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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점심반찬으로 가장 좋아하는 돈가스가 나왔다. 눈길 한 번 주고 '그냥 통과'. 급식판에 참나물만 가득 받아온 내 밥상을 보고 앞에 앉아있던 5학년 선주가 한마디 한다.

"선생님, 채식주의자에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큰 입을 더 크게 벌린다.

"응. 며칠 안 되었어."

이럴 때는 최대한 겸손하게 대답해야한다.

"채식주의자가 뭐야?"

옆에서 자기네들끼리 웅성거린다. 당찬 선주는,

"아! 이런 식으로 몸매 관리를 하시는 군요. 1학기때 단양 아쿠아월드 현장학습 갔을 때, 혼자 수영복입고 수영하시던데, 역시!"

'쯧쯧쯧'만 안 했을 뿐 내 귀엔 '애쓴다'로 들린다.

'그런 거 아니거든, 동물의 평화와 인간의 본성을 찾고 우주를 지키기 위해서거든.'

그럴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 요즘 뱃살프로젝트 들어갔다. 하도 셋째 가졌냐는 주변사람들 소리 듣기 싫어서….'

나의 채식 경험은 15년 전, 대학교 3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여름방학 호주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온 친구 관숙 덕분이었다. 그녀의 채식주의 선언은 아주 단순했다. 작은 레스토랑에서 본 닭장 사진 한 장이었다.

손과 발을 1~2cm 옆으로 옮길 수도 없는 빽빽한 공간에서 비참하게 자라나는 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옆에 있는 자기 형제들, 이웃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스트레스 쌓이고 더러운 환경에서 자라나는 각종 병을 없애려 항생제를 계속 맞고, 빨리 살찌우고 팔아먹으려고 호르몬제 맞는 불쌍한 닭들. 그렇게 화와 분노와 스트레스를 가진 동물들을 인간이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이후 그녀는 좋아하던 삼겹살을 끊고 김밥에서 소시지를 빼서 나머지만 먹고 과자는 동물성 기름이 없는 '웨하스'만 먹었다. 친구들과 약속할 때도 롯데리아나 맥도날드 같은 즉석음식을 파는 곳에서는 되도록 만나지 않으려 했다. 어쩔 수 없는 경우, 햄버거를 한 입에 털어 넣던 우리들과 달리, 그녀는 우아하게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 채소가 듬뿍 담긴 싱그러운 그녀의 도시락이 더 맛있어 보이고 탐났다.

약간 통통했던 관숙이는 놀랄 정도로 살이 빠졌고 피부에 윤기가 흘렀다. 육식을 하면 성격이 난폭해 진다느니,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게 잘 사는 길은 채식밖에 없다느니,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성분이 많은 과자를 주려거든 차라리 굶기는 게 낫다느니. 그녀의 잔소리 같은 가르침에 스며들어 나도 채식주의자가 된다며 가족들에게 선언했고 엄마는 "얘는 이상한 것만 배워온다니까"라며 놀리듯 은근히 비웃으셨다.

도너츠를 끊고 양상추를 들다.
 도너츠를 끊고 양상추를 들다.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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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반찬 만들어서 먹을 테니, 걱정 마세요!"라며 큰소리 뻥뻥치며 학교를 오며 가며 장을 따로 봤다. 어느 날은 오이 두 개 사서 밥이랑 먹고 또 다음 날은 양상추랑 고추장을 비벼서 먹었다. 결국 밥을 제때 먹지 않고 굻어버리게 되면서 칼 같은 나의 채식경험은 2주 만에 끝이 났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은 누가 뭐래도 소중하다.

일 년 전 <김제동이 지금 만나러갑니다>에 나온 이효리의 채식,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다'에 감명을 받아 다시 실천을 해 볼까 생각했지만 며칠 안 가 회식자리에서 "음~ 어떤 고기가 제일 잘 구워졌을까" 노릇노릇하고 바삭한 것을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던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한테는 무리야"라고 위안하며 슬쩍 없었던 일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채식을 하겠다고 달려든 게 아니다. 모든 카페인을 끊었더니 자연스럽게 도너츠 대신 양상추를 손에 쥐게 되었다. 추석 연휴에 경기도 부천에 있는 엄마네집에 가서 알게 된 '나구모 요시노리'가 쓴 <1일1식>을 읽지 않았다면 카페인을 끊고 고기를 끊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학교 끝나고 돌아온 집안에 온통 김치전 냄새가 났다.

"아, 내가 좋아하는 김치전. 시니가 차려주는 저녁밥 때문에 기대하며 일찍 들어오게 된다니까."

가끔 아부를 해야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다.

"그래도 한 끼는 제대로 먹어야지."

흐뭇해하는 시니 엉덩이를 툭툭 쳐 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시 근무 시간 마치고 다들 갈 때,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창문을 닫고, 전원을 빼고, 책상 줄 맞추다 10분을 그냥 보냈다. 행정주무관님이 빨리 문 닫아야한다며 아우성치듯 소리치면 또 그때서야 우다다당탕 계단을 날 듯 뛰어내리던 나였다. 이럴 땐 복도에서 날뛰는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남편 시니가,

"다음 5일장 서면 오징어 사서 김치전 해줄까?"
"그냥 김치만 넣어도 맛있어. 나 고기 안 먹어."
"김밥 먹을 때 소시지만 쏙 빼 먹는 게 얼마나 추한데…. 당신 채식, 한 달은 가려나."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하듯 말한다. 하지만 예감이 좋다. 채식으로 마음을 바꾼 후, 똥도 잘 나오고 몸도 가벼워지고 피부도 좋아졌다. Go cold turkey!(습관, 마약 등을 갑자기 끊다, 사전 준비나 연습 없이 바로 하다의 뜻) 쭉 가자. 추해져도 좋다.


태그:#채식,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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