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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표지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표지
ⓒ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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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패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행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 떠오르는 여행 경향은 '다크 투어리즘'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재난이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삶에 교훈을 얻고, 그 속에서 성찰하고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교훈여행'인 셈이다.

아름답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돌아보거나, 풍광 멋진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비극의 현장을 타산지석으로 삶과 역사에 대해 사유하는 여행도 의미 있지 않을까.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소울메이트)(이하 낭만의 길 야만의 길)은 바로 그런 여행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를 지내고, 세계 4대 통신사 중 하나라는 미국 < UPI > 통신의 서울지국장과 특파원으로 일하며 북한과 국제정세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 이종헌은 국제정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선택한 여행지는 그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중동을 '새 발의 피'로 만들어버리는 발칸반도와 동유럽이다. 19세기 이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곳. 저자는 음울한 역사의 현장에서 전쟁과 종교, 인간을 생각하고 또 한반도를 생각한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채 영토를 둘러싸고 한중일 삼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요즘, <낭만의 길 야만의 길>은 점점 커져가는 동북아시아의 이 갈등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평화'와 '공존'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집단적 증오'를 교육하는 집단적 기억은 안 돼

베오그라드 중앙역에서 쭉 뻗은 대로 양편에 나토가 폭격한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절대로 잊지 말자'라는 의미에서란다. 무엇을 잊지 말자는 것일까? 자신들의 악행은 애써 감춘 채,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부각시키고 후세들에게 그것을 '기억'시키기 위해 이 흉측한 건물들을 그대로 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흉측한 건물을 보며 자신들이 입은 상처만 생각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친다면, 그 후세들이 가진 '집단적 기억'은 엄청난 증오를 생산할 것이고, 이 지역에서 분쟁이 재발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본문 136~137쪽)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어 중 하나는 '집단적 기억'이다. 저자는 상처에 대한 '기억'이 종교와 민족이라는 기재로 '집단화'되고, 그 '집단적 기억'이 정치적 수요에 의해 '정치적 증오'로 발전하고, 그것이 교육 메커니즘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20세기 최악의 야만이 발칸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자기 종교나 민족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의 종교와 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조장되었다는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 발칸반도의 맹주를 자처하던 세르비아는 1990년대 초 연방이 해체되자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무슬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가 남의 상처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들의 상처만 기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세르비아와 닮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주축국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 각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던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끝끝내 사과하지 않고 원폭으로 인한 자신들의 피해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집단적 기억이 결코 집단적 증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겠다고 집단적 기억을 교육한다면 피가 피를 부르는 야만의 악순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발칸의 역사는 보여준다.

자원 없는 나라에는 무관심한 국제사회의 '냉정'

그런데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지에서 수십만 명이 '인종청소'로 학살당할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라크에서는 확인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해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반대 시위에도 아랑곳 않고 신속하게 병력을 투입하던 '세계의 경찰' 미국이 아닌가.

이유는 석유가 나는 이라크와 달리 발칸반도에서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사실 보스니아 전쟁은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엔이 '안전지역'으로 지정한 스레브레니차에서 공식적으로만 8000명 이상의 보스니아인들이 학살당한 것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수십만 명의 집단학살에도 보고만 있던 미국은 결국 보스니아에서 미국인 한 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개입한다. 미국에게는 수십만 보스니아인들의 목숨보다는 한 명의 미국인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이런 뒤늦은 개입마저도 야만적 폭력을 징계하기 위해서나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전략적 계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재선을 앞둔 클린턴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의 힘을 국민에게 보여줄 외교적 성과가 필요했고, 한편으론 사회주의의 틀을 벗고 상승 중인 러시아가 전통적 강세지역인 발칸반도로 돌아오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무관심속에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보스니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시리아다. 독재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시리아 내전에서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3만3000명 이상의 시리아 시민들이 죽었다.

시리아에서도 보스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외교적 수사만 반복할 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매장량 세계 9위의 주요 산유국인 리비아에서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이것이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가 겪는 운명이고,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정말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 배워야 할까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이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중일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은 동시다발적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세력 쟁탈전'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각국의 정치인들은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족주의를 교묘히 이용해 오히려 동북아시아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 배운다"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처럼 우리는 정말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평화와 공존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민족주의에 함몰된 집단적 기억과 증오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발칸의 역사를 정녕 보지 못한 것일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지만 종교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은 발칸반도를 여행하며 저자는 '역사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말한다.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깊이 있는 역사 인식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는 <낭만의 길 야만의 길>은 사건과 연대 중심의 역사공부가 아니라 인간이 담긴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나 이해 없이, 사건과 연대를 줄줄 외우는 것이 역사공부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낭만의 길 야만의 길>은 '이것이 진정한 역사공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이종헌 씀, 소울메이트 펴냄, 2012년 9월, 501쪽, 1만9500원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 낭만과 야만이 교차하는 그곳, 화해와 공존을 깨닫다

이종헌 지음, 소울메이트(2012)


#발칸 #동유럽#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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