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29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부산역 광장에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을 만났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2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이후 초량동에 위치한 본점에서 1년 6개월이 넘도록 장기간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던 터였다. 문 후보가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저축은행 일이 발생한 지 굉장히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추석을 앞두고도 고생하고 계신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송구스럽다."지난 2월 국회 정무위에서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국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려 결국 무산됐다. 이에 부산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5월 490억 원의 국가배상을 직접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문 후보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저희가 19대 국회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다시 하겠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 잃지 마시라. 그래도 추석 잘 보내시라."그런데 문 후보는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금융당국 고위간부에게 '청탁'으로 오해받을 만한 전화를 했고, 그가 대표 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총 59억 원의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사건이 부당대출 6조 원, 분식회계 3조 원대 등 총 9조 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금융비리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는 문 후보가 오랫동안 대표 변호사로 재직해 '문재인 로펌'으로 불리는 '법무법인 부산'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59억 원 수임 지난 1982년 8월 열린 사법연수원 12기생 졸업식에서 문재인 후보는 연수원 졸업성적 차석을 차지하며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신반대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렇게 '재야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문 후보는 부산에서 '운명의 남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법무법인 '부산'은 1980년대 두 사람이 함께 활동했던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법률사무소는 부산·경남 등 영남지역의 시국·노동사건을 전담하면서 지역의 '노동·인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88년)한 뒤인 지난 95년 법무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법무법인으로 출범한 '부산'은 처음엔 문 후보와 허진호(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런데 지난 2000년 8월 허 변호사가 법무법인 부산을 떠나면서 문 후보가 단독으로 대표를 맡게 됐다. 이후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문 후보가 초대 민정수석을 맡으면서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 자리는 정재성 변호사로 넘어갔다. 90년 법무법인에 참여한 정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가 끝난 지난 2008년 9월 다시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가 지난 4월 총선에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하면서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직에서 다시 물러났다. 현재는 정 변호사가 다시 대표를 맡고 있다.
'논란'은 법무법인 부산이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총 4년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총 59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데서 시작한다. 이는 연간 평균 약 15억 원의 수임료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와 관련, 법무법인 부산에서 해명한 요지는 이렇다.
"2004년 4월 부산지역의 또다른 법무법인인 국제가 '부산2저축은행으로부터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민사소송을 받았는데 건수가 많으니 나누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건당 10만-20만 원을 받고 5만여 건을 처리했다."법무법인 부산은 "단일사건 수임료로 거액을 받은 것이 아닐 뿐더러 수임 경위도 문 후보와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며 문 후보 관련 의혹에는 선을 그었다.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사건을 수임받은 시기에 문 후보는 참여정부 청와대에 재직하고 있었고, 법무법인 대표직에서도 물러났다는 것이다.
실제 문 후보는 지난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 비서실장을 지내는 동안 변호사 업무를 중단했다. 2004년 당시 보유하고 있던 법무법인 부산의 지분 25%도 모두 양도했다가 2008년 법무법인에 복귀하면서 21.26%(2012년 4월 현재 8370만 원)를 다시 취득했다.
