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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입니다. 11월 8일에 실시되는 시험을 앞두고 고3 학생은 물론 부모님까지 긴장의 끈이 견고해 보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고3 학생이 수업 시간에 도망을 치고 개인행동을 한다면 담임 교사로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예, 제가 바로 그 담임 교사입니다. 수능을 17일 앞두고 저희 반 학생이 시쳇말로 '땡땡이'를 쳤습니다. 철이(가명)는 평소에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몇 차례 문제를 일으킨 터라 제가 단단히 타일러 자기 관리 잘 하기로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21일이었습니다. 정규 수업은 7교시에 마치는데, 출석부 6교시란에 사선 한 개가 그어져 있었습니다.

"얘들아, 철이 어디 갔니?"
"짼(도망친) 거 같아요!"
"뭐라구?!"


순간 차오르는 배신감에 안절부절못하던 저는 당장 철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철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약 5분가량 지나자 철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당장 올라오면 용서할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오지 않는다면 인연을 끊어버릴 거야! 도대체 왜 튄 거야?!"

세게 나갔습니다. 철이는 쉽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선생니임~ 제가 오늘 좀 들떠서 그랬어요. 요즘 잘해왔잖아요.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 선생니임~!"

세게 나가는 제게 애교로 응수하는 철이가 참으로 애틋해 보였지만 공동체 질서를 위해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뭐라구? 용서? 한 번만? 그동안 용서한 일도 얼만데, 잔말 말구 올 거야, 안 올 거야!"
"네, 갈게요."
"1시간 주겠어! 그 안에 도착해라, 잉~!"

다른 이유 달지 않고 우선 오겠다는 말에 기분 좋았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올라가자 철이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선생니임~ 정말 힘들고 들떠서 그랬단 말이예요~. 선생님 요즘 힘드시죠?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으쌰으쌰~!"

평소에 보기 힘든 살가움에 당장이라도 용서하고 싶었지만 문제의 본질이 덮인 채 '너무 쉽죠잉~' 정도로 끝나는 게 싫었습니다.

A4 용지 한 장을 주고 우선 반성문을 쓰게 했습니다. 보충수업 한 시간을 마치고 교무실에 오니 초등학생처럼 큼지막한 글씨로 앞뒤를 채운 반성문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과 약속한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는 행동의 죄값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중략)

엄마가 다니시는 절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어요. 둘 다 부모도 다르고 입양해온 장소도 다른데요. 한 마리는 매일 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신발은 있는 대로 물어뜯고 자유분방한데요. 다른 한 마리는 매일 활동도 잘 안 하고 집 안에만 있고 말도 잘 들어서 스님한테 사랑받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사람도 짐승도 근본이, 환경이 심성, 습성을 결정한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제 자신이 이래서인지 천방지축인 강아지랑 잘 통하고 애착이 갑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죄송합니다"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입장 잘 알아요. 학생들을 선도하고 교육할 의무가 있는 공교육자로서 절에 있는 말썽쟁이에 천방지축인 강아지인 저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시기 어렵다는 걸요.

하지만 천방지축 강아지와 말 잘 듣는 순둥이 강아지를 다른 시선으로 보아주시면 좋겠어요. 죄송합니다.

반성문 "천방지축 강아지를 용서해 주세요."
반성문"천방지축 강아지를 용서해 주세요." ⓒ 박병춘

24년 동안 교직에 머물며 수많은 반성문을 읽었습니다. 철이의 반성문은 드물게 보는 수작이었습니다.

"아이구~! 철아! 반성문 정말 잘 썼다! 이 정도 반성문이라면 작가가 돼도 충분하겠구먼! 더 이상 일탈 행동하면 저 두 마리 중 천방지축 강아지보다 못한 거다!"

단단히 다짐을 받으려는 순간 철이가 말했습니다.

"근데 선생님! 스님께서 그 두 마리 강아지 중에 말 잘 듣는 강아지를 먼저 팔 거래요."
"뭐라구?"

순간 저는 둔기에 한 방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천방지축 강아지는 절에 계속 남을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강아지가 되고 싶다구요."

저는 상담실 한 켠에 철이를 세워놓고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그날 철이와 저는 둘만의 비밀로 통과의례(?)를 치렀습니다. 그 내용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철이와 저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철이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조금 전에도 교무실에 올라와 제 어깨를 주물러주고 교실로 내려갔습니다. 행복한 가을입니다.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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