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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넝쿨이 탐스러운 고구마밭 ..
▲ 고구마넝쿨이 탐스러운 고구마밭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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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랑의 고구마를 캤지만 세어볼 정도로 잘 안된 고구마 ..
▲ 한고랑의 고구마를 캤지만 세어볼 정도로 잘 안된 고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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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14일) 이른 아침에 주말농장에 갔다온 남편이 "우리 오늘 고구마 캐자" 한다. "왜 내가 오늘 캐자고 했더니 말일경에 캔다며" 했더니 "다음주에 서리온다고 다른 집은 오늘 다 캐더라고. 설거지 하지 말고 빨리 나와" 한다. 하여 포대 자루도 아주 큰 것으로 네 개나 준비해 가지고 밭으로 향했다.

고구마 밭을 보자 기대가 만발하였다. 그러기 며칠 전 남편이 고구마를 맛보기로 몇 개 캐왔기에 기대치는 상당했던 것이다. "야 이걸 언제 다 캐지? 누구 더 불러서 같이 올 걸그랬나? 고구마 농사 정말 잘됐네" "고구마는 감자보다 깊게 파야 해. 고구마 다치지 않게 잘해. 감자보다 캐기 힘들다" 남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두 고랑에서 나올 고구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진짜 남편의 말대로 깊게 파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간해서 고구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정말 힘들다" 남편의 말대로 힘들었다. 파다 보니 무언가 걸린다. 고구마가 찍힌 것 같았다. "와 고구마다! 이것 좀 봐 제법 크네" 아니나 다를까. 상처가 나서 고구마의 흰살이 울퉁불퉁 보였다. 신기했다. 처음으로 캔 고구마를 옆에 놓고 다시 캐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졌다. 고구마가 아예 열리지 않은 것도 많았고, 열렸다 해도 알도 작고 빈 뿌리가 허다 했다. 남편도 실망을 했는지 담배를 꺼내 물더니 "고구마가 이렇게 안 열린 이유가 도대체  뭘까?" 안쓰러운 마음에 "땅이 고구마 심기에 마땅치 않은가봐. 내년에는 고구마 심지마. 이 땅은 안 되는 땅인가봐" "아니야 땅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남편과 나는 열심히 고구마를 캤지만 고구마는 셀 수 있을 만큼 적게 열렸다.

고구마 밭에서 나온 지렁이 ...
▲ 고구마 밭에서 나온 지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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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고구마을 캐는 남편, 그러나 고구마는 보이지 않고 ..
▲ 열심히 고구마을 캐는 남편, 그러나 고구마는 보이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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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실망스러움을 뒤로하고  다시 고구마캐기에 열중했다. "으악 ~~" "왜?" 남편이 놀라 뛰어온다. 맥 놓고 고구마를 캐고 있는데 지렁이 두 마리가 땅 속에서 쏘옥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비명소리가 나왔다. 지렁이가 있는 것을 보면 땅은 그다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남편에게 "당신 말대로 땅은 괜찮은가 보네. 지렁이가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남편이 다시 힘을 내어 두 번째 고랑을 파기 시작했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고구마 넝굴을 쳐주지 않아서 인가" 담배를 또 꺼내 문다. 반나절은 캘 것으로 생각하고 만만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1시간도 되지 않아 고구마 캐기는 끝이 나고 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팔, 다리, 허리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직접 흉내라도 내보니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아는 시간이었다. 자루에 담겨진 고구마를 보고 난 혼잣말로 "누구 줄 것도 없네" 하는 말을 듣더니 남편이 "그래도 한 번씩 쪄먹어 보라고 조금씩 나누어 먹어야지" 한다. "그러던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공부를 해야해. 힘들게 농사지어 가지고 이렇게 안 되니깐 속상하잖아. 자기가 농사 잘 짓는다고 하더니 초보 농사꾼인 것이 표가 난다" 하니 남편은 "내년에는 다른 방법을 써봐야겠어" 한다.

두고랑에서 수확한 고구마 전부 ...
▲ 두고랑에서 수확한 고구마 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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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만 골라서 찐 고구마 ...
▲ 작은 것만 골라서 찐 고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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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고구마를 정리하고 작은 것을 골라 쪘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남편을 위로도 할겸 "고구마 먹어봐 맛이 좋네" 하니 맛을 본다. 그제야 "음 그래도 밤고구마네" 하며 웃는다. 고구마의 맛이 작은 위안이 된 듯했다.

그리고 17일 친구모임에서 고구마가 흉년이라 했더니 친정에서 농사짓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고구마순이 너무 잘 되거나, 고구마는 아무 밭이나 잘 되는 편인데 거름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 난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나도 알고 있었어. 어쨌든 내가 바빠서 넝굴을 안 쳐줘서 그래" 한다.

"그래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 그 두 가지만 제대로 지키면 내년에는 고구마 농사 잘 짓겠네."


#고구마흉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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