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4강까지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연경 선수가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7·18일, 김연경의 소속사인 인스포코리아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봤다.
지난 11일 국제배구연맹(FIVB)은 "김연경의 현 소속구단은 흥국생명"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터키협회와 김연경은 이적에 대해 대한배구협회·흥국생명과 협상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르면 김연경 측이 독자적으로 터키 페네르바체 구단과 체결한 계약은 무효가 되며, 앞으로 선수생활을 하려면 흥국생명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김연경 측은 국제배구연맹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김연경의 소속사인 인스포코리아는 "국제배구연맹의 결정에 중요한 원인이 된 '3자 합의서'는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라며 "그래서 합의서를 1부만 작성한 것이며, 보관도 대한배구협회에서 했다"고 밝혔다. 인스포코리아는 "합의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는데도, 그런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국제 배구연맹에 제출했다"며 "이를 근거로 내려진 국제배구연맹의 결정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된 3자합의서의 내용은 ▲ 한국배구연맹 규정상 김연경은 흥국생명 소속이며, 이를 토대로 해외진출을 추진 ▲ 해외진출 기간은 2년으로 하되 이후 국내리그에 복귀한다 ▲ 해외 진출 구단의 선택권은 소속구단과 선수의 제안을 받고, 협회의 중재하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한다 등이다. 단, 합의서에는 '국제기구나 법률의 판단이 완성될 경우 그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인스포코리아 "3자합의서, 비공개하기로 했는데..."인스포코리아는 "출국 하루 전날인 지난 9월 7일, 김연경이 대한배구협회에서 연락이 와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합의서 초안을 봤다"고 전했다. 인스포코리아는 "합의서 완성본을 기자회견 전에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 계약이나 합의 등은 당사자 모두가 문서를 가지고 있지만 문서 유출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1부만 작성했다"며 "문서는 대한배구협회 금고에 보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인스포코리아는 "기자회견 전날 협의 과정에서 합의서에 서명하는 문제를 언급했다"며 "그 당시 협회 관계자는 서명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서명을 안 할 생각이었지만, 9월 8일 기자회견장에서 양측이 서명하라고 건네주는 바람에 '문서를 외부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만 믿고 서명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의 본질을 지역규정(로컬룰)이라고 지적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점은 기자회견장에서 작성한 '3자합의서'의 서명과 비공개 약속이다. 합의서를 비공개로 두고, 이를 공식 자료로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면, 국제배구 연맹의 결정에 재고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또한 김연경 측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했을 때 중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대한배구협회 "비공개 약속한 적 없다... 김연경에게 알리지 않아"이 문제에 대해 대한배구협회는 합의서 비공개를 약속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배구협회 이춘표 전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마 그 얘기(합의서 비공개)가 나왔던 것 같다"며 "하지만 서류상으로 그런 문서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흥국생명·김연경 선수한테 다 보내서, 이렇게 FIVB(세계배구연맹)에다 제출을 전부 다 했기 때문에 꼼수가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국제배구연맹에 그 합의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김연경 선수에게 알렸느냐'는 질문에 "그건 김연경 선수한테 통보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2일 흥국생명은 페네르바체에 '김연경 선수의 외국 진출에 대한 합의서'를 '김연경 선수의 외국 진출에 대한 대한배구협회 결정문'이라고 제목을 바꿔 보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안은 '흥국생명 김연경 해외 이적 관련 꼼수 들통'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인스포코리아는 "이 문서를 받은 페네르바체 측이 문서에 사용된 대한배구연맹의 최종 결정문이라는 내용에 대해 어떻게 된 일인지 김연경 측에 따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이 합의서 원본에 없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흥국생명이 무슨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스포코리아는 "대한배구협회가 국제배구연맹에 1차 질의를 한 뒤 어떤 답변을 받았는지, 정확한 자료를 국제배구연맹에 전달했는지 등을 확인할 것"이라며 "국제배구연맹이 왜 잘못된 판단을 내렸는지 파악한 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월 18일 귀국하는 김연경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밝힐 계획이다.
지금 상황에서 김연경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는 흥국생명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해 결과가 나오게 되면, 어느 한 쪽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문제의 열쇠를 쥔 흥국생명이 김연경을 FA로 풀어주지 않는다면 김연경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은퇴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흥국생명에도 손해가 될 것이며, 대한민국 여자배구에도 불행한 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