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들어섰음을 알게 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가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때는 그래도 여차하면 애 하나 딸린 홀아비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둘째를 낳고 나서는 이혼은 물 건너 갔으니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셋째 때는 이혼 생각은커녕 우선 내가 오래 살면서 이 녀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내리눌렀다. 예전보다 외식 덜 하고, 덜 놀러 다니고, 모든 것을 아껴야 하는 무거운 현실.
셋째 임신의 충격에서 벗어날 때 즈음 내가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정부의 다자녀 가구 혜택이었다. 최근 정부는 2011년에 대한 통계청 발표 중 셋째 이상 아이의 출산율이 증가한 건 다자녀 가구 혜택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비록 그것 때문에 셋째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왕 낳기로 한 이상 어쨌든 그 혜택들이라도 받아야만 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셋째 임신이라면 그야말로 애국자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셋째 임신 소식에 가장 궁금했던 건... 정부가 지정해 놓은 여러 가지 다자녀 가구 혜택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출산장려금이었다. 셋째 때문에 받을 출산장려금은 기존 둘째 때문에 받았던 액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혜택들은 대개가 면제 혹은 우선권으로 지금 당장 내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출산장려금은 가장 현실적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현금이요, 허구한 날 바뀌는 것이 바로 정부의 육아 정책 아니던가. 그러니 출산장려금에 가장 관심이 갈 수밖에.
생각 같아서는 그 출산장려금을 위해 이사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출산장려금은 적게는 일백 만원부터 많게는 일천 만원까지 지역별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100만 원 밖에 주지 않는다면 이사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전세 계약이 올해 만료이니 여차하면 나갈 수밖에 없는 터, 이왕 갈 거면 출산장려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선택하고자 했다. 굳이 서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지겠지.
하지만 막상 출산장려금을 알아보려니 그 과정 자체부터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우선 전국의 출산장려금을 한 눈에 확인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출산장려금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 각각의 기준으로 소속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인 만큼, 이를 전국적으로 통합하여 관리하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돈을 지불하는 입장에서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만 지불할 터, 전국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관련 자료는 기껏해야 일반 시민들이 블로그 등에 올린, 지역별로 짜깁기한 것이 전부였는데 그 역시 확인하면 실제와 다르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지자체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일일이 찾아볼 수도 없고 원.
더 큰 문제는 출산장려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지자체 대부분의 경우 출산장려금을 받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몇 개월 이상 거주해야 하고, 장려금을 지불하더라도 목돈의 형태가 아니라 수년에 걸친 분할 지원이었다. 출산장려금만을 노려 이사 왔다가 곧바로 그 지역을 뜨는 소위 '먹튀'를 막기 위한 방안이리라.
어떻게든 지역 인구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의 눈물겨운 노력.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런 지자체의 노력을 이끌어내는 지금의 구조가 옳으냐는 것이다. 아이의 출생은 그 지역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경사이며, 인구증가는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구조는 중앙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출산장려금을 지자체가 떠맡음으로써 각 지역마다 격차는 물론이요, 먹튀 논란이 생기는 것인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셋째 출산에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지원하는 광주광역시 동구처럼 출산장려금을 인구증가의 전략으로 이용하는 지자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서울시 구로구의 경우는 셋째의 출산장려금이 광주 동구의 6%, 즉 60만원이 고작이지 않은가.
아이를 볼모로 국가로부터 꼭 돈을 받아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가가 육아·보육과 관련한 복지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대신 돈으로 지원하는 형식이라면, 이는 좀더 세심한 기준을 적용시켜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낱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원하는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않고 셋째, 넷째를 낳을 수 있는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취등록세 면제와 전기요금도 20% 감면, 그러나...
다자녀 가구 혜택 중 출산장려금 다음으로 눈이 간 것은 자동차취등록세 면제였다.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자녀 이상 되는 가구에게 차 한 대에 한해 자동차취등록세를 면제해 주었는데, 최근 이를 2015년까지 연장해 주었다.
사실, 셋째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떠올렸던 수많은 걱정 중의 하나는 바로 자동차였다.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승용차는 5명이 탈 수 있지만, 카시트를 뒷자석에 세 개 장착하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전자 옆 자리에 카시트를 하나 설치하고, 운전자 외에 어른 한 명이 뒷좌석 카시트 사이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산청 처가로 장거리 운행을 할 경우 그것은 곤혹스러울 게 뻔했다. 수고도 수고지만 안전상 못할 일이었다.
때문에 아내는 강력하게 카시트 세 개를 장착할 수 있는 차를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역시나 문제는 돈이었다. 아무리 중고차라지만 적어도 돈 천 만원 이상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전셋값도 올려줘야 하는데 셋째 때문에 차도 구입해야만 하는 현실. 지금 몰고 있는 차를 판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기 백만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취득세와 등록세를 감면해주다니 감지덕지할 수밖에.
또한 출산장려금과 자동차취등록세 면제 외에 많은 경험자들이 손꼽는 다자녀 가구 혜택 중의 하나는 바로 전기요금 20% 할인이었다. 비록 지금은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지만, 아이를 셋 정도를 키우다 보면 이것저것 생각치도 못하게 들어갈 돈이 많은데, 그러다 보면 전기요금 20% 할인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증언이었다.
이밖의 다자녀 가구 혜택은 주거와 금융 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주거는 주택 구입비나 전세대출 지원, 임대 아파트 분양 시 특별 공급 등이 있었고, 금융과 관련해서는 연말공제 추가 공제, 국민연금 가입기간 추가 인정 등이 있었다. 비록 내가 지금 당장 집을 사지 않는 이상, 또한 지금 당장 금융 혜택을 받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정부는 다자녀 가구에 대해 그만큼의 신경을 쓰고 있는 듯했다.
앞서 나열한 정부의 혜택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셋째 이상을 계획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은 교육비와 의료비 등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아직 실질적인 해답이 없지 않은가.
정치의 계절. 대선후보들은 서로 앞다투어 보육, 육아 정책에 대해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뽑으면 마치 하늘에서 돈이 툭 떨어져 기존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듯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복지에다 그만큼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면 그 예산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군축을 하든, 증세를 하든, 토건 예산을 줄이든 어떻게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복지비를 늘릴 것인지 국민들을 설득시키기 바란다. 경제민주화 같은 거대 담론도 좋지만 결국 표심은 내게 분명한 이로움을 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쏠릴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