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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6일(목) (에티오피아력 2004년 1월 17일)

상쾌했다. 처음 방문하는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첫 인상이다. 입국심사대의 젊은 친구는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사뿐하게 나를 통과시켰다. 새로 지은 건물인 듯한 널찍한 공항 덕분에 짐을 찾는 데에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약간 더운 듯한 날씨, 반팔을 입으면 딱 좋은 그러나 '후덥지근하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날씨다. 상쾌함이 물씬 풍긴 것은 바로 공항 밖의 풍경 때문이었다. 포터를 끌고 가는 나를 적어도 서너명이 둘러싸서 포터에 말 그대로 '손만 대고서' 짐 운반해줬으니 팁 달라고 알랑거리던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코토카 공항 밖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매번 팁을 주려고 하긴 했지만, 1달러를 주면 왜 2달러를 안 주냐고 하고, 2달러를 주면 또 옆 사람이 달려와서 자기도 한몫 거들었으니 달라는 모습에 나중에는 진절머리를 치고 말았다. 자기 택시를 타라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모습과 걸핏하면 외국인에게 두세 배는 기본으로 '후려치는' 무지막지한 바가지. 햇수로 3년을 산 서아프리카 가나를 떠올리며 에티오피아 땅에 발을 디뎠다.

기다리는 택시가 있다는 한 마디에 사뿐히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주황 조끼를 입은 공항택시 기사들. 그들을 뒤로 하고 공항 주변을 배회하는 낡은 택시 한 대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볼레 거리입니다.
▲ 볼레 거리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볼레 거리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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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볼레 거리입니다.
▲ 볼레 거리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볼레 거리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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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번화가인 볼레 거리입니다.
▲ 볼레 거리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번화가인 볼레 거리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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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져진 도로, 경적을 쉬이 울리지도 않고, 체증도 없다.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며, 움푹 움푹 패여 성한 데라곤 찾기 힘든 도로 위를 달리는 아크라 시내 한복판, 수많은 인파들이 이동용 백화점을 차린 채 도로 위에서 위험한 날품팔이를 하고 있는 모습도 없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정점을 찍을 무렵,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시 풍경마저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쯤에서 서울로 돌아가길 천만다행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 우악스러운 이른 새벽의 소란과 지나가는 행인에게마저 귀찮을 정도로 간섭을 해대는 그들의 친절이 그리울 때쯤, 그때 다시 아크라를 찾기로 하자. 

몇 개월 전 떠난 아크라를 떠올린 지 한 십분, 먼 뒤로, 나지막한 산이 성큼 보이고 나는 호텔에 도착했다. 

2012년 1월 27일(금) (에티오피아력, 2004년 1월 18일)

"마끼야또..."
"예?...마...마끼야또?"

보건사업부장님이 직원에게 뭐라고 말을 건넨다. 뭘 좀 마시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분나(커피의 에티오피아 어)를 좀 달라고 했을 뿐인데, 마끼아또를 주문한다.

잠시 후,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살짝 얹은 커피, 마끼야또가 등장. 그것도 이스탄불에서나 보았던 유리잔에! KOICA 인턴 양 선생을(영양 전문 NGO WITH 소속) 다시 공항에서 만나, 숙소에 짐을 풀고 월드비전으로 향했다.

접수대로 가서 CMAM 담당자 레마를 기다리다 안내하시는 선생님의 안내를 받고 보건전문부서로 향했다. 열대여섯 분이 일함직한 격벽이 설치된 사무실, 독방 위주로 된 월드비전 가나와는 매우 다른 사무실 공간이다. 작은 키에 앞머리가 살짝 벗겨지신 보건부장님이 환대해주셨다.

"커피나 차를 좀 들지 않을래요?"
"예, 커피 좋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끼아또입니다.
▲ 마끼아또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끼아또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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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끼아또입니다.
▲ 마끼아또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끼아또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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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끼아또입니다.
▲ 마끼아또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끼아또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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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가 카푸치노를 몰라서, 거품을 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만든 특별 커피입니다.
▲ 거품커피 바리스타가 카푸치노를 몰라서, 거품을 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만든 특별 커피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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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방금 전 시내에서 세계 최고 품질의 커피라 할 수 있는 에티오피아 카푸치노를 마시고 그 감동과 흥분이 아직 채 가시기 전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작은 유리 잔에 에스프레소가 등장했던 것이다.

시내 곳곳에 자리잡은 카페가 서아프리카의 가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7세기 경, 커피를 마시고 흥분한 염소를 보고 신기해하던 에티오피안 목동 칼디. 커피의 어원 유래 중 하나도 커피를 마신 후의 흥분, 각성효과를 설명하는 카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나의 인생도 단 하루도 흥분하지 않는 날이 없었으면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CMAM(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고도급성영양실조 치료사업) 담당자이신 레마 선생님과 보건부장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우리는 후원관리부서로 향했다. 지난 3년간 가나에서 많은 경험들을 함께 나누었던 한국대사관의 김연수 과장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아디스아바바에 들렀다. 결연아동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렇게 거리에 길거리 카페가 아주 많습니다. 집에서 손수 커피를 빚어서 전통 호리병에 담아 이렇게 길거리에 나와서 파는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저는 매일 아침 길거리 커피를 마셨습니다.
▲ 길거리 카페 이렇게 거리에 길거리 카페가 아주 많습니다. 집에서 손수 커피를 빚어서 전통 호리병에 담아 이렇게 길거리에 나와서 파는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저는 매일 아침 길거리 커피를 마셨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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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결연아동을 만났으면 했다. 가장 먼저 월드비전 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여, 주말에 한국에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다음 주 월요일 9시, 부서장님, 레마 그리고 시세이님과 면담을 하기로 한 채 우리는 여유롭게 사무실을 나왔다.

택시운전사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에 갔었어요?"
"아, 근처에서 분나 한잔 하고 왔어요."

7개월 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커피에 깊이 빠지면 안되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택시에 올랐다.

2012년 1월 29일(일요일) (에티오피아력 2004년 1월 21일)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한인교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서 많은 젊은 친구들을 만났다. 코이카 단원들이다. 약 60여 명의 코이카 단원들이 이 곳에 와있다고 한다. 눈빛에 총기가 팍팍 도는 젊은이들이다. 한인교회는 특정 종교를 떠나, 에티오피아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현지에 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니, 먼 타지에 나온 이들에게는 좋은 쉼터같은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본부입니다.
▲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월드비전 에티오피아 본부입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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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기도 했고, 또 가나에서 절박하게 그리웠던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이 곳, 에티오피아에서 예상과 달리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만족감을 표하는 우리 일행에 '그 모습이 오래 갔으면 한다'라는 몇몇 분들의 짧은 답변 하나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여행자들의 시선으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여행자들의 눈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십년 넘게 일하신 분들이 현지 사정에 대해 불만이 쌓이고,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는 것 자체를 나는 분명히 치켜세우고 싶다. 그리고 나? 현지에 체류하지만 되도록 여행자가 가지는 긍정의 시선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마주해보려고 한다. 골목 어귀마다 자리를 잡고 있는 카페와, 그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 깔끔하게 이것 하나만으로, 내 만족치는 이미 정점을 넘었다.


태그:#에티오피아, #영양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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