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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인 작가가 군부대 벙커 앞에 설치한 마네킹 이미지 작품. 군부대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대비되는 조화다.
이정인 작가가 군부대 벙커 앞에 설치한 마네킹 이미지 작품. 군부대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대비되는 조화다. ⓒ 신광태

"군부대 벙커에서 어느 목공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어느 날 지역신문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났다. 전방에 위치한 군부대 내의 벙커에서 작품전시회가 열린다? 벙커는 군사 작전용이라는 틀에 박힌 생각을 가졌던 나는 잠시 혼돈에 빠졌다. 군부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안. 그리고 민간인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된 곳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방의 어느 부대에서 그 마을에 사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고 한다.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화천군 2935부대 포병연대본부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 첫날 꼭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은 18일 저녁 느닷없이 방문한 친구 가족 때문에 깨졌다. 20일 아침, 친구 녀석이야 늦잠을 자든 말든 카메라를 메고 목공예 작품을 전시한다는 군부대를 찾아 산골짜기로 차를 몰았다. '분명히 이곳일 거다'라고 생각하며 민통선 지역까지 올라갔는데, 전시장은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 뭣 좀 여쭈어보겠는데요, 이 근방에 혹시 목공예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전시회 말씀입니까? 이 위쪽으로는 민가가 없고 전시회 같은 건 이 근방엔 없습니다."

길 옆에 위치한 부대 정문에서 소총을 들고 서 있는 초병은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이곳은 최전방이기 때문에 민가도 없고, 당연히 작품전시회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수고 하세요"라고 말하고 차를 돌려 나오는 내게 그들은 '아침부터 뭔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라고 생각했을 게다.

무작정 이곳이겠거니 하고 나선 게 잘못이다. 어제 그곳을 다녀왔다던 문화관광해설사가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

"거기가 아니고요. 왼쪽 계곡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곳에 있는 군부대에서 해요."

어느 장병의 쪽지 한 장이 '벙커 전시회'를 만들었다 

 어느 장병이 과일을 담았던 접시에 넣어 보내온 쪽지, 이것 때문에 작가는 군부대 전시회를 생각했다.
어느 장병이 과일을 담았던 접시에 넣어 보내온 쪽지, 이것 때문에 작가는 군부대 전시회를 생각했다. ⓒ 이정인

어렵게 찾은 전시관. 두 개의 벙커 벽면 투박한 콘크리트에 전시한 수십 개의 물고기 모양의 목공예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네킹에 색칠을 입혀 생동감 있는 표정을 연출한 작품들. 야외 전시라 화려한 조명도 없는 것은 물론 바닥은 작은 풀들이 듬성듬성한 맨땅이다. '현대문명과 자연 그리고 투박함의 어울림'이란 주제가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벙커 주위에 군 장병들의 병영 사진작품들이 20여 점 호위병처럼 전시되어 나름 활기가 있어 보였다.

 군부대 벙커에 설치한 작가 이정인씨의 목공예 작품
군부대 벙커에 설치한 작가 이정인씨의 목공예 작품 ⓒ 신광태

전시 의도가 궁금해 작가를 찾았다. 그가 강원도 화천읍 동지화마을 율대분교에 산다는 것만 들었지 실제로 방문한 적은 없다.

이정인(45, 목공예술가)·이재은(40, 생태그림 작가) 부부는 2011년 1월 강원도 홍천에서의 생활을 접고 화천 율대분교로 터전을 옮겼다. 이유도 단순했다. 이정인 작가가 군 생활을 이곳 화천에서 했던 인연 때문이란다. 군 생활을 하던 중 '3개 사단이 밀집해 있어 장병들이 주민 수보다 많은 곳이 여기다. 이들 젊은 장병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 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그들 부부를 그곳으로 끌어들였다.

폐교 율대 분교였던 이곳이 이정인, 이재은 부부의 작품 활동 공간이며 전시장이다.
폐교율대 분교였던 이곳이 이정인, 이재은 부부의 작품 활동 공간이며 전시장이다. ⓒ 신광태

"우리 부부는 이곳(율대분교)으로 오기 전에 화천 여러 곳을 찾아 다녔어요. 어느 집 외양간도 보고 화전민이 살던 빈집도 탐색하던 중 마땅한 곳이 없어 군청을 찾았는데, 당시 문화예술당당이셨던 윤홍근 계장께서 이곳을 추천해주었어요."

