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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민트차는 1년전의 희미해진 모로코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되찾게 해주었다.
 달달한 민트차는 1년전의 희미해진 모로코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되찾게 해주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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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언니와 여행 일정을 계획했을 때 무리해서 모로코를 넣은 이유는 지난해 IT봉사단으로 파견됐던 기관의 기관장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기관장 아저씨는 "내년에 있는 우리 처제 결혼식에 꼭 와야 해! 약속!"이라며 도장까지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굳이 이 약속이 아니었어도 유럽에 있는 동안 한 번은 꼭 더 갔을 터.

파리 지하철 한 면을 채웠던 <스타워즈> 촬영지로 유명한 와르자잣(Ouarzazate)의 모습을 담은 모로코 관광청의 광고를 보면서 '모로코 앓이'를 꽤나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정하고 여행을 온 언니에게도 유럽의 웅장한 성당들 말고도 모로코의 이슬람 모스크는 꼭 보여주고 싶었다. 언니 또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보고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언니가 '명소에서 인증샷 찍기'를 위한 여행보다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아! 다시 모로코

샤를 드 골 공항에서는 비행기에 전광판에 적혀있는 'Destination- Morocco, Tanger' 말고도 우리가 모로코로 향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면이 있었다. 우선 탑승권을 발권하는 곳에 모여드는 질레바를 입은 사람들, 또 친숙한 듯 낯선 아랍어는 물론이고 비행기 안에서도 가는 내내 멈추지 않았던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우리가 모로코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려줬다.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밤을 샌 탓에 피곤했는지, 쩌렁쩌렁한 아기들의 울음소리에도 비행기를 타는 내내 앞좌석에 머리를 박고 자기만 했다.

눈을 떠보니 도착한 모로코. 2시간 만에 쌀쌀했던 공기는 후텁지근해지고, 사방에서 들리던 프랑스어는 아랍어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탕헤르(Tanger)는 지브롤터 해협의 항구도시. 모로코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탓에 아쉽게도 우리는 탕헤르를 돌아볼 시간 없이 바로 쉐프샤우엔(Chefchaouen)으로 떠나기로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택시에서 탕헤르 토박이 운전기사 아저씨는 탕헤르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우리의 말에 자기가 더 아쉬워했다.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길. 작년에 간과했던 풍경들이 좀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는 것 처럼...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길. 작년에 간과했던 풍경들이 좀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는 것 처럼...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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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터미널 옆 식당에서 늦은 아침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정말 모로코에 다시 온 게 꿈인지 생시인지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정신을 한방에 모로코에 박히게 해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트차. 언니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너무 달다며 물을 찾았지만, 난 그토록 그리웠던 민트차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 모금을 마신 후 내 왼쪽에 앉은 질레바 입은 이가 잔뜩 빠진 아저씨를 보니 더 확실해진다. 

'아! 드디어 내가 모로코에 왔구나!'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길

탕헤르에서 쉐프샤우엔까지는 CMS버스로 이동했다. 버스요금은 한 사람당 100dh(원화 약 1만3000원)이었다. 여름이 다가와도 굴하지 않고 쌀쌀하던 파리에서 태양이 정수리에 90도로 내리쬐는 탕헤르에 오니 긴소매와 다리 끝까지 내려오는 질레바를 입고 거기다가 히잡까지 쓴 모로코의 여성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북서쪽 해발고도 600m에 위치한 베르베르 마을이다. 그래서 버스길도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간다.

버스를 타니 지난 2011년 사막 여행 가는 길이 생각난다.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승합차 안에서 운전기사 아저씨까지 총 11명이 차 안에 들어갔다. 오르막 내리막 산길을 오르는데 얼마나 길이 좁고 가파르던지... 승합차에서의 오싹함이 살인적인 더위를 그나마 가셔줬던 것 같다. 지난해 그 버스를 타면서 다시는 모로코에서 버스를 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1년 뒤 또 버스로 모로코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기분이 오묘하다.

헤나를 한 고은 손을 내밀고 있는 앞에 앉은 여인의 손. 나는 이 손을 보면서 이 여인의 삶을 상상하기시작했다.
 헤나를 한 고은 손을 내밀고 있는 앞에 앉은 여인의 손. 나는 이 손을 보면서 이 여인의 삶을 상상하기시작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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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버스를 타니 지난해보다 조금 더 '잘' 감상할 수 있어진 것 같다. 지난해에는 창문 앞에 벌어진 풍경이 진짜인지 믿기 어려워서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는데 정신이 없었다고 하면 이번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따금 푸르른 나무들이 모아져서 심어져 있는 숲이 보이기도 하고, 듬성듬성 밋밋한 풀들은 나 있는 곳을 지나가기도 하고, 에메랄드빛 푸른 강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 많이 먹었던 선인장 열매가 달린 선인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경치구경보다 재밌는 건 역시 사람구경. 더 산으로 올라갈수록 베르베르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고, 버스에는 아까부터 계속 통화를 하고 있는 아저씨 목소리도 들린다. 얼굴을 모르지만, 헤나를 한 고운 손을 내밀고 있는 앞에 앉은 여인의 손도 한참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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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탕헤르, #쉐프샤우엔, #모로코,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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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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