푸에 근무하던 선씨가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함유 가능성이 있어 폐기명령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켰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따라 '광우병 의심 LA갈비 시간차 판매', '유통기한 지난 미국산 쇠고기, 호주산으로 둔갑'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검찰발 기사들이 쏟아졌다.
검찰은 총 3차례에 걸쳐 선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1차 기소(2009년 2월)에서는 '호주산으로 둔갑시켰다'는 내용이 빠졌고, 3차 기소(2009년 8월)에서는 '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탈세혐의'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그는 2009년 2월부터 9월까지 '미결구금'(판결선고 전 구금) 상태에 있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이상억 검사(현 서울남부지검 공판부장)는 "선창규는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를 유통기한이 1년 반이나 지난 다음에 부하직원을 시켜 원산지를 호주산으로 바꾼 뒤 까르푸 전 매장에 판매한 파렴치한 사람"이라며 선씨의 구속영장 발부를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미국산 쇠고기 유통과 관련한 선씨의 혐의에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합의12부(부장판사 김용관)는 지난 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선씨가 판매한 미국산 LA갈비에 광우병 우려 물질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유통기한을 넘겨서 판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애초 검찰은 1)광우병 위험물질(SRM) 함유 우려 2)유통기한 경과 3)호주산 둔갑 등을 선씨의 주요한 범죄 혐의로 제시했다. 하지만 3)은 검찰이 스스로 공소장에서 뺐고, 1)과 2)는 무죄판결이 났다. 1심 판결로만 본다면 그는 치명적인 누명을 벗은 셈이다.
"검사는 국민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위해서 일했다" 하지만 선씨에게는 '세금폭탄'의 문제가 남아 있다. 검찰이 그를 세 차례 기소하는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유통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탈세혐의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도 그의 탈세혐의를 인정해 벌금 40억 원을 선고했다. 벌금까지 합쳐 그가 내야 할 세금은 무려 100억 원이 넘는다.
선씨는 "축협 안에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면서 생긴 수익이어서 축협에서 세금을 처리하는 걸로 알았다"며 "그래서 사업자로 등록할 생각을 못했다, 계획적으로 탈세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검찰이 미국산 쇠고기 유통건과 관련이 없는 탈세혐의를 추가로 기소한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선씨는 검찰에 체포된 직후부터 자신의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 다 죽게 생겼다, 형이 자백하라"는 동생의 설득도 거절했다. 그러자 검찰이 그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세무조사' 카드를 활용하다가 여의치 않자 탈세혐의를 추가로 기소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선씨는 공판 과정에서 검찰의 '플리바기닝(사건 해결에 협조한 범죄자의 형을 감면해주는 유죄협상 제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저를) 구속시킨 뒤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검사는 (저를) 검사실에 불러 조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쇠고기 둔갑 유통 사실만 자백하면 다른 건 모두 빼주고 과세자료를 국세청에 넘기지 않겠다'고 자백을 강요했다."게다가 선씨는 기자와 수차례 만난 자리에서 "내가 혐의를 계속 부인하자 수사검사가 심지어 '광우병 쇠고기건과 세금조사건을 빼줄테니 민주통합당 자치단체장에게 1억 원을 줬다는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장수축협에 '컨설팅 약속이행 보증금'으로 맡겨둔 1억 원을 검찰에서 '뇌물'로 둔갑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집요하게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에 집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검찰이 광우병 쇠고기 국면을 이용해 '실적쌓기용 수사'를 무리하게 벌였다가 결국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선씨는 지난 2월 1심 판결 직후 "이번 사건은 검사와 그의 선배 변호사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이라며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등은 무죄판결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십억 원의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모의'에 전북지역 유력축산업자인 박아무개씨, 박씨를 스폰서로 둔 남원지청장출신 변호사와 검찰 간부 등이 얽혀 있다는 주장이다.
선씨가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를 유통시켰고,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에 1억 원의 뇌물을 줬다고 거짓자백을 했다면 '세금폭탄'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수사검사의 충고대로 1-2년 감옥에서 고생하는 대신 자신이 쌓아놓은 재산만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액의 세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광우병 쇠고기 유통업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를 받으면서 체험한 '검찰의 실체는 그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검찰이 증거를 가지고 수사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없는 것까지 만들어낸다. 피의자에게는 인권도 없다. 자기들이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포승줄이 묶인 나를 조사받으러 온 참고인들에게 보여줬다.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너도 저렇게 된다'고 압박하는 것이다. 나를 그런 도구로 사용했다."선씨는 "내가 직접 겪은 검사는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욕심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며 "검찰조직을 위해서라도 이런 검사들은 걸려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우병 쇠고기 유통사건' 맡은 검사들은 '승승장구'?한편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김석우 검사는 선씨 등을 구속한 이후 부산지검 형사1부장을 거쳐 현재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북 임실출신인 그는 남원지청장도 지냈다.
또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이상억 검사는 식약청 위해사범중앙수사단 책임수사관(특별지휘수사관)과 통영지청 부장검사, 광주지검 강력부장을 거쳐 최근 서울남부지검(공판부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그는 1심 판결 결과와 관련 "할 얘기가 없다"고만 했다.
서울남부지검이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유통 혐의로 선씨 등을 구속하자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들의 수사 성과를 인정해 수사팀에 500만 원의 격려금까지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심 판결에서 관련 혐의들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격려금의 빛이 조금 바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