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장터 대선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21일 전북 군산시 대야장(5일장)을 찾았다. 추석을 아흐레 남겨놓은 지난달 21일에도 이곳을 다녀왔었다. 굳이 대야장을 찾는 이유는 시내 재래시장과 달리 충남 서천군·대천시, 전북 익산·김제·만경 등의 민심을 접할 수 있어서다.
23일은 된서리가 천지를 뽀얗게 뒤덮는다는 상강(霜降). 이때 쯤이면 농촌은 벼 수확하랴, 찬 서리 내리기 전에 고추 따랴, 깻잎 따랴, 고구마 캐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짧은 가을 해가 밉게 보일 정도로 바쁜 추수철이어서 그런지 장터는 비교적 한산했다.
다지 찾은 군산 대야장... 민심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래도 시골 장터의 훈훈한 인심은 여전했다. 장바닥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할머니·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한잔 하시라"며 잔을 건넸다. 포장마차에서 빵을 사 먹는 아낙들에게 말을 걸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하나를 집어주며 "맛있으닝게 잡숴보세유"라며 권했다.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3시간에 걸쳐 기자의 질문에 응한 사람은 모두 39명. 그중 5명은 20대~30대, 19명은 40대~50대, 15명은 60대 이상이었다. 일요일 오후여서 부부가 함께 시골 장터 구경 나온 30대~40대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시대의 일에 대해 줄곧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정수장학회의 MBC, <부산일보> 지분 매각 관련 녹취록 문제에 대해서 박 후보는 "(나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박 후보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는 강탈이 아닌 기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우선 장터 상인과 시민들에게 "오늘(21일)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해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19명은 "모른다"고 답했고, 17명은 "장물이니 국고로 넣어야죠" "뻔할 뻔짜 아닙니까?"라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후보가) 알아서 할 텐데 왜 자꾸 따지고 드는지 모르겠다"며 박 후보를 옹호하는 사람도 3명 있었다.
건어물 상인 곽경희(64)씨는 "젊었을 때 민정당 노태우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해 표창장도 받았는데, 전두환-노태우의 천문학적인 불법 비자금조성 사건을 보고 불살라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정수장학회나 전직 대통령들의 불법 비자금 사건이나 그게 그거"라며 "대통령에게는 극도의 도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야권지지자들 단일화 원해 지역이 호남이기에 대선 민심은 지난달처럼 야권 지지 견해가 높았다. 박근혜 후보에게 호감이 간다는 의견도 지난달과 비슷했다. 다만 기자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문재인 후보 지지가 지난달에 비해 부쩍 늘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장터에서 만난 시민과 상인 39명 중 4명(10%)은 박근혜, 16명(41%)은 문재인, 14명(36%)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5명(18%)은 "아직 마음에 드는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며 대답을 유보하거나 투표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기자가 지난달 같은 현장에서 들은 여론에 비하면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안철수 후보에 비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30명은 하나같이 단일화를 원했다. "두 사람 중 누가 나가야 승리하겠느냐?"는 질문에는 1개월 전과 달리 문재인 후보를 꼽는 사람이 많았다. 안철수 후보의 약점으로 '정치인 기질(카리스마)' 부족과 약한 조직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인물의 참신함보다 조직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읽힌다.
안철수 후보를 거론하며 "이대로 가다가는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짝 난다"며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이들은 "안철수는 아직 때가 아니다" "정치인 자질은 부족하다" "너무 점잖아서 불안하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생선 상인과 손님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새우깡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배움도 짧고, 시골 장터에 젊음을 바친 70대 할머니들이지만 나름대로 세상 보는 눈이 있었다. 한 할머니가 "문재인, 안철수가 합쳐 뿌려야지 서이(셋이) 끝까지 가믄 박근혜가 당선된다"고 하자 "그럼, 그라제"라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비리 전력이 있는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박근혜 캠프로 가고,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안철수 캠프로 합류한 것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들은 "머 헐라고 (문재인, 안철수) 한꺼번에 나와서 골치 아프게 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할머니들의 지지 후보는 안철수 4명, 문재인 3명으로 팽팽히 갈렸다. 한 할머니는 "그리도 민주당 찍어줘야 허지 않겄소?"라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다른 할머니는 "며느리랑 아들들이 안철수가 똑똑허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얘기 헌다"며 안 후보 지지를 에둘러 표현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50대 아주머니는 "거시기 당(새누리당)은 옛날부터 싫어했고, 박근혜는 살림(결혼)한 경험이 없는 여성 후보여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때 총리였던 한명숙이 나왔으면 아무리 여자라도 찍어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방앗간 주인 아주머니는 "저는 안철수를 찍고 싶은데 시집이 문(文)씨여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난처해했다. 그는 "안철수를 지지하는 손님이 많은 것 같다"고 전하면서 "뉴스에서 올 대선은 30대~40대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하더라"며 관심을 표했다.
군산 대야에 산다는 60대 아저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박근혜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박근혜와 이명박을 따로따로 얘기하는데,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도 망치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도 망가뜨린 책임을 박근혜 후보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근혜가 아버지에게 배워서 대통령 잘할 것"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70대 할아버지는 "박정희는 강제로 대통령을 했지 국민이 뽑아서 대통령 한 사람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박근혜는 아버지(박정희)한티 많이 배웠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농촌 초가지붕 개량, 새마을운동, 보릿고개 해결 등을 박정희 대통령 업적으로 꼽았다.
1톤 트럭을 개조해 아내와 함께 주꾸미, 낙지 등 해산물을 파는 김연도(42)씨 부부는 지지 후보가 달랐다. 김씨는 "후보들 토론을 본 적이 없어 면면을 자세히 모른다"면서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내는 "안철수, 문재인 두 후보의 단일화 과정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답변을 유보했다.
군산에서 장을 보러 왔다는 김민구(49)씨 부부도 지지 후보가 달랐다. 아들과 함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김씨는 "부부 간에 지지 후보가 다를 수도 있지 않으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40대의 김씨 아내는 "투표할 마음이 없지만, 만약 하게 되면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고 답했다.
어머니와 함께 순대를 먹던 20대 두 명은 "현재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 투표하지 않겠다는 뜻이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 후보들의 밑그림이 확실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그런다. 12월의 대선 투표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40대 과일장수 아저씨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투표를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사에 신경을 쓰다보니 후보들의 장단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선 관련 정보를 알고 싶어도 장사 끝내고 밤 11시 넘어 집에 들어가면 곯아떨어지기 때문에 TV 뉴스 시청할 시간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기자의 질문에 응한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관련 소식을 대체로 TV 뉴스로 얻고, 나머지 절반은 자녀와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듣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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