그들 부부는 산골마을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예술을 꿈꿨다. 콘크리트나 목재로 호화롭고 멋스럽게 꾸민 작품 전시실 등의 건물은 산촌 주민들에게 이질감 내지는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나 화전민들이 살던 다 쓰러져가는 집을 찾았다는 게 이정인 작가의 설명이다.

 8.2평짜리 컨테이너가 작가 부부의 보금자리이다.
8.2평짜리 컨테이너가 작가 부부의 보금자리이다. ⓒ 신광태

"제가 궁금한 건 군부대 벙커에 작품을 전시한 것에 대한 건데요.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솔직히 황당, 아니면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이야기가 긴데….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온 게 2011년 1월이었어요. 그때에 제일 처음 해야 했던 건, 8.2평짜리 컨테이너를 이용해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과 폐교를 활용해 전시실, 작업실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벅찬 일이었는데, 연대장님이신 윤창식 대령께서 장병들을 보내 일손을 도왔어요. 그리고 같은 해 장병들이 마을 청소를 할 때 집사람은 장병들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과일과 차를 대접했대요. 그런데 그들이 (과일을 담았던) 접시를 돌려주면서 편지를 남긴 것을 보고 우리가 병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번 전시회를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정인, 이재은 작가 부부를 그들의 보금자리인 율대분교에서 만났다.
이정인, 이재은 작가 부부를 그들의 보금자리인 율대분교에서 만났다. ⓒ 신광태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군부대 인근 민가는 일손이 부족할 때 군부대에 연락하면 대민지원이란 명목으로 언제든 장병들을 지원해준다. 그리고 매년 봄가을이면 자연정화를 위해 장병들이 하천이나 민가 주변 청소를 한다. 그곳 주민들은 늘 보아오던 것이라 그냥 당연한 듯 여긴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그것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졌나 보다. 성의껏 다과를 대접했는데, 장병들은 그것을 순수한 '시골 사람들의 사람 사는 정'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보답할 방법을 생각했다. 전방 군부대는 당연히 마땅한 예술작품 전시실이 없다. 전시를 위해 별도의 텐트를 설치하는 건 그들에게 또 다른 불편을 안기는 일이다. 그래서 벙커를 빌려 작품 전시를 생각했다는 것이 이정인 작가의 말이다.

"그 여편네 얼굴에 점이 없으니까 어색하네"

 이정인, 이재은 부부는 버스정류장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이정인, 이재은 부부는 버스정류장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 신광태

 할머니 얼굴에 점이 빠졌다. 이것이 마을사람들에겐 신선한 뉴스이다.
할머니 얼굴에 점이 빠졌다. 이것이 마을사람들에겐 신선한 뉴스이다. ⓒ 신광태

"이곳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길 옆 버스 정류장에 사람 얼굴을 그려 놓으셨던데."

"아! 그거요? 그 그림 속의 인물은 우리 마을 주민들이에요. 처음 시멘트 덩어리인 버스 정류장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으면 좋을까 고민했어요. 이 마을 풍경? 아니면 이곳을 소개하는 지도? 그런 고민을 할 때 집사람이 말하는 거예요. 우리 마을 어르신들의 표정이 어떠냐고. 실은 나는 목공예 전문이지, 인물 그림은 집사람 전공이거든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리얼하게 그려 넣을 수 있었죠."

"어! 그 여편네 얼굴에 있는 점을 빼뜨렸네."

읍내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모인 아낙들이 히히덕거린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다. 완벽한 모습보다 하나를 흘림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낸다. 정류장에 모인 주민들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곳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 또는 옆집 할아버지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정인 작가는 누가 들을 새라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한다.

"다음엔 다른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바꿔볼 생각입니다."

"한 가지 더 보여드려요?"라면서 나를 이끄는 곳은 마을 나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320년 된 물푸레나무'로 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나를 반대 방향으로 안내한다. 마을 창고인 듯 보이는 건물 벽에 그려진 커다란 나무 그림.

