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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갑 맞은 친구들에게 한 살 아래 친구들이 꽃다발을 증정하고 있다
 환갑 맞은 친구들에게 한 살 아래 친구들이 꽃다발을 증정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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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은 만 60세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다. 간지(干支)는 60년마다 같은 이름을 가진 해가 돌아오므로, 회갑은 육십갑자가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양력 1952년 1월 27일부터 1953년 2월 13일 사이의 임진년에 태어난 사람은 2012년 1월 23일부터 2013년 2월 9일사이의 임진년에 환갑을 맞이하게 된다.

의술이나 식생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 환갑을 맞이했다는 것은 장수를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평균수명이 늘어 환갑에 대한 의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환갑을 넘기면 노인으로 보았으나, 2011년 조사에서 노인이라 여겨지는 나이는 66.7세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도 남자는 77.2세, 여자는 84.1세로 환갑이면 세상을 뜰 날이 멀었다는 의미다.

 환갑을  축하하는  촛불
 환갑을 축하하는 촛불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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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회갑연에서는 자손들과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장수를 축하했다. 회갑연 도중에 장성한 자식들이 다시 어린이와 같은 옷을 입고 환갑을 맞은 부모에게 재롱을 부리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추석을 지낸 며칠 후(6일), 초등학교 동창들이 여수 향일암에 모여 단체로 회갑연을 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친구들은 전라도 곡성 오곡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5년이 지났다. 오곡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는 학생이 많을 때는 500명도 넘었지만 지금은 폐교되어 쓸쓸하기 그지없다.

벗과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손자, 손녀를 보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된 친구도 있다. 하긴 옛날 우리 어릴 적에는 회갑연에 장성한 자식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와 넓죽 절하는 걸 봤다.  그러나 옛 친구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는 자녀 대신 한 살 아래 친구들이 꽃다발을 증정하며 한 살 위 친구들의 환갑을 축하해줬다.

 친구들과 함께 새벽에 향일암에 올라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친구들과 함께 새벽에 향일암에 올라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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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버스를 대절한 친구들은 갖은 음식을 다 해가지고 왔다. 여수 향일암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펜션의 커다란 방 세 개를 빌려 음식을 차려놓고 간단한 축하연을 가진 일행은 여수 밤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친구의 얘기다.

"나는 남편을 하루에 네 번 죽이고 네 번 살려. 그만큼 밉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 이제 내년부터는 열 일 제치고 동창회에 참석할 거야.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뭐 재미있는 게 있어야지. 옛 친구들이 제일이더라고."

70명이 졸업한 동창생 중엔 벌써 세상을 뜬 친구도 있고, 남편과 사별한 친구도 있다. 건강 얘기며, 집안 얘기며 살아가는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개중엔 색소폰을 들고 와 아름다운 정취로 가을밤을 수놓은 친구도 있었다.

조완용! 별난 취미를 가진 그 친구는 팔방미인이다. 일하는 도중 틈이 나면 댄스, 헬스, 바다낚시, 장구, 봉산탈춤, 사냥도 배웠다. 1500㏄ 오토바이도 즐긴다. 학원에서 제일 연장자로 색소폰을 시작한 지 3개월 됐다는 친구의 얘기다.

 환갑에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팔방미인 친구 조완용
 환갑에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팔방미인 친구 조완용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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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어디다 맘 둘 곳이 없더라고. 맘을 달래기 위해 색소폰을 시작했는데 용접과 기계를 만지던 손이라 운지가 힘들어. 그래도 진도가 제일 빠르다는 선생님의 평가야. 불구자도 많은데 나는 건강하니 항시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겠다는 생각이야. 나는 14살부터 가장이 되어 동생 5명을 가르치고 결혼도 시켰다. 이제 내 인생을 즐겨야지"  

환갑에 공부 시작해 대학입학 검정고시까지 합격한 친구에게 박수를

고향에 가면 평생 농사만 짓는 친구가 있다. 부지런하고 우직한 친구 노상희! 그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 중학교 진학을 못했다. 남의 논을 빌려 경작을 한 그는  벼농사 8000평에 하우스 농사 3000평을 경작하는 중농가다. 이웃과 친구들은 강직하고 믿음직한  그를 신용해 농협 이사로 선임했다.

농사만 짓다 사회활동을 한 그에게 부담스런 일이 생겼다. 이력난에 학력을 기재해야 하는 데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글씨를 쓸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 아예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사, 경찰, 취업준비 중인 2남 1녀를 둔 그는 아이들을 다 키웠으니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해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올 1월 고입검정고시를 시작한 그는 3개월만인 4월 15일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내친김에 8월에 대입 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8.22일)했다. 그에게 공부하는 과정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환갑에 고입과 대입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한 노상희
 환갑에 고입과 대입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한 노상희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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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난해서 못 배운 아쉬움을 해결하고 장성한 자식들에게 본을 보이고 싶었지. 농사 지으면서도 매일 3시간씩 철학이나 고전을 공부한 게 도움이 됐지만 나이가 들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 대학은 농업계열에 들어가 공부 해볼까 생각 중이야"

여수 밤바다의 아름다운 정취에 취하고 이른 새벽 향일암에 오른 친구들은 동쪽바다에서 떠오르는 바다를 보며 새로운 인생을 약속했다. 환갑은 은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환갑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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