문 후보쪽은 "59억 원 사건 수임과 진행에 문 후보가 관여한 바 전혀 없다"며 "소요비용에 비추어 과다 수임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건수가 많을수록 돈이 되는 사건을 왜 부산에 나눠줬나?"법무법인 부산이 수임받은 것은 신용카드 부실채권과 관련된 소액지급 심판청구사건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건수가 많을수록 돈이 되는 이런 사건을 법무법인 국제와 부산이 나누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혹이 일고 있다. 실제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수임한 사건은 처음 해명한 5만 건보다 많은 총 6만2000여 건에 이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한 변호사는 "소액지급 청구사건의 경우 건수가 많을수록 돈이 되기 때문에 건수가 많다고 다른 법무법인에 나눠줄 합리적 이유가 없다"며 "4년간 5만 건을 처리했다면 한 달에 1,040건을 처리한 셈인데 이런 정도면 정규직 직원을 두고 한 법무법인에서 처리할 수 있는 규모"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국제에서 건수가 많다고 판단되면 정규직 직원을 두고 처리하면 될 일이지 다른 법무법인(부산)에 줄 이유가 없어서 의혹이 있어 보인다"며 "부산저축은행도 애시당초 법무법인 국제와 부산에 나눠서 주면 되는데, 왜 국제에 준 다음에 국제가 다시 부산에 주는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친노 저격수'를 자임하는 이종혁 전 새누리당 의원도 "소액심판사건은 법리검토가 필요없는 일종의 '노가다 사건'"이라며 "법무법인에 나줘줄 필요도 없이 법무사에 건당 수수료를 주고 처리해도 이익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수임료가 59억 원이면 노다지 같은 사건인데 왜 다른 법무법인에 나눠주나?"라며 "부산저축은행이 법무법인 부산에 직접 줄 수 없으니까 법무법인 국제를 통해 사건을 줬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지적처럼 부산저축은행이 법무법인 부산에만 거액의 사건을 몰아주기에는 부담돼 법무법인 국제를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 법무법인 국제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사건을 법무법인 부산과 5 대 5 비율로 나눴다면 전체 수임액은 무려 100억 원이 넘게 된다.
하지만 법무법인 국제의 한 관계자는 "사건의 양이 많았는데 (모두) 시효만료가 적용되는 사건이었다"며 "시효만료가 급박한 사건들이라 한쪽 사무실(법무법인)에서 다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법무법인 부산에 나줘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전체 수임 건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말문을 닫았다.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인 정재성 변호사는 언론에 "비용을 빼면 순익은 조금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고, 부산지역의 한 변호사도 "법무법인 수입이야 59억 원이겠지만 대부분은 경비라 이익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법무법인 부산의 매출액 증가 요인은 권력배경? 노선전환? 법무법인 부산의 '부산저축은행 59억 원 수임'은 참여정부 시절 크게 늘어났다는 매출액과도 깊숙이 관련돼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무법인 부산의 정확한 연도별 매출액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재성 변호사는 지난 9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기억이 안 난다"며 매출액 답변을 거부했다. 국세청의 한 간부도 "법무법인 부산의 연도별 매출액은 부산지방국세청이 알고 있겠지만 대선후보와 관련된 문제라 지금은 자료접근이 차단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법무법인 부산의 매출액이 참여정부 시기에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조선>이 보도한 한 신용평가정보회사의 기업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13억 원이었던 매출액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41억 원까지 늘어났다는 것이다.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이러한 매출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혁 전 의원은 "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서 부산의 무명 법무법인이 갑자기 사건수임액 전국 2위의 법무법인이 됐는지 의문"이라며 "법무법인 고유의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문제"라고 주장했다.
부산지역의 한 변호사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법무법인 부산의 외형이 커졌다"고 말한 뒤 "문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한 것이 법무법인 부산의 수임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문 후보가 특별히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서 사건을 법무법인 부산에 가져갔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권력'이 성장의 배경이 됐다기보다 법무법인 부산의 '노선전환'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1980-1990년대 노동·시국·인권사건들에 주력해 오다가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부터는 금융·기업자문으로 사업영역을 넓힌 것이 매출액 증가에 주효했다는 주장이다. 실세 사업영역 다각화 이후 여러 기업과 고문계약을 맺었고, 특히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금융관련 사건을 적지않게 처리해왔다.
정재성 변호사는 지난 2007년 법률전문지 <로타임즈>와 한 인터뷰에서 "80-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산·경남은 물론이고 대구·경북에 이르기까지 노동·시국사건의 절반 이상을 우리 로펌에서 처리했다"며 "하지만 시국·노동·인권사건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금융·기업자문 전문로펌으로 활로를 개척하는 등 업무영역을 2003년부터 다각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부산의 매출액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시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헤아리면 여전히 '권력배경설'이 유효해 보인다. 2009년 말 법무법인 부산의 매출액은 14억여 원으로 참여정부 출범 전인 2002년 13억여 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김옥주(51) 전국저축은행비상대책위원장은 '59억 원 수임'과 관련해 "2004년이었으면 수임했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건을 수임했을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문 후보의 청탁성 전화가 59억 수임으로 이어졌다?
