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스모스 꽃 진 자리에 씨가 맺히고...
▲ 되어져 가는 것들... 코스모스 꽃 진 자리에 씨가 맺히고...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자, 선물이야."

그것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까만 눈을 크게 뜨고 빤히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연한 파스텔톤 포장지에 싸인 분꽃 씨는 이 아침에 내게 선물을 주기 위해 봄을 지나고 여름을 거쳐 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내게 말을 자꾸만 걸어온 듯 했다. 나는 분꽃 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단단하게 잘 여물어진 까만 분꽃 씨를 몇 개 손에 받았다. 가을 지나고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면, 심어봐야지 생각하면서.

며칠 전, 이른 아침의 일이다. 선득선득 찹찹한 시월의 아침공기가 좋아서 산책길을 걸어보았다. 여전히 키가 큰 해바라기 꽃은 동녘 하늘에 떠오른 햇살을 향해 얼굴을 향하고 있고 그 아래 빨갛게 익은 석류는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연하디 연하던 호박잎들은 점점 잎이 커지고 물기가 빠지면서 거칠어지고 빛바래져 갔고, 호박꽃은 연신 피고지고 하면서 주먹만 하던 호박이 아기 엉덩이만 하게 커져 있었다. 아주까리 나무에 달린 초록빛 아주까리 열매는 물기가 빠지면서 연갈색으로 말라갔고 안개꽃처럼 아른아른 피었던 하얀 메밀꽃은 빛이 바래면서 연갈색 씨를 맺고 있었다.

되어져 가는 것들...
▲ 분꽃 씨 되어져 가는 것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산책로를 걸으면서 벤치 앞에 다다랐다. 지난여름이었던 것 같다. 예전엔 없었던 분꽃나무가 벤치 옆에 심겨져 있던 것을 본 것이. 분꽃이 진분홍빛으로 한 가득, 마치 꽃다발을 묶어놓은 것처럼 소담하게 피어 있는 것을 보면서 누가 이렇게 벤치 옆에다 심었을까 흐뭇해하며 바라봤었다.

산책하다가 앉았던 의자, 문득 그 옆자리가 허전했던 걸까. 홀로 앉아 있다가 문득 옆구리가 허전하기라도 했던 걸까. 간직해 온 분꽃 씨앗을 가지고 나와 심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 외롭게 홀로 앉을 사람을 위해 까치나 콩새, 산비둘기가 분꽃 씨를 물어다 떨어뜨렸던 걸까. 한 아름의 꽃다발처럼 그렇게 빈 의자 옆에 소담스레 피어 있었다.

되어져가는 것들...
▲ 코스모스 씨... 되어져가는 것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그랬던 것이 오늘은 꽃들은 후르르 하나둘씩 떨어져버리고 또 꽃이 지고 지면서 씨앗을 만들었다. 말랑말랑하고 작은 씨앗은 씨방 속에 꼭 꼭 잘 싸여져 있다가 한 밤 두 밤... 날이 가면서 어느새 까맣고 단단하고 동그란 씨를 만들었고 씨방은 마치 곱디고운 꽃무늬 포장지처럼 까만 씨앗을 감싸고 선물처럼 꽃 진 자리 꽃이 시든 자리에 잘 싸여진 까만 분꽃 씨앗. 빈 벤치 옆에 소담스레 핀 분꽃나무의 씨앗을 들여다보다가 한 손 가득 까만 분꽃 씨를 담고 일어섰다.

이 산책로는 그냥 보면 허전하고 그다지 눈길 끌만한 것들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 천지다. 허접해 보이는 산책로 가장자리 풀밭에서도 경이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그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시선 닿는 곳마다 보일 듯 말듯 이름 모를 풀꽃들이 내 마음을 끈다. 해서 산책길 홀로 걸어도 심심한 줄을 모른다. 여기저기서 나의 관심을 끌고 말을 걸어오는 것들이 발걸음을 붙잡기 때문이다. 말없는 말, 그것들만의 언어로 나에게 짧은 메시지를 준다.

해서 오늘은 온종일 '되어져 가는 것들'에 대해 '선물'에 대해 생각하였다. 우리는 모두가 뭔가 되어져가는 존재들이다. 그 무엇이 되어져 가면서 우리도 누구한테 작은 선물이라도 될 수 있을까. 나는...무엇이 되어져 가는 걸까. 작은 선물, 작은 노래라도 될까.

되어져가는 것들...
▲ 코스모스 씨 되어져가는 것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만물은 노래하고 말한다
새는 새노래로 노래하고
바위는 침묵으로 말한다
나는 무엇으로 노래하고 무엇으로 말하는가

나의 가갸거겨고교는 무슨 잠꼬대인가' (고은 시 '순간의 꽃'에서)

시나브로 분꽃은 진분홍빛 꽃을 피우면서 까맣고 단단한 씨를 맺어가고, 코스모스도 꽃이 시들면서 씨를 맺기 시작했다. 시든 꽃잎도 다 떨어진 자리엔 씨가 한가득했고, 씨방 속에 연두 빛으로 한가득 촘촘이 들어찼다. 더 일찍 씨를 맺기 시작한 것은 갈색으로 말라서 가지에 겨우 붙어 있었다. 잘 익은 씨앗들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손바닥 안에 후르르 후르르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태그:#분꽃 씨, #되어져가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