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쓸 한국말은 뿌리부터 잎사귀와 꽃과 열매까지 싱그러이 빛나는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도록 이 땅에서 살던 붙박이가 쓰는 한국말이든, 한국을 새로운 고향마을로 삼는 이주노동자이든, 한국에서 원어민강사 일을 하러 찾아온 서양 사람이든, 한국 땅에서 지내며 한국 사람이랑(또는 한국 사람이 되어) 쓸 한국말이란, 겉과 속이 하나 되는 가장 아름다우며 빛나는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머리말)최종규가 쓴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에 나온 글입니다. 어려운 또는 흔히 쓰고 있는 한자말을 맑고 쉬운 우리말로 옮긴 책이죠. 깊이 살피지 않고 쓰는 중국말이 아닌, 깊이 살피면서 써야 할 우리말을 밝혀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쓴 까닭은 그것입니다. 어렵고 또 낯설고 또 알맹이가 없는 사자성어보다 그지없이 예쁘고 즐겁게 꾸릴 수 있는 우리말을 살려 쓰고자 한 것 말이죠. 모름지기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한국말을 써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사실 그가 밝혀 놓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부터도 찔립니다. 가끔씩 나도 사자성어랑 한자말을 쓰고 있기 때문이죠. 예배당에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또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님'이라고 또 '주님의 무한한 사랑이 세계만방에 역사하길' 기도합니다. 아주 길들여진 기도문이라 할 수 있죠.
최종규는 '전지전능'을 뭐라고 고쳤으면 하고 바랄까요? 또 '만물을 통치하시는'과 '무한한 사랑이 세계만방에 역사하길'은 어떻게 고치길 바랄까요? 이 책을 보니 '전지전능'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으로, 또 '만물을 통치하시는'은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으로, '세계만방'은 '세상 온 누리'로 고쳤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학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분단의 현실은 명약관화했다. 이건 무슨 학술대회가 아니라 적과 마주친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이유진, 동아일보사, 2001) 239쪽."(이 책, 69쪽)여기에 실린 '명약관화(明若觀火)'는 신문이고 잡지고 책이고 방송이고, 교사이고 지식인이고 교수이고 기자이고, 모두들 거침없이 쓰는 한문 가운데 하나라고 하죠. 사전에서 밝혀 준 한자말 풀이로는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分明)'이란 말 자체도 '틀림없이 확실하게'라는 곁말이 들어가 있다고 하죠.
"학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남북으로 갈린 모습은 뚜렷했다. 이건 무슨 학술모임이 아니라 적과 마주친 듯한 느낌이었다."(이 책, 72쪽)그가 위에서 가져 온 글을 새로운 우리말로 고쳐서 쓴 것입니다. '분단의 현실'을 '남북으로 갈린 모습'으로 또 '명약관화했다'를 '뚜렷했다'로, '학술대회'를 '학술모임'으로, 그리고 '마주친 듯한 분위기였다'를 '마주친 듯한 느낌이었다.'로 바꾼 것이죠. 한자말 때문에 무겁게 다가온 느낌도 아주 가볍고 살갑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2001년에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을, 2002년에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을, 2003년에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을, 2004년에는 '당동벌이(黨同伐異)'를, 2005년에는 '상화하택(上化下澤)'을, 2006년에는 '밀운불우(密雲不雨)'를, 2007년에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을, 2008년에는 '호질기의(護疾忌醫)'를, 2009년에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을 뽑은 〈교수신문〉입니다. 여기서는 퍽 손쉽다고 할 만해, 따로 묶음표에 한자를 적어 넣지 않고도 알아볼 만한 네 글자 한자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한자를 하나 하나 읽을 수 있어도 뜻은 알기 어려운 네 글자 한자말들뿐입니다."(이 책, 103쪽)진짜로 그런 것 같습니다. 대학교수들이 해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올리는데, 2004년부터 뽑은 사자성어는 나로서도 알기 어려운 말이죠. 어쩌면 교수라는 신분으로 평범한 사람들 앞에 뽐내려는 뜻이 있을까요? 최종규 님도 '올해의 사자성어'만 뽑을 뿐 '올해를 빛낼 우리 말'이나 '올해를 생각하는 우리 말'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죠.
진짜로 그렇죠. 교수님들에게는 '밀운불우(密雲不雨)'나 '자기기인(自欺欺人)'나 '방기곡경(旁岐曲逕)이 손쉬운 말일지 모르지만, 용산 철거민들이나 이랜드 노동자들이나 저잣거리 길장수 아지매와 할매들 앞에서나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죠. 부디 올해부터는 살갑고 손쉬운 우리말을 내 놓았으면 합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자기 자신은 말레이시아인의 긍지를 가지고 근무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종업원의 쪽에 서고 싶지만 일본인의 차별대우와 동족인 하층 종업원들의 배척으로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 <무엇이 여성해방인가>(마쯔이 야요이/김혜영 옮김, 백산서당, 1981) 105쪽"(이 책, 231쪽)그렇죠. '진퇴양난'이란 네 글자 한자말도 참 많이 쓰죠. 더군다나 영어 말인 '딜레마(dilemma)'란 말까지도 흔하게 쓰죠. 그리고 '갈등(葛藤)'이란 한자말도 있고요. 위에 있는 글에서는 그 뜻이 똑같은 말을 두 번씩이나 썼다고 최종규 님이 밝혀주죠. 하여 다음과 같이 새로 썼으면 하고 우리글로 옮겨 놓고 있죠.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녁은 말레이시아사람답게 보람을 느끼며 일하므로, 마땅히 종업원 쪽에 서고 싶지만, 일본사람은 이녁을 따돌리고 같은 겨레인 종업원들은 등을 돌리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근심한다고 합니다."(이 책, 233쪽)이 책은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사자성어를 살갑고 따뜻한 우리말로 옮겨 놓고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이 뿐만 아니라 오자성어와 육자성어까지도 톺아볼 수 있도록 그 쓰임새를 밝혀놓고 있죠. 이를테면 '공수래공수거'는 '맨몸뚱이'로, '맹모삼천지교'는 '맹자 어머니 집을 세 번 옮기다'로, '일상다반사'는 '흔한 일로' 옮기는 게 좋다고 말이죠.
그리고 더 좋은 게 또 있죠. 책 끝머리에 어려운 사자성어 300개를 손쉬운 우리말로 가다듬어 준 게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그나마 고육직책의 결과였어요'를 '그나마 짜내고 짜냈기 때문이에요.'로, '공중분해할 위험이 다분하지만'을 '뿔뿔이 흩어질까 걱정스럽지만'으로,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티 없이 맑은 사랑'으로 옮겨 준 게 그것입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알차고 좋은 우리말인지 다들 짚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너무 고마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