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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오글거리는 책이 '떡'하니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하버드 교양강의>(김영사)'란 제목을 보자마자, 당장 반작용의 법칙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40년 만에 전격 개편된 하버드 대학의 교양강의"를 왜,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하버드 대학 교수들 이름에, 1장 인간정신, 2장 도덕이란 무엇인가?, 3장 지구화 시대의 지구사… 아무리 "우리 시대 최고 지성의 만찬"이라고 하지만, 전혀 '식욕'이 동하지 않는 목차였다. 그저 지루하게 보였다. 그러다 5장에서 멈췄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라.

"헌법 수정조항 제1조(표현, 종교,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를 규정한 조항)가 있는데도 미국 정부는 니콜 리치(세계적인 가수 라이오넬 리치의 딸로 영화배우 겸 가수)가 텔레비전에 나와 'shit'이란 욕설을 던지는 것을 금지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게다가 '라잇 나우(당장 지금)' 뜨거운 이슈도 떠올랐다. 가사에 술이 언급됐고 비속어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여성가족부가 가수 싸이의 '라잇 나우'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가 오히려 '된통' 혼나고 있지 않나. 싸이의 경우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니콜 리치 욕설 논란은 과연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어떤 정보 규제도 사회 진보에 해가 된다"

4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 콘서트
 4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 콘서트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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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의외다. 2009년도 '연방통신위원회 대 폭스 텔레비전' 대법원 판결에서 5:4로 '간신히' 금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장 보수적인 대법관조차 "과거의 판단 근거는 재고되어야 옳을 수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판결을 기술 혁명에 따른 '통제와 해방'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로 보고 있다. 과거의 통제 판단 근거(전자기 스펙트럼은 드문 자원으로서 의회는 그것을 국유화할 권리가 있다)가 기술 혁명으로 인해 '무장해제'됐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묶었던 '족쇄'가 풀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비단 인터넷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저자는 "정보 기술은 늘 역사적으로 통제에 직면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통제와 해방을 반복해왔다"고 주장한다. "1459년 구텐베르크가 책을 인쇄하기 시작한 후 50년 동안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 손에 들어간 이교도의 인쇄물을 태워버렸으며, 1559년에는 금지한 책을 빠짐없이 적은 '금서 목록'을 출간했다"는 것이 그 예.

오히려 인쇄 기술을 통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터넷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거나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의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회의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며 "디지털 기술이라는 도구는 백지로 된 책보다 본질적으로 더 위험할 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칼도 쓰기 나름,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정보를 규제하려면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소유해야 하는가를 누군가가 결정해야 한다. 인간이 주어진 정보로 무엇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믿는 한, 어떤 정보 규제도 인간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 정보 자유가 인간이 힘을 갖게 되는 전제 조건이라면, 어떤 정보 규제도 사회 진보에 해가 된다."

인터넷 통제가 1920년대 전화도청과 유사한 이유

이명박 정권의 정보 통제는 '오륀지'와 함께 찾아왔다. 사진은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됐을 당시 '미네르바' 박대성씨 모습
 이명박 정권의 정보 통제는 '오륀지'와 함께 찾아왔다. 사진은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됐을 당시 '미네르바' 박대성씨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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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금 기술혁명이 통제로 가느냐, 해방으로 가느냐는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전국에 유통되는 콘텐츠를 검열하는 것은, 가령 콘텐츠를 아이가 아닌 성인에게만 허용하는 일보다 쉽다"며 "통제 자체가 기술혁명에 따라 진일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예로 저자는 현대판 '금서 목록'에 비견할 만한 중국의 '녹색댐(유해 사이트 차단 소프트웨어)'이나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계속 내려 받는 사람에게 인터넷 접근을 차단하는 프랑스의 '삼진아웃법' 등을 꼽으면서, 이런 통제 자체가 1920년대 '전화 도청'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는 이러하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행위는 말과 생각을 사적으로 전송하는 것으로 전화 통화와 비슷하다. 전화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영장 없는 도청도 합법이었지만, 1967년에 이르러 전화가 사적 대화의 주요 수단으로 인정되며 판결이 뒤집혔다. 따라서 현재 프랑스 삼진아웃법 등 성문화된 인터넷 감시는 전화가 나온 초기 상황과 닮아있다.

더구나 모든 형태의 통신이 똑같은 망을 통과해 흘러 다니는 만큼, 이와 같은 통제는 결국 사고의 흐름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건 지금 '비트로 흐른다'. 저자는 "0과 1의 흐름(비트 흐름)을 규제하다 보면 그 부작용으로 다른 형태의 표현까지 규제될 수 있다"며 "소프트웨어를 조금만 손 보면 검열 대상이나 감시 기술을 바꿀 수 있다"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를 흐린다"

