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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초상> 책표지
 <중국인의 초상> 책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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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국인의 초상>에 대한 서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문화혁명 시기에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논조를 주장하다가 요절한 중국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였던 구준(顧准)의 문집을 꺼내 들었다.

그는 1956년부터 1972년까지 우파(右派)로 비난받으면서도 "사회주의 제도하에서의 상품생산과 가치규율"이라는 유고를 남겼다.

이 글은 구준의 사후에도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현재 중국이 선택하고 있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시장경제체제를 미리 전망하였고 이를 제시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 경제적으로 재해석을 시도한 중국 최초 사회주의시장경제주의자였다. 덩샤오핑(鄧小平)과 그의 후예들인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이 이를 받아들이고 선택하기 이미 20년도 전에 말이다.

구준은 그가 목숨 걸고 지켜온 공산당에 의해 철저하게 파멸 당한다. 즉, 중국 현대사는 모순의 점철이자 모순의 극복이었으며, 아직도 진행되는 모순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1942년 마오(毛澤東)가 옌안(延安)에서 행한 연설의 운명도 오늘날에는 부정과 파괴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1942년 마오가 옌안에서 행한 연설... 오늘날 부정과 파괴의 대상

금년 노벨상 수상자인 모옌(莫言)도 이 연설과 관련해서 비난받고 있다. 당시 마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견해와 작가들의 문학 작업 방향에 대해 혁명시기 중국 사회 현실을 반영한 사실주의적 작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당 정권의 국가독점 자본주의와 관료독점 자본주의로 인해 당시 중국 사회는 심각한 경제적 인플레이션 위기와 더불어 극심한 빈부격차로 국민의 일상이 피폐해진 현실을 직시하라는 요구였다. 그런 연설이 전업 작가에게 호응을 얻었는지, 또한 그 연설로 중국의 운명을 바꾸는 정치적 수단이 되었는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적어도 국민의 요구이자 문학적 방향성에서도 시대의 부산물이었다. 그런데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세계적 작가가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같은 국적의 작가들로부터도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중국의 문학적 다양성과 사상적 자유로움(?)에 경탄을 보낸다.

이 책은 중국에서 태어나 문화대혁명(중국에서는 1966~1976년의 '10년 동란'으로 표현되는) 기간 농촌에서 청소년기를 겪었으며 정식으로 부활한 '대학입학시험'(高考) 세대인 이른바 '77그룹' 출신의 작가가 쓴 작품이다. 저자인 자젠잉(査建英)도 자신의 세대에 대해 서문에 이렇게 썼다.

"홍위병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개혁의 첫 수혜자가 된 이들. 곧 환멸을 느끼면서도 이상을 품은 이들에게 77학번은 중국의 상징이자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급진적인 정치에 청춘을 잃어버린 것에 분개하면서도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슴 뜨겁던 세대였다."

작가는 이 책을 2부로 나누어 편집하였다. 앞부분은 현대 중국의 지식엘리트에 대한 논의로, 자신의 이복오빠와 현대 중국 작가들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그리고 우리가 베이징 대학으로 알고 있는 베이다(北大) 교수의 인식과 현실에 대하여 작가 자신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묘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붉은 자본가 -미국 정치학자인 부르스 딕슨(Bruce J. Dickson)의 견해에 의하면-들의 성장과정을 그들과의 인연 및 경험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국가의 적'이란 제목으로 서술된 내용은 정치범으로 9년간 복역한 작가의 오빠가 주인공이다. 중국의 현대 정치를 관찰자적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문혁 당시 작가에게 완벽한 홍위병의 차림이었던 오빠는 마오(毛澤東) 배지를 달고 선홍색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1999년 당시 중국인들 가운데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사실(중국민주당 창당 관련 죄)에 연루되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내용은 저자가 오빠의 면회를 다녀오며 만난 택시기사의 표현인데, 이는 일반 중국인의 심정을 잘 대변한다.

"이 도시를 보세요, 이 휘황찬란한 건물들이랑 식당들을요. 모두 부자들을 위한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들어가 볼 꿈도 못 꾸는 곳이란 말입니다"고 한탄한다.

"난 돌아올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은 중국을 떠나지 않을 거다."

작가의 오빠인 자젠궈의 이 말은 현재 중국에 수감되어 있는 모든 정치범의 선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떠나면 지는 거다."