 마을 창고에 희망나무를 그렸다.
마을 창고에 희망나무를 그렸다. ⓒ 신광태

"여기는 원래 옛날에 쓰던 마을 공동 창고였대요. 그런데 벽면이 너무 허전하잖아요. 그래서 주민들을 모시고 나무를 그리자고 했지요.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을 스스로 써 넣도록 했더니, 주민들이 이 건물에 대한 애착을 더 갖는 거예요. 그래서 붙여진 이 건물 이름은 '율대 희망나무'.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넣도록 한 건, 몇십 년이 지난 후 돌아가신 분에 대해 회상도 할 수 있고 그분들이 마을의 역사로 기억될 수 있기에 어르신들의 이름을 담은 그림을 그렸어요."

 어느 시골 초등학고에나 있는 낡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어느 시골 초등학고에나 있는 낡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 신광태

"이승복 어린이 동상에도 그림을 그려 넣으셨던데."

"제 나이 또래, 아니면 우리 선배님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보면 공통적으로 서 있던 동상이 이순신 장군 아니면 세종대왕, 그렇지 않으면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 보니, 학교가 폐교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너무 낡아 있었어요. 그래서 색깔을 입혀서 '소년 꽃을 피우다'라는 제목과 함께 생동감을 불어넣었는데, 괜찮아 보이죠?"

문패만 봐도 그 집은 무슨 농사를 짓는지 알 수 있다

 문패에 콩을 그려 넣은 것으로 보아 이 집은 올해 콩 농사를 지은 집이다.
문패에 콩을 그려 넣은 것으로 보아 이 집은 올해 콩 농사를 지은 집이다. ⓒ 신광태

 윤옥봉씨 집은 올해 서리태와 고추를 심었다
윤옥봉씨 집은 올해 서리태와 고추를 심었다 ⓒ 신광태

 유문순씨와 아들 한창선씨는 소를 키우며 올해 호박을 심었다.
유문순씨와 아들 한창선씨는 소를 키우며 올해 호박을 심었다. ⓒ 신광태

이정인·이재은 작가 부부가 화천에서 두 번째 늦은 봄을 맞이한 어느 날, 주민들과의 친밀함을 더하기 위한 획기적인 구상을 했다.

'가가호호 문패를 달아드리자.'

지금까지 우리 인식에 남아 있는 문패 구조는 청색 아크릴에 주소와 이름만 새긴 게 전부. 요즘 정부에서는 한 술 더 떠 새 주소라는 괴상한 것을 만들었다. '○○리 △△반 김아무개' 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과연 '□□길 1234'라는 식의 주소에 정감이 가겠는가.

작가 부부가 구상한 문패는 가족 부부의(또는 어르신들의) 이름들을 새기고 아래에 고추나 콩, 옥수수, 벼 등의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곡식 그림을 그려 넣은 게 아니다. 콩 농사를 짓는 집엔 콩 그림을, 고추 농사를 지은 할머니의 집에는 고추, 돼지를 키우는 아저씨의 집 문패에는 돼지 그림을 그려 넣었다. 누가 봐도 이 집은 어떤 농가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에서다.

'내년엔 우리 고추농사를 짓지 않고 고구마 심을 거예요'라고 말하면 고구마 그림으로 바꾸어줄 생각인데, '염치가 있지'라는 생각에 연락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게 그들 부부의 작은 고민이다.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낡았다. 작가는 이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입힐 계획이다.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낡았다. 작가는 이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입힐 계획이다. ⓒ 신광태

 이정인 작가의 작품 전시실
이정인 작가의 작품 전시실 ⓒ 신광태

 부인 이재은 작가의 전시실
부인 이재은 작가의 전시실 ⓒ 신광태

지금까지 작업실과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는 분교 건물에 대해 별도의 리모델링 작업은 하지 않았다. 화천군에서 문화예술 지원사업 예산으로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작가 부부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이 건물을 지탱해온 슬레이트 구조의 지붕은 석면이란 유해물질 때문에 바꾸어야겠지만, 마루 재료로 쓰인 송판은 폐기물로 버려선 안 된다. 과거 화전민들이 모두 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이 학교를 거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50대가 훌쩍 넘어선 그들의 흔적이다.

이정인 작가는 그것을 희망으로 재탄생시키자고 마음먹었다. 작가는 처음 그들을 그곳으로 안내했던 화천군청 윤홍근 계장에 전화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윤 계장님, 교실바닥 송판만은 폐기물로 버리게 하지 말고, 내게 주시면 그에 어울린 작품들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관광기획담당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정인#이재은#화천군#화천#신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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