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영화 <도가니>가 성폭력과 관련한 장애인 인권 문제에 경종을 울리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종종 스크린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올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남영동 1985>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다. <남영동 1985>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의 신작으로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스무이틀 동안의 고문 기록을 담은 영화다.
☞ 아이튠즈에서 <이털남> 듣기☞ 오마이TV에서 <이털남> 듣기"고문, 거짓말하라고 강요하기 위한 것이더라"
영화는 지난 2011년 말 타계한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화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면서 고문에 대한 잔인하고도 솔직한 묘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은 26일 <남영동 1985>의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감독은 "그전부터 고문 가해자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었다"며 "김 고문이 돌아가시고 나서 김 고문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찾아봤고, 읽자마자 내가 생각했던 고문의 이미지와 맞아서 바로 기획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 감독은 "1980년대 후반, 고문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붉은 방>(임철우 씀)이 영화로 만들어지려다 소위 '남산'으로부터의 압력을 받아 무산된 적이 있었다"며 "그것이 안타까웠고, 고문 가해자 이근안을 소재로 픽션을 하나 만들었는데 접어두고 있다가 김 고문의 자전적 수기를 만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문이라는 소재를 두고 어떤 시각을 투영했느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국어사전을 보면 고문은 '범죄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육체적으로 가학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나온다"며 "그런데 실제로 취재를 하다 보니 고문이란 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거짓 정보를 주고 그것을 자기가 했다고 강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더라"고 말했다. 특히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정치적 배경이 깔린 고문은 거짓정보를 만들기 위해서 거짓말을 강요하는 차원에서 이뤄졌고, 정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그런 부조리함에 주목했다는 이야기.
고문 피해자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의 공포와 그 기억을 두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그 정도로 고문은 끔찍했고 입에 담기 어려운 악몽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이런 아픔을 어떻게 묘사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찍는 동안 내가 아플 정도였고, 그 아픔이 보는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일궈낸 민주주의인데... 외면은 안 된다"
정 감독은 "고문 피해자들이 매우 힘들었고 아팠지만, 오늘날까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일궈낸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 아니겠느냐"며 "어떤 고통을 겪고, 얼마나 아파서 얻은 민주주의인데 이것을 남의 일처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얻은 자유와 민주주의적 권리는 지난 시간 권력과 맞서 싸워온 이들의 고난 아래 이뤄진 것이며 그것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또 그는 "어렵게 일궈낸 자유와 권리가 지금 훼손되고 있는데도 '내 갈길 가겠다'고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게 얻어낸 것인가를 깨닫자"고 덧붙였다.
한편, 정 감독은 "우리 사회는 참 이상한 사회"라며 "심지어 저한테 부산에서 괜찮았는지, 테러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묻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대명천지에 그런 일이 그렇게 쉽게 벌어질 수 없는데 그런 걸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 곳곳에 민주주의가 만개해 있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정 감독은 <남영동 1985>가 갖고 있는 정치성을 설명하며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에는 감독의 정치적 의식이 담길 수밖에 없다"며 "정치란 말이 직접 나오지 않아서 알아차리지 못하는지는 몰라도 영화 속 정치성은 관객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가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현재 대선을 앞두고 영화가 인기를 끌게 되면 후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누가 유리할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러나 이게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감독으로서 보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