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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사에서 불변의 상수 역할을 맡아온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지역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은 언론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지역별로 선호후보에 대한 편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의 대선에서 처럼 영남과 호남이 여야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면서, 홍해 바다가 모세의 지팡이에 의해 쩍 갈라지듯이, 극도의 분열양상을 보이지 않아서일까?

영호남 지역감정과 대선을 하나로 묶어 정치적 이슈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남출신과 호남출신이 맞붙어야 하는데, 일단 이번 대선은 호남출신 후보가 없다. 모두 영남권 후보라 할 수 있다.

언론이 지역감정을 망국적 현상이라며 개탄하면서 분위기를 몰아가기에는 땔감이 부족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에서 지역감정이라는 퇴행적 행동체계는 사라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라고 할 수 있다. 지역감정이 소모적 국론 분열의 소재에서 국가통합의 에너지로 승화된 것이 아니다. 한 편에서는 체념 속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여전히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영남지역감정과 보수가 결합할 때 그 해답은 박근혜 후보 지지이다. 그런데 호남의 경우 다소 애매하다. 열성적으로 지지할 호남후보가 없는데다 야당의 후보인 문재인의 경우 호남에 상처를 준 노무현정부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내심 마땅치가 않다. 만약 안철수가 출마하지 않고 박근혜-문재인 양자대결로 대선이 치러진다면 호남의 투표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역감정에 대해 이렇게 반박하는 논리도 있을 것이다. "자기 지역 출신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당연한 것 아닌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신념으로 떠받드는 많은 한국인들은 내심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 지역감정의 족쇄를 훌훌 털어내고 큰 안목으로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라기보다는 지역별 부족연합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한국정치 지형에서 지역감정이라는 암적 요소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소신과 용기' 그리고 '유권자들의 지역감정 극복'이 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인이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동시성을 가져야 한다. 다시말해, 정치인은 지역감정에 의존해 표를 구걸하기보다 때론 유권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타지역출신 정치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개방성을 보여야 한다.

이는 지역감정을 넘어선 정치철학과 역사의식이 전제돼야 가능한 것이다. 역으로 보면, 한국정치가 여전히 지역감정의 굴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선거판이 지역 간 싸움을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자. 다음달 대선에서 연임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이지만 흑인들의 심기를 다치게 할만한 얘기들을 서슴없이 던진다. 그는 지난해 가을, 흑인 사회를 향해 "이제 그만 징징대라"고 말했다. (Stop complaining, stop grumbling, stop crying.) 노예로 끌려와서 온갖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백인에 비해 열악한 여건임은 틀림없지만 흑백 간 불평등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만 말고 흑인들이 열심히 살아서 환경을 개선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본론에서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오바마가 수시로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언급하는 것은 한국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바마가 볼 때 한국은 불과 50여 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는 놀라운 위력을 보여줬다. 그러한 한국의 기적을 미국의 흑인사회도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오바마는 흑인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3년 전 아버지의 날에 오바마 대통령은 시카고의 한 흑인교회에서 흑인 남성들을 향해 이런 극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들을 남자로 만드는 것은 아이를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려는 의지임을 이제 깨달아야 한다." 흑인사회의 무기력, 저조한 교육열,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부족을 질타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미국 흑인사회의 후폭풍도 거셌다. 한 때 미국 대선후보였고 흑인사회에서 나름 지분을 갖고 있는 재시 잭슨 목사는 공개석상에서 "흑인들을 비하하는 오바마 그 x 의 xx 를 잘라내야 한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한국의 지역감정처럼 골이 깊고 역사적 뿌리가 깊으며 사회를 분열시킬만한 파괴력을 가진 게 미국의 흑백갈등이다. 그런데 흑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흑인사회를 향해 때론 쓴 소리를 던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사실 부끄럽다.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부패한 군부 지도자들은 보수반공 이념에 영남 지역감정을 결합해 호남을 고립시켜왔다. 그 후 김영삼과 김대중, 민주투사들이 차례로 대통령을 이어받았지만 각자 영남과 호남 이 두 지역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자양분으로 활용했다.

미국의 오바마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향해 쓴 소리를 던지는데,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지역감정의 외피 속에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 상반된 모습. 왜 그럴까? 한국의 정치인들의 그릇이 작아서 일까?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지역감정이나 제한된 정치이념에 갇히지 않고 열린 정신을 추구하며 새로운 차원의 국가를 디자인하려는 시민세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봐야한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호남후보, 또는 야당후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출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호남에서는 영남출신, 여당후보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시민운동이 가시화돼야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들의 비위를 거슬르는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백인들의 지지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단지 흑인과 소수민족만이 오바마가 기댈 정치적 자산이 아니다. 의식있는 백인들이 탄탄하게 오바마를 후원한다는 것이 오바마의 힘이다. 지난 대선 초기 오바마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세력의 상당수는 백인과 유태인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오바마로 하여금 흑인사회를 향해 입바른 소리를 하고 개혁을 주문하는 배경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또 이런 면도 있다. 지난 2008 년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자리를 놓고 다툴 때 흑인들에게 더 인기가 있었던 후보는 놀랍게도 오바마가 아니라 힐러리였다고 한다. 흑인이니까 무조건 흑인후보를 지지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정치인에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될만한 지역적 토대, 이념적 지원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때로는 지지세력을 향해서도 꾸짖을 수 있는 정치인, 국가적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하면서 자신과 지지세력의 한계를 깨고 나가기 위해 고민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환경의 출현은 정치인만의 노력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유권자들이 지역감정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하고 세대 간 경험의 한계에서 탈출해야 하며 갇힌 이데올로기의 틀을 깨야 가능한 것이다.

대중과 함께 걷되 그들을 넘어 미래를 내다보는 큰 정치인의 출현, 그리고 이를 가능케하는 토대로서의 시민사회의 각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성공한 노무현을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대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역감정#흑백갈등#노무현#오바마#시민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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