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즈는 테헤란에서 동남쪽으로 약 10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자그로스 산맥의 안쪽 이란 고원에 위치하여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도시이다.
아마도 이 도시의 이름은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그리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묵직한 맛과 강렬한 향이 느껴지는 자극적인 와인을 좋아한다면 포도 품종 중 시라즈(혹은 시라) 포도를 원료로 하여 만든 와인(예컨대 호주산 펜플즈 그레인지)을 마시는 것이 좋은데, 바로 이곳이 그 포도의 원산지이기 때문이다(시라즈 포도는 십자군 전쟁 때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 도시가 페르시아 탐방에서 반드시 대상 도시 목록에 들어가는 것은 그 도시 자체의 역사성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찬란한 유적을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케메네스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와 파르세가데가 60~70킬로미터 이내에 있기에 통상 관광객들은 이들 역사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시라즈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시라즈는 페르시아의 어원이 된 파르스 지역의 중심도시(현재도 파르스주의 주도임)로서 페르시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왕조가 흥성했던 지역에 위치한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그렇고 사산 왕조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흥성하였다. 근대에 들면 이곳은 카림 칸 잔드 왕조의 수도이기도 하다. 앞에서 본대로 카림 칸은 잔드 왕조를 열면서 사파비 왕조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다. 따라서 시라즈 탐방을 함에 있어서는 잔드 왕조와 카림 칸에 대해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고성 한가운데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다?
시라즈 시내 탐방의 첫 목적지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고성 아르게 카림카니, 이곳은 원래 잔드 왕조를 연 카림 칸의 성이었으나 팔레비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각형의 그리 크지 않은 성은 약 14미터의 외벽을 갖고 있는 당당한 성으로 그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소위 중정(中庭)이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장방형의 연못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이슬람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정원의 중정도 바로 이런 장방형의 연못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중정에 심어져 있는 오렌지 나무가 이상해 보였다. 언뜻 유럽의 정원을 보는 듯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행한 시라즈 지역 문화재관리청의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 나무들이 원래 잔드 왕조 때부터 있었던 것이냐고.
대답은 나의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원래는 이런 나무가 이곳에 심어져 있지는 않았는데 후대에 심은 것으로 이슬람 정원의 형식이 아니라고 하였다. 아마추어 여행가인 나도 어느새 문화에 대한 직관이 생긴 모양이다. 나 자신도 스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두 번째 행선지는 이맘 알리이븐함자의 묘당, 이곳은 시아파의 일곱 번째 이맘의 조카인 알리이븐함자를 위한 사원으로 10세기경에 축조된 것이다. 그러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을 강타한 수회의 지진으로 원래의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고, 우리가 보는 건물은 후대에 재건된 것이다. 여하튼 이곳 내부를 들어가면 그 휘황찬란함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사원의 내부는 온통 거울로 장식되어 있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번 탐사 여행에서 가장 화려한 이슬람의 건축장식을 보는 순간이었다.
대적할 자가 없는 시인, 하피즈
이어 우리 탐사단은 하피즈의 묘당으로 향했다. '하피즈'(하피즈는 원래 '꾸르안(코란)을 암송하다'라는 뜻임) 바로 이란의 시성이 잠든 곳이다. 13세기의 인물이지만 그는 지금도 이란인의 자랑이다. 이란의 가정에 꾸르안(코란)이 한편에 있으면 다른 한편에는 하피즈의 시집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하피즈는 몽골제국의 침입 후 만들어진 일한국(1258~1353) 말기에 태어나 티무르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15세기 초까지 산 인물로 50년 동안 난세에 활동한 풍운아였다. 그의 신앙관은 소위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신비의 체험을 통해 자기를 소멸함으로써 신과의 합일에 도달한다는 사상이다.
그는 이러한 사상으로 철저한 금욕과 절제의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로지 신비로운 영적 심리상태에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하피즈는 이런 생활을 바탕으로 독특한 자신의 시(詩) 세계를 펼쳐 나갔다. 그의 시는 아랍세계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괴테는 그에 대하여 '대적할 자가 없는 시인'이라고 극찬하였고, 니체 또한 <하피즈에게>라는 송시를 썼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그의 시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여전하고, 급기야는 유엔에서도 그의 시 50편을 엄선해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가히 아랍권이 낸 세계의 시성(詩聖)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하피즈를 모신 묘당은 어떤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묘당은 그리 크지 않은 정원 한가운데에 8개의 원주에 떠받쳐진 8각형 돔이 전부다. 원래 이슬람에서 8이라는 숫자는 신성한 의미를 뜻하므로 8각형의 돔은 바로 그런 신성함을 뜻한다고 안내자는 설명하였다. 마침 많은 아이들이 찾아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묘당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어린 꼬마들이 하피즈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터인가, 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하피즈의 시를 암송하면서 이슬람의 영원한 시성을 자랑할 것이다. 그들의 엄마나 아빠도 그랬으니.
시라즈에서의 본 마지막 기념물은 꾸르안(코란) 문, 이것은 시라즈를 벗어나 페르세폴리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라즈의 대표적 기념물이다. 이 문은 원래 9세기경에 건축된 것인데 잔드 왕조의 카림 칸이 문 위에 다락방을 만들어 꾸르안을 넣었다고 한다.
이슬람의 전통에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모두가 꾸르안을 지나가며 안녕을 빌었다. 바로 이곳이 그런 곳이다. 사방은 황량한 사막, 이제 먼 길을 떠나는 저 실크로드의 주인공들을 생각해 본다. 수십 마리의 낙타를 이끌고 이곳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을 떠나는 대상들의 모습이 바로 현실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