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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10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 "구태정치이고 정치야합"이라며 "(단일화는) 이제 한국정치에서 다시 들먹여서는 안 될 정치 용어라고 본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10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 "구태정치이고 정치야합"이라며 "(단일화는) 이제 한국정치에서 다시 들먹여서는 안 될 정치 용어라고 본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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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신뢰란 쌓긴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순간인 법이다. 애틋한 마음으로 존경을 보냈던 한 정치인의 요즘 모습을 보노라니, 자괴감을 넘어 정치에 대한 환멸이 느껴진다. 지난 4· 11 총선에서 사지(死地)인 광주에서 혈혈단신으로 고군분투한 새누리당 이정현 전 의원(현 새누리당 공보단장) 말이다.

그는 감히 당적이 적힌 명함조차 꺼낼 수 없는 불모지에서 당당히 기적을 일구겠노라 다짐한 옹골찬 정치인이었다. 지역민들은 십수 년 동안 지역에 보인 그의 지극정성에 감동했고, 비록 아깝게 낙선했지만 여태껏 새누리당이 호남지방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40% 득표라는 전무후무한 지지를 얻었다.

그는 낙선했지만, 당선된 것보다 값진 자산을 얻었다. 중앙당은 물론, 모든 공중파 방송에서 밤낮으로 그의 낙선 소식을 전하며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헌신적 인물로 그려냈고, 그 역시 지역민을 향한 낙선 사례로 "비록 배지는 잃었지만, 광주시민의 마음을 얻었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새누리당이라면 혀를 내두르는 지역의 20~30대 젊은이들조차 그의 당선을 은근히 바랐을 정도로 성원을 한 몸에 받았고, 그의 당선이 강고한 지역주의에 균열을 내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지역구 출마는 '바보' 노무현의 부산 출마에 비견될 정도로 관심이 컸다.

그가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시절 지역에 쏟은 정성은 대단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그에게 지역의 언론들과 공직자들은 '호남의 예산 지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국회 내에서의 활동도 모범적이어서 2008년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선정하는 우수의원으로 뽑힐 정도였다.

그는 까마득한 동문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존재였다. 지역에 내려올 때면 바쁜 시간을 쪼개 틈이 나는 대로 출신 고등학교를 찾아 후배들 앞에서 강연을 해왔다. '촌놈'인 자신이 헤쳐 온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며 후배들에게 꿈과 야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주었다. 진흙탕이라는 정치판에 멋진 정치인도 있다며 그를 존경하는 선배이자 롤모델로 삼는 아이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요즘 들어 이상해졌다. 애틋한 마음으로 지금껏 그를 지켜본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입' 역할을 자처해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주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곧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역사도, 진실도, 논리도 눈 감아버리는 억지를 부리고 있어 안타깝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개탄스럽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압으로 빼앗은 부일장학회의 창설자인 고 김지태를 부정축재자로 내몰더니, 여론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숫제 친일파로 매도하고 나섰다. 친일파 문제라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데, 용감무쌍하게 맞불을 놓은 형국이 됐다.

근거인즉슨, 단지 일제강점기 수탈 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근무했다는 것이다. 일제 수탈 기구에서 일했으니 친일파이고, 친일파의 재산은 국가가 몰수하는(또는 헌납 받는) 게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논리라면,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에 맞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뭔가.

'주군'의 부친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점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백 보 양보해서 경제 발전의 공이 아무리 크다 한들 반민족행위를 저질렀다는 과거의 추악한 행적이 지워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친일파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눈 흘기는 여론에 편승해 일단 매도하고 보는 행태는 온당치 못하다. 정수장학회의 수렁을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단 찔러나 보자'는 식의 폭로는 계속되고 있다

이정현 전 의원의 '일단 찔러나 보자'는 식의 폭로는 계속되고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에서 벗어나자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금품수수 사건을 끌어들이는 건 생뚱맞기도 하려니와, 정치 도의 상 누가 봐도 비열한 짓이다. 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는 맹목적 저주를 활용하겠다는 못된 발상이다.

새누리당의 선거 운동만 놓고 보면 지난 5년 전 대통령 선거의 복사판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상대가 정동영 후보가 아닌 노무현이었던 것처럼,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상대 역시 안철수도, 문재인도 아닌, 노무현이다. 어떻든 이미 고인이 된 그를 흠집 내서라도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선거 전략인 셈이다.

이 역시 공보단장을 맡고 있는 이정현 전 의원의 몫이다. 전임 노무현 정부의 최고의 업적 중의 하나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 바로 대통령 기록물의 관리와 보전에 관해 튼실한 매뉴얼을 제정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해 남기고 추후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을 막기 위한 지침을 꼼꼼하게 마련하는 등의 그의 노력에 여론도 지지로 화답했다.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조차 호응했던 이를 일부 보수언론의 도움을 받아 세부 지침의 의도를 왜곡해가며 트집을 잡고 있다. 야당 대통령 후보를 향한 공세의 소재로 삼아, 정수장학회 문제를 비롯한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술책이다. 숫제 거창하게 '역사폐기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라는 명패까지 달았다.

이정현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에다 대고 "5천 년 역사 최초의 역사폐기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법 제정의 취지에 대한 이해는 물론, 전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막말에 가까운 언사다. 불과 5년간 재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전 55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남긴 것보다 스무 배도 넘는 방대한 기록물을 남겼다는 사실을 그는 정녕 모르는 걸까.

그가 의원 시절 썼던 책 표지를 보고 살짝 감동했었다. 책 제목이 <진심이면 통합니다>였다. 지난 4·11 총선 때 보여준 그의 '진심'을 다시 보고 싶다. 그는 낙선 인사에서 '광주시민의 성원에 운다'며 이러한 '진심'을 보여줬다. 뭉클했다.

"당 조직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2만 8314표를 얻었다. 이건 내가 얻을 수 있는 표의 전부다. 지난 2004년 이곳에 출마했을 때 얻은 표는 고작 720표였다. 실로 엄청난 변화다. 거의 30년 동안 특정 정당만 찍어온 사람들에게 이것은 신념을 바꾸는 문제였다. 지역구의 한 분 한 분이 내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정말 감사하고 눈물이 난다. 나 같은 못난 놈한테..."

이 낙선 인사가 그의 '진심'이라면, 아무리 선거철이라지만 박근혜 후보의 '입'으로서 보이는 지금의 모습은 과연 같은 사람의 것인가 싶다. '주군'의 종복이 되어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얄팍한 심산이 아니라면, 부디 '진심'으로 돌아오라. 홀로 선 당당한 정치인, 진실이라면 '적'에게도 머리 숙일 수 있는 멋진 정치인, 상식과 논리가 통하는 헌신적인 정치인으로 돌아와 달라. 지난 4·11 총선 때 지역민들에게 보여준 그 아름다운 눈물을 다시 보고 싶다.


태그:#이정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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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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