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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갔다 드리려고 들고간 짐보따리 3개. 무거웠습니다.
 어머니께 갔다 드리려고 들고간 짐보따리 3개. 무거웠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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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8시 30분 일용직 출근 오후 5시 30분 퇴근. 같은 날 밤 11시 알바 출근 다음날 아침 8시 퇴근. 다시 그날 밤 11시 알바 출근 일요일 아침 퇴근. 그리고 집에 도착하여 무거운 짐보따리 3개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이 지난 일요일이었던 14일 일입니다. 일용직 돈벌이로는 가족 생활비로 부족한지라 금, 토일 밤에 24시 마트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금요일엔 아침부터 일하고 집에서 좀 쉬다가 밤 11시부터 일하니 많이 피곤했습니다. 토요일 밤에 다시 알바 근무를 해서 일요일 아침 또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어머니께 파지를 모아다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파지를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고 있습니다. 맏아들인 제가 모시는 게 도리일테지만 가정경제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파지라도 모아다 드려야 덜 미안할 거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집에 가보니 일용직 일을 나가셨습니다. 일이 있을 때만 아파트 청소를 나가시는데 누가 웨딩홀 일을 소개했나 봅니다. 결혼이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많아 어머니는 힘이 있을 때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면서 뼈마디가 쑤시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나가십니다.

어머니는 10여년 전부터 어머니보다 10살이나 더 많은 할아버지와 동거를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야산을 계간해 텃밭을 가꾸십니다. 부지런한 분이셔서 가만히 있는걸 지루해 합니다. 그래서 시간 나는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파지를 주으러 다니거나 텃밭에 가서 일을 합니다. 제가 파지 꾸러미를 들고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반깁니다.

"창기가 잘 왔네. 오늘 나랑 같이 텃밭에 가서 나무 가지 좀 자르자."

저는 잠도 오고 피곤했지만 할아버지 일이 곧 어머니의 일이라 말없이 따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사다리와 톱을 준비하여 들고 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낮은 나무 가지나 자르겠지 했습니다. 야산 텃밭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10미터도 넘어 보이는 소나무를 가리키며 거기 올라가 가지를 잘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차마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말을 못했습니다.

"나이가 있어 언제까지 농사 지어 먹을수 있을진 모르지만 저 소나무 가지 때문에 농사가 안 된다. 부추를 심어 놓으면 모두 녹아 버리더라고. 소나무 있는 곳엔 잡초가 안 자라. 저 나무가지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문제야."

지난 봄에 동네 다른 분을 시켜 가지 하나를 잘라 냈으나 그것만으론 안 된다 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가지를 다 쳐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밭으로 향해있는 가지가 많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길다란 사다리를 너무에 걸쳐놓고 아래를 고정시키며 저에게 올라가 자르라 했습니다. 올라가 아래를 보니 아찔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자를 가지 위까지 가려면 3미터 정도 기어서 가야 하는데 10미터 높이에서 기어 가다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앞에 보이는 소나무를 올라가 잘라냈습니다. 족히 10미터는 넘어 보였습니다.
 앞에 보이는 소나무를 올라가 잘라냈습니다. 족히 10미터는 넘어 보였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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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심스레 내려와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가서 작은 사다리 한 개를 더 가져오라했습니다. 그만 두자고 말하려나 했더니 저에게 기어코 일을 맡기실 모양입니다. 집에 가서 작은 사다리를 가지고 야산 텃밭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밧줄로 사다리 둘을 연결하여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보고 올라가라 했습니다. 밤새 알바 근무해서 피곤하여 못하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으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가까스로 가지가 많은 나무가지위에 걸터 앉는데 성공했습니다.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온 몸이 닭살이 돋아 났습니다. 아래로 추락하는 상상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소공포증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등에서 진땀이 다 나는 듯 했습니다.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밭으로 난 소나무 가지를 모두 잘라 냈습니다. 그만하면 됐다며 내려오라 했습니다. 천천히 발을 움직이며 내려갔습니다. 발을 헛디딜까봐 얼마나 쫄았던지요. 내려 갈 땐 올라갈 때 보다 더 겁이 났습니다.

한발한발 천천히 내려가 땅을 밟은 후에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내년부터 농사가 잘 되겠다며 좋아라 했습니다. 10미터 높은 소나무 가지 위에서 톱으로 가지 자르느라 용을 썼더니 더 피곤한 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일요일 오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든 후 깨어보니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일하러 출근했습니다.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은 고소공포증 체험이었습니다.


태그:#나무 자르기, #울산,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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