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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이제 만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후보자들은 지금 시점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이곳 강원도 양양군, 그것도 면소재지에서도 한참을 산 속으로 들어와 있는 제가 사는 마을 오색리에서는 후보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란 전무하다 봐야 합니다. 교육감이나 도지사도 선거철엔 찾기 어려운 작은 마을이니 말입니다.

소탈한 성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디에서나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이들에겐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도 이곳은 후보자일 때나 대통령이 된 뒤에 오지 않았습니다. 올 수 없다는 표현이 꼭 알맞은 말일 것입니다.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지가 하나 떴습니다.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안철수 후보에게 속초에서 번개를 때려주세요.

여러분이 와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열화와 같은 성원입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번에 속초에 갑니다.

10월 18일(목) 후보가 강원도 속초를 방문합니다. 오후 5시 10분부터 7시까지 시간을 비우겠습니다. 여러분이 추천해주세요. 안철수 후보가 달려갑니다. 꼭 방문해야 할 의미 있는 곳도 좋고 식당도 좋습니다.(하하하. 식당이라면 음식 값은 각자 내야 한답니다.)

의견을 주시면 골라서 일정을 정하고 바로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일정, 국민이 만듭니다. 안철수 대통령, 국민이 만들어 갑니다.

안철수 후보에게 여고생들이 메시지를 적은 종이 두 장을 전달하자 이를 받은 안 후보가 웃으며 포즈를 취합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안철수 후보에게 여고생들이 메시지를 적은 종이 두 장을 전달하자 이를 받은 안 후보가 웃으며 포즈를 취합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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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돌아오는 길은 걱정되더군요. 속초를 가려면 6시 30분부터 시작이라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4시 35분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야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별 망설임 없이 참석하기로 했고, 18일 오후에 다녀왔습니다.

약속한 시간은 5시 10분부터 7시까지였으나 단풍시즌인 강원도의 교통편이 차량 진행을 더디게 했을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6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속초 청호동 청초낙원식당으로 안철수 후보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속초 청호동 청초낙원식당으로 안철수 후보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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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오는 길, 밖에서 기다리던 여고생들에 둘러싸여 잠시 인사를 나눈 안철수 후보가 식당으로 들어서자 일제히 박수로 맞았습니다. 40여 석 남짓한 자리에 70여 명의 인원이 비좁게 앉아 식사를 하고, 취재진들은 그 사이에 서서 이 광경을 촬영하고 안 후보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녹음하기 바빴습니다.

안철수 캠프의 정연순 변호사가 "오늘 더 이상의 일정은 후보에게 없습니다"라며 이곳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니 천천히 진행하자 말하고 있습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안철수 캠프의 정연순 변호사가 "오늘 더 이상의 일정은 후보에게 없습니다"라며 이곳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니 천천히 진행하자 말하고 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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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고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자며 졸랐습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안철수 후보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고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자며 졸랐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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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철수 후보를 기다린 이들은 지지자들뿐만 아니었습니다. 취재진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원래 이번에 참석하겠다고 알린 이들은 저를 포함해 22명뿐이었으나, 지지자와 취재진을 합친 것의 2배가 넘는 여고생들이 몰려와 안철수 후보와 사진 촬영할 기회를 갖고자 했습니다.

어떤 대통령 후보가 유권자도 아닌 어린아이들과 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아이들이나 여중고생들은 안철수 후보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사진 촬영하겠다며 안 후보의 옆이나 뒤에 가 서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안 후보는 그들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곤 했습니다. 결국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지도 못한 상태로 안 후보는 수저를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석자들과 질의와 응답시간!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참석자들과 질의와 응답시간!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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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머리가 희끗한 분이 "최저임금이 2012년 시급 4580원에서 2013년 시급 4860원으로 6.1% 인상이 확정되니 경비원 수를 줄이려 한다"며 "청소를 하는 분들이나 경비원이 한 사람당 200여 세대를 관리하는 지경입니다"라 하시더군요. 가정주부들이 사고만 발생하면 경비원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안전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깁니다.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안철수 후보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안철수 후보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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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여성정책 등에 대해서도 할 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 중 한 분이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건설교통부는 계속 땅을 파 도로를 만들어야 하고, 한전은 원자력과 발전소를 건설하여야 한다"며 성장위주로 진행되는 현재의 정책들에 대해 거론하고, "이제는 경제성장위주의 정책을 떠나 어떻게 분배를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 정책이 필요한 때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대체로 안철수 후보가 끝까지 역주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마지막까지 역주하는 것도 후보나 캠프의 선택이겠으나, 가장 바른 방법은 보다 나은 미래와 옳은 판단을 내릴 줄 아는 결정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여전히 안 후보를 촬영하고 말을 녹음하려는 이들로 분주합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여전히 안 후보를 촬영하고 말을 녹음하려는 이들로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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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누구도 안철수 후보를 비판하는 의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만약 후보단일화에 물러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도 끝까지 국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남아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으로, 맨 나중까지 지지하고 안 후보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의견만 나왔습니다.

IT 과학자로서 대통령에 출마했는데 대통령이 되어도 여전히 그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안철수 후보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IT 과학자로서 대통령에 출마했는데 대통령이 되어도 여전히 그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안철수 후보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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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 옆에 앉아 식사를 하던 초등학생이 던진 질문이 가장 답변하기 곤란한 내용이었습니다.

"안철수 선생님은 IT 과학자로 정치인이 되셨잖아요. 대통령이 되시더라도 IT 과학자를 계속 하실 건가요?"

안 후보가 어린 학생이 나름 대견한 질문을 했다는 표정으로 학생을 잠시 보고 난 뒤 대답했습니다.

"가장 난처한 질문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더 이상 IT 과학자로 활동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런 분야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힘을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후보와 기념촬영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후보자가 모든 자리를 돌며 응했습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안철수 후보와 기념촬영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후보자가 모든 자리를 돌며 응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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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과 응답시간을 가진 뒤 잠시 동안 서로 기념촬영을 하겠다는 이들을 위해, 내부에 있는 이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하고 후보자가 모든 자리를 돌며 촬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삼삼오오 즉석에서 팀을 이뤄 촬영하는 내내 안철수란 존경하는 인물과 기념촬영을 한다는 표정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 후보는 기꺼이 참석자들이 원하는 포즈를 취해 주었고요.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밖에도 미처 들어오지 못한 이들로 인도는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 지금, 안철수가 만나러 갑니다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밖에도 미처 들어오지 못한 이들로 인도는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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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8시도 채 안 되었지만 양양에 사는 후배가 차를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 차를 타지 못하면 안철수 후보를 한 번 보겠다고 달려간 대가로는 제법 많은 경비를 지출해야 되니 말입니다. 속초부터 택시를 탈 수는 없는 일이죠. 양양에서 택시를 타면 1만5000원이면 되는데…. 식당을 나서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인도를 점령한 채 안철수 후보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철수, #대통령 후보자, #정연순, #속초시, #양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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