며칠 전 밤에 산둥 성을 빠져 나온 변호사와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高行建)은 '패배자'라는 뜻이다. 적어도 작가의 오빠에게는 말이다.

'국가의 종'이란 제목의 글은 올해 일흔여섯의 왕멍(王蒙)이라는 작가를 중심으로 중국 문단을 심도있는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번역자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왕멍은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작가다. 그는 이미 1980년대 후반 중국의 문화부장관직을 수행했으며, 중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변신 인형>을 통하여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왕멍은 현존하는 중국 작가 가운데 4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특히 요즘 회자되는 사건에 대한 서술이 흥미롭다. 2009년 10월 18일 왕멍(王蒙)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연설을 했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 두 사람 다이칭(戴晴)과 베이링(貝嶺)이 관련 행사에 초청받았다가 취소되었는데도 문제의 두 작가가 행사장에 참석해 "중국과 세계: 느낌과 현실"을 주제로 한 공개토론에서 연설을 하자, 중국의 공식 대표단이 토론장에서 퇴장했다. 이 대표단에는 금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도 있었다. 그러나 왕멍의 연설로 문제가 해결되면서 행사를 무난하게 마감할 수 있었다. 왕멍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올해 그런 상상은 의외의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와 대별하여 류샤오보(劉曉波)의 행적을 소개하며, 왕멍과의 악연을 통해 중국의 현대문단을 설명하고도 있다. 1부의 마지막은 '베이다, 베이다!'라는 제목의 베이징대 교수의 시각을 반영한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 대한 관찰이다. 독자에게 제공되는 중국인의 현실사회에 대한 인식이 비록 대학 교수라는 시각이기에 그리 많은 공감을 얻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중국 교육에 대한 관찰자적 입장에서 매우 흥미롭게 전개되는 내용이다. 

"개혁하지 않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짓이요, 개혁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다."

중국의 대학개혁에 대한 이들의 의식이 우리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은 대목이다.  

한편, 이 책의 작가가 선정한 세 명의 붉은 자본가들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자본주의의 복귀와 더불어 성장한 세 명의 주인공들-중국의 경제적 성장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신흥 자본가들-의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선량한 재벌'의 주인공은 선풍기 수리공에서 시작하여 경제체제의 전환을 이용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으면서도 문혁에 희생된 자신의 모친에 대한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재벌의 성장기를 묘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거북(海 龜)한 쌍'으로 표현된 부부의 경제적 성장과정을 통하여 중국의 신흥 재벌 가운데 부동산업 분야에 대한 설명이 이채롭다.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주인공들이 이 분야에서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베이징의 고층 빌딩들 가운데 독창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맨발의 자본주의자'는 젊어서는 무자격 의사였지만, 혁명열사로 추앙받다가 추락한 인물이 출판계의 거부로 성장한 과정도 앞에서 등장했던 주인공과 비교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과 노벨상의 악연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매우 주목

아주 기묘하게도 며칠 전 아침에 중국의 사실주의 작가인 모옌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지난주에 완성했던 이 책의 서평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중국과 노벨상의 악연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매우 주목된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모옌과 관련된 내용은 없지만, 중국 문학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관찰내용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한때 문학 교수에서 인권활동가로 변신한 류샤오보가 2009년 12월 '국가권력 전복을 선동한' 죄목으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에도 랴오닝(遼寧)의 진저우(錦州) 감옥에 수감 중이다.

그는 민주화 선언문인 '헌장 08'을 공동 작성하였고, 중국의 지식인(이 책의 작가도 그중 한 명이었다) 303명이 이 선언문에 서명했고, 류의 노벨평화상을 지명한 인물은 바츨라프 하멜 전 체코공화국 대통령, 데스먼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주교 그리고 달라이 라마였다. 노벨상과 중국의 악연이 선연으로 변한 지금 중국과 노벨상 위원회의 다음 대사들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시기적으로 이 책을 독자에게 권하는 글에 적절함을 보태며, 중국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무엇인가와 그 작가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게 되는 현실적 입장에서 올바른 선택이 어떤 것인지 불분명하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중국인의 초상 - 떠오르는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 자젠잉 (지은이), 김명숙 (옮긴이) | 돌베개 | 2012년 8월



중국인의 초상 - 떠오르는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자젠잉 지음, 김명숙 옮김, 돌베개(2012)


태그:#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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