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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서울 대학가에서 한 학생이 월세 방을 구하기 위해 전단지를 살피고 있다.
서울 대학가에서 한 학생이 월세 방을 구하기 위해 전단지를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내 나이 28살, 말 그대로 이팔청춘의 가운데에 서 있다. 23살에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전공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운 좋게 4학년 졸업 전에 취업 문을 뚫었다. 그 후로 직장생활 5년 차를 넘어가고 있다. 중간에 1년 정도를 재충전의 기간이라 칭하고 쉰 적은 있지만 단 한 번도 돈을 버는 일에 소홀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주택자다.

원래도 풍족한 가정 형편이 아니었고,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엄마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5년 만에 집을 두 번 날렸고, 계속 빚을 졌고, 싼 월세를 찾아 이사를 다녔다.

내가 받은 월급으로 월세가 나간 지도 4년 차가 되었다. 처음 1~2년은 누구네 집에 얹혀살지 않아도 되고 하숙집이나 기숙사처럼 불편하게 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월세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은 없었다. 열심히 지금처럼 돈을 벌다 보면 분명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돈으로 전셋값이라도 마련해서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야금야금 나가는 월세는 족쇄 같았다.

보증금과 월세에 맞춰 집을 구했으니 제대로 된 동네, 제대로 된 집일 리가 없다. 원래 벌레나 쓰레기가 많은 지역인데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세대주택에서의 생활은 부부싸움 하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TV 소리 심지어 성인물 보는 소리까지 들린다.

한 번은 퇴근해서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방바닥에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보았다. 순간의 그 화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럴 때 사람들이 방화를 하고 살인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 화가 나서 주인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집주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금 이사철이고 우리 집은 지하철하고 가깝고 그 정도 크기에 월세 40만 원밖에 안 하기 때문에 살 사람 널렸어, 아가씨, 언제든지 이사해도 좋고 방은 그냥 내놔. 벌레 하나 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람 처음 보네."

그러나 나는 지금 불행하다

맞는 말인데 서러웠다. 내가 이 사람한테 지금까지 4년 가까이 월세를 냈는데 이 사람은 내 푸념과 한탄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한테는 내 월세는 '나의 월세'가 아닌 이름 없는 '돈'일 뿐이었다.

원래 밑천이 없는, 소시민들에게 월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만큼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첫째,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둘째, 번 돈 쓰지 않고 몽땅 저축하거나 셋째, 대출을 받는 것뿐이다.

심지어 대출제도는 나처럼 실질적인 가장이지만 20대이고 미혼이고 노인 부양자가 없는 사람이라면 연소득 범위 내에서만 신용대출이라는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연소득이 5000만 원이고 1억인가? 일반적인 근로자는 그런 소득은 꿈에도 못 꾼다. 그래서 결국 신용대출도 포기하고 월세 계약을 연장하는 것이다.

나도 꿈이 있었다. 크지 않은 내 방에 하얀색 벽지를 바르고 색색의 가구를 갖추고 내가 번 돈으로 살림살이를 하나씩 채워가고…. 그렇게 살다 보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착하게만 살면 되는 거니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불행하게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불행하다. 월세살이의 족쇄를 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불행하다. 내가 혹시나 결혼이라는 헛된 꿈을 실현하게 되면 내 아이에게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줄 수 없을 것 같아 불행하다. 이 모든 요소들이 일시적인 것이 아닐 것 같아 불행하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시작한 나의 '노동'이 월세라는 단단한 족쇄 속에 갇혀 있는 세상에 살면서 나는 '착하게 살면 행복한 세상, 빚질 일이 없는 세상,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언제 이 모든 것이 무겁지 않고 가벼워질까.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공모글



#나는 세입자다#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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