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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중대 변수가 남아 있는 가운데 유력한 세 후보의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있다. 여권 후보 진영에서 '정권재창출'이라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 있는 점이다.

사라진 '정권재창출'과 잃어버린 10년

새누리당은 현 집권여당이다. 과거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잡았고, 정권재창출을 위한 '묘수'로 새누리당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았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이고,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성질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몸통도 그대로고 체질도 그대로다.

그러므로 새누리당 후보는 현 집권여당의 후보다. 다시 말해 정권재창출을 위해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야말로 정권재창출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권재창출이라는 말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경기도청을 방문해 김문수 경기지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경기도청을 방문해 김문수 경기지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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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을 기억해본다. 그때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활개를 쳤다.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5년과 노무현의 '참여정부' 5년을 합하면 10년인데, 그 10년을 일컬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자유선진당의 이회창이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한나라당의 이명박도 그 말을 즐겨 사용했다.

결국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민주당의 정동영을 500만 표 차로 누르고 압승을 거두었으니,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일정 부분 기여를 한 셈이다. 우리나라가 10년을 잃었던 건지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10년을 잃었던 건지는 누구 말처럼 그 판단을 역사에 맡겨야 할 일이지만, 하여간 10년을 잃어버린 덕에 이명박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을 보복이라도 하듯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난데없이 '국격'이라는 말이 출현하더니, 국격이 '쥐격'인지, 쥐격이 국격인지 모르게 되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명박'이라는 이름이 경박과 천박이라는 말의 동의어로 쓰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누리당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게 되지 않았는가.

간판이야 새로 달았지만 바로 그 물에서 박근혜 후보가 나왔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후계자일 수밖에 없다. 5년 동안 집권 세력의 한 축으로 존재했고, 그 굳건한 담장 안에서 비중 있는 명패들을 유지해 왔으니, 정권재창출이라는 사명도 함께 부여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는 정권재창출이라는 말을 입에 달아야 한다.  

이명박의 후계자 박근혜

정권재창출이라는 말을 해봐야 별로 이로울 게 없다는 계산 때문에 그 말을 적극 사용하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박근혜 후보는 정권재창출의 사명을 띠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박근혜 후보가 당선하는 것은 그대로 정권재창출이라는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박근혜 후보는 그 사실과 관련된 생각도 많이 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집권 세력의 한 축으로서 어떤 공과들을 쌓았는지도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5년 동안 집권 세력 안에서의 자신의 공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도 자랑하고, 그 공들이 어떤 영향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설명하고,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악정 속에서 자신은 어떤 과오들을 범했고 어떻게 방관했는지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권재창출이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이명박 정권의 어떤 것들을 계승하고 유지할 것인지, 또 어떤 것들을 척결하거나 수술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설명해야 한다.

물론 앞으로 TV 토론이 개시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말들이 나오겠지만, 박근혜 후보가 과연 얼마나 명쾌하게 그런 것들을 설파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과거지사 얘기를 싫어하는 타입이므로 또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이나 하고, 과거의 모든 일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을 또 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그런 무책임한 말들은 박근혜 후보 자신에게도 마이너스가 되겠지만 그런 언술은 수많은 국민들을 비탄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9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9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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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하자. 과거는 영속성 안에 존재한다. 과거는 오늘을 낳고, 오늘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간다. 당연히 과거는 오늘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적인 과거사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 속에서 늘 현재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의 잘 잘못을 제대로 가르고 명확히 규명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미래의 명확하고 올바른 역사 판단을 위해서는 오늘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과거를 오늘의 투명한 거울로 만들고 미래도 올바르게 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고, 국가와 사회도 과거의 나쁜 유산에 대한 정화와 청산이 매우 긴요한 필요가치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에게는 그 말이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정권재창출의 사명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의 당선은 정권재창출과 이명박의 승리도 함축한다. 2007년 대선 때 서로 한나라당 후보가 되기 위해 벌인 사투 가운데서 생겨난 앙금이야 어떻든 박근혜는 이명박의 계승자라는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시월유신 40주년...역사의 의미 생각해야

그뿐이 아니다. 박근혜의 당선은 '유신의 부활'을 의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신이 18년 철권 독재자 박정희의 딸로서 '유신공주'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박정희 독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후보에게는 '역사의 퇴행'이라는 이미지가 결부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올해 2012년은 1972년의 '시월유신'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월유신 40주년에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하며 유신독재의 검고 어두운 유산을 정화하고 청산하기 위한 노력들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유신의 부활'을 도모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박근혜 후보는 '유신의 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유신부활'이라는 이미지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당선되는 것에는 유신을 인정한다는 '역사퇴행'도 결부되기에 국민들은 더욱 깊은 생각을 해야 하고 폭넓은 시야를 지녀야 한다. 

시월유신 40주년에 맞는 대선, 참으로 크고 장중한 역사의 물굽이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2012년 말의 거대한 역사의 물굽이를 슬기롭고 정의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그 물굽이를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각성과 함께 야권 후보 단일화도 포기할 수 없는 명제임을 뜨겁게 되새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권재창출, #박근혜, #유신부활, #새누리당, #역사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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