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산일수록 정상에는 등산로가 따로 없다. 사방에 길투성이다. 다니는 곳이 곧 길이 된다. 그 바람에 나무 뿌리가 드러나는 것은 예사고 나무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소요산(587미터)이라고 다를 리 없다. 소요산은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 할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숨결이 숨을 쉬고 있는 아름다운 소요산이 큰 속병을 앓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이것이 우리가 자랑하는 유명산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인간이 모른 체 하는 사이 산은 심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 26일 아침 일찍 소요산을 찾았다. 27일부터 비가 내린다기에 금년에는 가을 산을 찾지 못한터라 큰 마음 먹고 소요산을 찾았다. 금요일인데도 소요산을 찾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꽉 메우고 있다. 출발 2시간여 달린 끝에 도착한 소요산, 이미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가을 축제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길거리에는 '길다방'이란 천을 담벼락에 붙이고 커피를 파는 이색다방도 있다. 골목 장사꾼들이 대목을 보기 위해 열심이 생선을 굽고 지지고 분주하다. 엿 파는 각설이 아저씨 아줌마의 유행가 가락이 소요산을 흔든다. 행사 준비하느라 차일치기에 바쁜 사람들의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다. 가을비 치고 꽤 많이 내린다는데 행사가 잘 치러지길 기대해 본다.
자재암은 소요산 중간쯤 못가 있다. 소요산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이른 아침이어서 가을 산이 희뿌연 안개 속에 젖어 있다. 여기저기 붉은 단풍이 든 나무가 있으나 그렇지 못한 나무도 있어 완전한 가을이 당도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하다. 그래도 가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굴을 둘러보고 속리교, 극락교를 지나 108계단을 올라서니 관운봉이 눈앞에 우뚝 선다. 원효대사가 체념하여 자살하려고 뛰어내리려는 순간 도를 깨우쳤다는 절벽도 있고 원효폭포는 시원하게 물을 쏟아내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자재암이 나온다. 12시를 넘었다. 자재암에는 기도가 한창이다. 불경소리를 뒤로 하고 하백운대로 오른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급경사여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래도 남녀등산객 행렬은 끊이지 않고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는 동안 개울물소리도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린다. 청산이 나를 보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라고 하네, 나웅선사의 싯구절이 사람의 발길을 잡는다. 산을 오르는 동안 점심시간이 지난 탓인지 여기저기 둘러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자 얼굴에 땀이 흐른다.
하백운대를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는 가하면 또 아래를 조금 내려가고 그러는 가하면 또 올라가고 손잡이가 없는 길도 나온다. 바위사이를 오르는 험한 돌 길도 나온다. 그렇게 힘겹게 9부능선쯤 올랐을 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무슨 나무뿌리 전시회에 온 듯하다. 얼키고 살킨 나무뿌리들이 요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길은 여러 갈래인데다 나무 뿌리가 심하게 노출되었다. 뿌리는 마치 하늘로 솟구치기도 하고 그물처럼 사방으로 얽혀있기도 하다. 처음부터 뿌리가 이렇게 자란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도 다녀 뿌리의 흙이 씻겨 나간 탓이다. 이런 나무들이 얼마나 목숨을 부지할지 걱정이다. 이미 목숨을 다한 나무도 보인다.
소요산 관리사무소에 의하면 요즘 가을 철에 소요산을 찾는 사람수는 하루 평균 2500명 정도, 작년 같은 경우는 많을 때는 1만 5천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건강을 챙기는 인구가 더 늘 것으로 보여 소요산을 찾는 등산인구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요산은 수도권을 가까이 하고 있는데다 경치가 아름다워 찾는 이가 많다.
이렇게 좋은 산을 우리는 잘 가꾸어서 후손에게 넘겨 줄 의무가 있음에도 잘 가꾸지 못하는 것 같다. 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상처난 곳을 보수하고 자연 치유될 때까지 상처난 등산길을 부분 통제라도 실시하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를 늦추면 복원에 더 많은 노력과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