특히 '권력배경설'이 가라앉지 않은 뒤에는 문 후보의 청탁 전화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3년 7-8월께 유병태 당시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 1국장에게 금감원의 부산저축은행 조사와 관련해 청탁성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같은 해 6월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 등이 차명대출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주가를 조작해 시세차익 70억여 원을 올린 혐의로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검찰에 수사까지 의뢰했다. 이에 부산저축은행쪽은 2대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을 내세워 로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청와대의 고위인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던 문 후보를 만났고, 문 후보가 유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철저히 조사하되 예금 대량인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검찰수사 과정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다만 유 국장은 "청탁이나 외압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가 "뱅크런 사태가 일어나면 부산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니 유념해서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 후보가 청탁성 의혹의 전화를 건 지 3-4개월 뒤인 2003년 11월 금감원은 일부 경영진에게 감봉 등 경징계를 내렸고, 부산지검은 박연호 회장 등 3명을 주식시세 조정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강도가 약한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이를 두고 문 후보의 청탁성 전화가 영향을 미쳤고, 이후 부산저축은행쪽이 청탁성 전화 대가로 59억 원의 수임료를 법무법인 부산에 안겼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의 '저축은행국정조사특위'에 참여했던 이종혁 전 의원은 "당시 금감원에서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의 주가조작, BIS 비율 조작, 불법대출, 횡령 배임 등의 혐의를 조사해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며 "정상적이었으면 비리 경영진을 퇴출시키고, 경영개선 권고 조치를 내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박형선 회장이 노무현 정부의 컨택 포인트(contact point)이자 부산저축은행쪽 로비스트로 나섰다"며 "이후 문 후보가 유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후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문 후보의 전화는 객관적으로 볼 때 압력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그렇게 부탁을 받은 곳으로부터 59억 원의 사건을 수임하면 안됐다"며 "그때 비리 경영진을 퇴출하고 경영개선 권고 등의 조치를 취했다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의 청탁성 전화→부산저축은행 경영진 솜방망이 처벌→법무법인 부산의 59억 원 수임(2004-2007년)'이라는 사건의 흐름상 충분히 의혹을 받을 만한 전화였던 셈이다.
김옥주 위원장은 "문 후보가 유 국장에게 전화한 것은 당연히 로비"라며 "박형선 회장이 돈을 안 받고도 로비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부산저축은행의 2대주주로 앉힌 것"이라고 말했다.
"뇌물을 주고 안 주고와 관계없이 통화한 것 자체가 로비다. 그렇게 정관계 로비로 무마하다가 저축은행 사태를 키웠다. 2004년에 유 국장이 전화를 받았으면 그것이 그냥 전화였겠나? 청와대 전화 한통이면 끝나는 것 아닌가?"김 위원장은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절 저축은행 사건을 똑바로 잡아야 했는데 못 잡았기 때문에 고위공직자로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고 거듭 문 후보 책임론을 제기했다.
강경 원칙론자인 문 후보도 말바꾸기 했다?
특히 청탁성 전화 의혹과 관련한 문 후보의 말바꾸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 후보쪽은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유병태 국장을 모르고, 그 사람에게 전화한 적도 없다"고 했다가, 5월 검찰의 '이종혁 전 의원 명예훼손 사건' 수사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오래 전 일로 기억이 없고, 만약 전화를 했다면 민정수석의 업무로서 지역현안 보고를 받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전화했을 것이다." 이어 문 후보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전화였을 뿐 청탁성 전화가 아니었다"고 당시 유 국장에게 전화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지독할 정도로 원칙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가 두 번씩이나 말을 바꾼 셈이다.
이에 문 후보쪽은 "문 후보는 당시 금감원에 전화했는지 여부에 관해 기억이 없었다"며 "금감원 국장이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하기에 만약 전화를 했다면 당연히 업무상 전화를 했을 것이고, 원리원칙대로 업무처리를 하라고 했을 것이라고 답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 후보쪽은 "참여정부 인사를 상대로 독하게 표적수사를 한 검찰이 이 건의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은 것은 전후 정황상 전혀 청탁 내지 압력이 있을 여지가 없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