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으로서 부끄럽다. 동대문운동장은 사라졌고, 동대문운동장역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바뀌었다.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동대문운동장이 아직 살아 있던 시절, 그 주변에 위치한 야구용품점에 야구공을 사러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대문운동장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왜 그랬을까. 내겐 예전 고교야구의 뜨거운 추억이 없어서였을까.
그 사이 동대문운동장은 2006년 10월 공원화가 계획되고, 2007년 말부터 철거에 들어가더니 결국 2008년 3월 14일,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순식간의 일이다. 그리고 야구인들의 추억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 그곳의 추억을 알지 못하던 내게, 생소하지만 이제 볼 수 없는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줬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야구의 추억', '거꾸로 읽는 프로야구사'를 연재했던 김은식 작가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글로 독자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번에는 동대문운동장이다. 여기에 2007년 8월에 찍은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의 모습을 담은 박준수 사진작가가 함께했다. 이들이 펴낸 책이 포토에세이 <동대문운동장>이다. 김은식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글은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그곳으로 회귀시키기에 충분하다.
"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가?"김은식 작가는 책 첫 장에서 "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가"라며 독자들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저자는 경성야구장에서 서울야구장으로, 마지막으로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약 백 년 동안 야구의 역사를 담아온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왜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 대해 아파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눈물조차 짓지 않았는지 묻는다.
박준수 사진작가는 서문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분명 사람의 이야기와 온기가 있었다"며 그곳을 추억하고 있다.
동대문야구장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1925년에 지어져 2008년에 철거되기까지 80여 년 동안 서울의 한 대목을 지키면서 이영민과 박현식과 백인천과 남우식과 최동원과 선동열을, 그리고 다시 박찬호와 이승엽과 추신수를 키워냈고, 숱한 명승부와 드라마와 기적을 연출해냈다.(49쪽) 나는 그 시절의 동대문운동장의 추억은 잘 모른다. 하지만 예전 동대문운동장의 전성기는 고교야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저자는 1974년 황금사자기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을 명승부로 꼽는다. 부산고에 4-1로 끌려가던 군산상고가 9회 말에 넉 점을 뽑으며 기적 같은 5-4 역전극을 벌인 사실은 열혈야구팬이라면 들어봄직한 전설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세대가 지금 알고 있는 전설의 투수들 혹은 한때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특급투수,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좌완투수로 불리는 그들이 고교시절, 동대문운동장 마운드에서 땀을 흘렸고, 미래의 '라이온 킹', '추추트레인' 역시 예전에 저 동대문 너머로 공을 넘긴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역사가 700만 관중동원의 신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 그리고 세계를 놀라게 한 WBC 준우승의 영광을 만들었다. 그래서 야구팬들이 동대문운동장을 '야구의 성지'라고 부르나 보다.
동대문운동장역 지하도 입구에서 한 줄에 천 원씩 받고 팔던 김밥이랑 소주 한 병이면, 그렇게 2천 원어치 비닐봉지 한 손에다가 담배 한 갑 정도 챙겨 들어서면, 한나절 내내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94쪽)박준수 사진작가 찍은 사진 속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은 녹슬고 낡았다. 녹슨 음식 메뉴판이 아직도 경기장 내에 걸려 있고, 계단난간이며 벽이며 성한 게 없다. 야구장을 비추고 있는 뜨거운 조명탑이 이곳이 야구장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곳에 상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다.
그분들은 40~50대 아주머니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이라고는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 정도다. 맞다. 당시 내 친구들도 동대문운동장에 고교야구를 보러 가는 이는 드물었다. 아니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우리 관심사는 늘 프로야구였으니까.
사진 속에 나오는 지긋한 노인들은 아이스박스에 먹을 것을 가져와 먹기도 하며, 어디서 구했을지 모르는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경기장 한쪽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분들에게서 나는 동대문야구장이 단순한 야구장임을 넘어서 삶의 애환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고, 그 중심에는 야구와 동대문운동장이 있음을 상상했다. 그분들도 예전에는 청춘으로서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며 누구를 부르며 뜨겁게 응원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잊어선 안 되는 '야구의 성지'오세훈 시장의 <월드디자인플라자> 건설 구상이 발표된 직후, 대한민국의 프로야구와 아마야구를 대표하는 두 단체의 수장들은 시청으로 가서 면담을 한위 '3개의 대체구장을 조속히 건설하는 조건'으로 동대문운동장의 철거에 합의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에 서명을 했다.(134쪽)저자는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동대문이 고층 쇼핑몰에 건물들에 포위되어 버렸다며, 수천억의 돈 냄새를 맡고 요동치는 괴물들의 발자국으로 새로 그려지는 세계로 들어섰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패션의 중심에서 동대문야구장은 흉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동대문야구장은 이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야 말았다.
동대문야구장이 사람이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외로웠을까, 아니면 사라짐이 슬펐을까 혹은 마지막까지 찾아주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을까. 정확히 알 수 는 없지만, 그 순간을 내 눈에 많이 담지 못한 나는 그저 한탄과 함께 아쉬울 뿐이다.
2012년, 우리는 동대문 하면 흔히 무엇을 떠올리는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패션의 메카. 그것이 사람들이 지금 부르는 동대문의 모습이다. 이곳에 내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선다. 세계적 디자이너가 설계하고 최고의 수준의 건물이 들어온다 해도 그것이 수백만 명의 야구팬들의 추억과 사랑이 담겨 있는 동대문운동장과 비교할 바가 될까.
동대문운동장의 과거를 모르든 알든, <동대문운동장>을 통해 마지막 풍경을 가슴속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추억을 담기 위해, 혹은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프로야구의 번영이 있다는 것을 가슴속에 영원히 새기기 위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동대문운동장> 김은식·박준수 씀, 브레인스토어 펴냄, 2012년 10월, 192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