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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일기> 겉표지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일기> 겉표지
ⓒ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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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육군본부는 '휴전선 155마일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분단 이후 반세기 만에 최초로 휴전선 인근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한 민간인 사진작가(최병관)가 DMZ(비무장지대)에 투입되었다. 작가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햇수로 3년, 무려 450여 일간을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에 이르는 휴전선 155마일을 이동하며 작업을 했다.

철책선을 지키는 병사들의 부대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살을 뚫는 더위와 카메라까지 얼어붙는 추위와 싸우며, 조금만 벗어나면 지뢰가 묻힌 곳들과 여차하면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는 절벽, 북한군 초소와 불과 몇백 미터 거리의 초소 등으로 이동하며.

서부전선보다 훨씬 험악한 동부전선에서는,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그곳을 지키는 병사들의 노고와 긴장에 감사해하며 "내가 이번 휴전선 155마일 사진작업을 하다가 죽거나 사고를 당할 경우 국가나 육군본부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란 유서를 스스로 쓰며.

이때 찍은 사진들은 '한국의 비무장지대 평화와 생명을 찾아서'란 주제의 사진전(2010년, 뉴욕 유엔본부)을 통해 대한민국의 비무장지대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사진작가에게는 'DMZ사진(작)가'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일기>(최병관 글과 사진, 한울 펴냄)는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각 사단 예하 부대원들의 긴밀한 협조 아래 자그마치 450여 일 동안 진행된 '휴전선 155마일 프로젝트'중 1997년 4월 18일부터 1998년 2월 24일까지의 기록이다.

지난 6월에 입대한 아들 생각에 차마 넘기지 못한 책장들과 사진 몇 장

"제가 군인으로 생활하는 동안은 언제나 전시상태라고 생각하며 군 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오늘밤은 푹 주무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지난 6월. 아들은 내게 이런 말을 남기고 입대를 했다. 그리고 유독 더웠던 올여름, 8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우리나라 서부전선을 지키는 아무개사단 예하부대에 배치되어 10월 중순 현재, 신병위로 휴가를 한 달 가량 앞두고 있다.

하필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입대를 해 마음이 더 애틋하고 허전했다.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생일이 드러나는 세대인데, 하필 생일 전날 입대를 하라고 영장을 보냈음이 야속했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누구나 가야 할 길을 가는 거라지만, 하필 생일날 훈련소에서 첫 아침을 맞이해야 함이 부모로서 속상하기만 했다.

'든 자리는 표가 나지 않아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기껏 신발 한 켤레 벗어났던 현관이 한동안 휑하게만 느껴졌다. 알바 등으로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 날이 더 많았는데도 저녁은 늘 쓸쓸하기만 했다. 아들이 자주 앉았던 자리, 아들과 함께 즐겨 보던 프로그램, 아들의 책들…, 아들과 관계된 것들은 모두 쓸쓸하고 그저 허전할 뿐이었다.

ⓒ 최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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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전 9시 7분. 아들은 전화를 해왔다. 입대한 지 13일째 되는 날이었다. 입대 후 첫 만남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꿈결처럼 흘러가 버린 입대 후 첫 전화를 어찌 잊으랴. 너무 기쁘고 신기해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아들과 짧게 주고받았던 이야기들과 아들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또 떠올리며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들뜨곤 했다. 아들이 전화를 해올 가능성이 많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어서 오길 오매불망하며.

첫 통화를 한 다음날 아들의 편지를 받았다. 이미 일주일 전에 쓴 편지였다. 편지에는 언젠가는 하게 될 첫 통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보고 싶어 눈물만 난다는, 그래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물만 나와 말 한마디도 못하고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나 전화를 끊어야 한다면 어쩌나하는.

'첫 전화를 했을 때 우리 ○○이도 저랬을까. 저 병사는 왜 우는 걸까? 우리 아들처럼 그리움에 목이 메어서일까. 아니면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럴까? 아마도 유격훈련을 떠나 열흘 가까이 전화 한 통화 없나? 명절에는 면회할 수 있을까. 어디 아픈 것은 아니겠지. 잘 있다는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입대 전에 고생했던 편도선은 괜찮을까.'

<휴전서 155마일 450일간의 일기>를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추석을 4일 앞둔 9월 말쯤. 입대 후 첫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입대로 인한 아들의 빈자리가 더 쓸쓸하고, 입대 후 첫 전화의 설렘과 아들의 당시 마음을 담고 있던 편지가 떠올라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로 덮었던 사진이다.

사실 자대에 안착하면 아들이 무사하고 건강하게 군 생활 할 수 있도록, 군 생활과 함께 이젠 정말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니 놓아주자 다짐다짐했지만, 솔직히 어렵다. 그래서 늘 아들의 전화가 기다려진다. 지난주 목요일 퇴근 중에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벨소리를 듣지 못해 받지 못하면 어쩌나 퇴근 시간마다 손에 꼭 들고 다닌 지 1주일 만에 받은 전화였다.