"정보 자유가 인간이 힘을 갖게 되는 전제 조건이라면, 어떤 정보 규제도 사회 진보에 해가 된다" (하버드 교양강의 5장,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 중에)
 "정보 자유가 인간이 힘을 갖게 되는 전제 조건이라면, 어떤 정보 규제도 사회 진보에 해가 된다" (하버드 교양강의 5장,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 중에)
ⓒ intuic.com/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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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해방 기술이 통제 기술로 변질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상업성이다. 저자는 음반·영화 산업을 예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오디오와 비디오 디지털 파일을 복제하고 배포하면 업계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의회를 종용해 엄격한 규정과 강력한 제재를 포함한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했고, 업계 스스로 그 법의 집행자가 됐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상업성 통제를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구글이 나중에 정치나 종교 또는 취향을 이유로 자료를 선별적으로 솎아낸다고 가정해보자"며 "정보기업이 공공의 하인처럼 행동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그건 통제 불능의 정유사나 전력사가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행동하리라고 기대하는 꼴"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몇 차례 있었던 검색어 조작 논란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해방 기술이 통제 기술로 변질하는 이유는 또한 정치 때문이다. 저자는 "개인 신변과 국가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정보 기술 통제를 정당화하고 있다"며 두 가지 사례를 든다. 아랍에미리트가 반정부 세력이 이용한다는 이유로 블랙베리 통신에 정부 검열 허용을 요구한 사례, 또 인도가 뭄바이 테러리스트들이 구글어스를 이용해 공격을 계획했다는 이유로 서비스 금지를 요구한 사례. 저자의 비판은 명쾌하다.

"두 사례를 비롯해 많은 경우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를 흐린다. 악당들은 블랙베리나 구글어스만 쓰는 게 아니라 자동차도 쓰고 배도 쓰는데 그것들도 금지하겠는가."

통제의 먹이는 두려움,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4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 콘서트
 4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 콘서트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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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는 두려움을 먹이로 한다. 여론몰이에서 두려움만 한 특효약이 없다. 따라서 직시할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바로 통제 그 자체란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정치 자체가 두려움을 부추기길 좋아한다"며 1990년에서 2005년 사이 실제 아동 성범죄가 50퍼센트 줄었다는 객관적 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까다로운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술을 공격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더 이익"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어 저자는 "청소년 성범죄는 거의 모든 경우 희생자 주변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면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날마다 유혹을 당한다며 너도나도 규제의 필요성을 외치고, 이런 두려움을 기반으로 페이스북이나 마이스페이스에 대한 연령 확인을 의무화하자는 주장 등은 "범죄가 일어나는 어두운 곳을 탐색하기보다 가로등 아래를 더 즐겨 수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인터넷에서 소아 성애증 환자와 접촉하는 아이들을 모조리 잡겠다고 하면, 드넓은 인터넷 전자 도서관에서 부모가 말해주지 않을 진실을 찾아보려는 숱한 아이들을 좌절시킬 것이다. 인터넷에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행위는 아동 보호도, 사회 보호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편견과 무지를 완벽하게 보존하는 행위다."

두려움의 약은 지식, '라잇 나우' 우리를 위하여

그렇다면 통제가 아닌 자유를 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저자는 "두려움에는 지식이 약이다. 교육은 장기적으로 공포를 이긴다"며 "나쁜 정보에는 올바른 정보로 대응해야 하고, 거짓에는 진실로 대응해야 한다"는 글로 교육과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라잇 나우'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기술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며 "정부가 어떤 법을 제정하는지 주시함으로써 미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또한 소비자로서 우리가 구입하는 기술과 장비에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특징이 빠졌는가를 이야기하며 역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마지막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는 다른 사람이, 특히 정부나 기업이, 우리를 위한 선택이라며 어떤 일을 진척시키는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글이 인상적이다. 5장 제목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선택은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애초부터 우리 몫이 아니었나.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싸이에 열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유튜브로 대변되는 기술혁명,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와 생생하게 마주하고 있으니까. 통제와 해방을 반복하는 역사, 그 한복판에서 '강남 스타일'은 어쩌면 통제에 응전한 역사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인문학 가이드북의 '낯선 반전', 그런데 왜?

<하버드 교양 강의>
 <하버드 교양 강의>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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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를 쓴 이는 해리 루이스 하버드대 교수.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표현대로 "줄곧 규범이나 도덕과 상관없는 수학을 다루는" 공학자라고 했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문득 놀랐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력에서 오는 선입견을 여지 없이 깨버리는 역사적 통찰에 말이다.

다른 장 역시 반전의 연속이었다. 생태학을 전공하고 양서파충류학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교수는 철학과 역사에 기반하여 창조론 교육론을 매섭게 비판하고, '질병의 과학'이란 장에서 의과대 교수는 건강 뉴스에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웬만큼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반전들'을 목격하며 우리 교육 현실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책 제목을 '하버드 교양 강의'라고, 또 '하버드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라거나 '40년 만에 전격 개편된 하버드 대학 교양 강의' 등으로 메인 카피를 뽑았을까. 그 사정이야 짐작이 안 가는 바 아니지만, 이 책의 가치를 한국식으로 '통제'한 제목이란 생각만은 떨치기 어려웠다.




태그:#하버드, #싸이, #라잇 나우, #하버드 교양 강의, #해리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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