늘 기다려지는 것은 아들의 전화다. 아니 아들의 목소리다. 며칠 동안 아들의 전화가 없으면 잘 있으려니 하면서도 막연히 그립고 막연히 걱정되어 나도 모르게 힘이 풀리고 만다. 그리하여 이젠 좀 놓아야지 놓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전화를 받은 날은 마음도 가볍고 일마다 신이 난다.

군인 아들을 둔 부모들 사이에 "아들의 전화가 보약이다"란 말이 밥 먹는 것만큼이나 흔하게 회자되는 것을 보면, 나같은 이등병 엄마들은 물론,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1년 군번 아들의 부모들도 아들의 전화를 자랑하는 걸 보면 아마도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다들 나처럼 그러지 않을까. 이런 정황들 때문에 더욱 스치지 못하는 사진,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떠올리곤 하는 책 속 사진 중 하나다.

ⓒ 최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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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일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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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 독사중대 내무반으로 들어가니 밤새 경계근무를 마친 병사들이 곤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창틈으로 스며든 맑은 햇살이 한 병사의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침낭 속에서 웅크리고 잠든 병사의 손에 여자 친구에게서 온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주황색 편지봉투를 가지런히 쥔 손과 얼굴만이 침낭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순간 서글픔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반복되는 경계근무와 피로 속에서 기다리던 여자 친구의 편지를 받았으나 봉투를 뜯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져 버린 것이다. 수없이 셔터를 누르는 동안 병사의 잠이 깰까봐 안내장교와 사진병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기록>에서

책에는 목차와 내용에 앞서 철책선 앞의 패랭이꽃과 녹슨 철모를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운 들꽃, 산 정상에 우뚝 올라 서있는 탱크, 북녘 땅을 바라보며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 노인의 모습, 지뢰 표지판 앞에 핀 코스모스 등 DMZ에서나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몇 장 실려 있다. 내용 중에도 관련 사진들이 풍성하게 실려 있지만.

편지를 쥐고 곤하게 잠든 병사의 모습을 찍은 이 사진과 전화통화를 하며 울고 있는 병사의 사진도 그중 하나. 동부전선 모 부대 편에서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통화를 하며 울고 있던 병사의 모습과 함께 오래 보고 보던 사진이었다. '왜 울까. 왜 쥐고 잘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일이면 엄마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엄마의 편지가 매일 밤마다 기다려진다'던 아들의 편지도 생각나고 그래서.

그리고, 갸름한 얼굴과 진한 눈썹을 비롯한 이목구비가 하필 아들과 많이 닮아 아들이 보고 싶으면 수시로 보고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오늘 밤에는 아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잊지 말고 꼭 말이다. 머잖아 주어질 신병위로휴가 때 무엇이 가장 먹고 싶은지 생각해놨다가 휴가 오기 전에 꼭 알려달라는 말도 꼭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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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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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공보장교 이 중위가 아침 8시에 지프차 두 대를 회관 앞에 대기시켜놓았다. 하늘엔 엷은 구름이 서서히 밀려왔다. 철책선 초소에서 병사들이 투입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대장의 지시가 끝난 후 한 병사가 기도를 시작했다.

"숨죽어 있는 155마일. 분단의 고통 속에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설움을 뒤로 한 채 오늘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떠나온 고향, 휴전선 저 땅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 날이 돌아오길 기원하며 오늘도 경계근무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이상. 병장 박승국"

병사의 기도는 비무장지대의 밤공기를 정지시켰으며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기도가 끝난 후 병사들은 민첩하게 철책선 좌우로 투입됐다. 주위는 어둠으로 뒤덮여 적막감이 감돌았다. -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기록>에서

DMZ, 비무장지대, MDL, GOP, OP, GP. 최전방, 철책.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들이 입대하기 전까지 이 용어들의 무게는 알고 있었지만 실감하지는 못했다. 부끄럽게도 민간인들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란 막연한 호기심이 먼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의 입대와 함께 이 용어들이 뼛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 아들도 가야만 하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DMZ 155마일의 풍경들과, 분단의 비극과 평화를 향한 염원, 계절의 변화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 철책선을 지키는 병사들의 애환과 긴장, 비무장지대 부대들을 도는 황금마차,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지형들 이야기 등 그간 일반인들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은 DMZ 분단 반세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 철책선을 넘어 귀순한 북한군 병사 관련 뉴스들을 볼 때마다 아들 걱정에 노심초사, 생각이 복잡해지곤 한다. 아마도 나처럼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다 그러지 않을까. 특히 DMZ 근무 병사들 부모들은 더욱 더 말이다. 그런 부모들에게 내 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곳을 충실하게 기록한 이 책은 적잖은 위로가 되어 주리라. 어떤 곳인지 모를 때 막연한 걱정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DMZ가 궁금한 사람들은 물론, 이산의 슬픔이든,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심정으로든,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동족상잔의 아픔에서든 분단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일기>ㅣ최병관 글과 사진ㅣ한울 아카데미 ㅣ2012.9.5 ㅣ 24000원



휴전선 155마일 450일간의 일기

최병관 글.사진, 한울(한울아카데미)(2012)


#휴전선 #비무장지대#DMZ#GOP#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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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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