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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종수가 첫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202년, 실천문학사)을 펴낸 지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달함지>(푸른사상)를 펴냈다
▲ 이종수 두 번째 시집 <달함지> 시인 이종수가 첫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202년, 실천문학사)을 펴낸 지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달함지>(푸른사상)를 펴냈다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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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써클실마다 떡 팔러 올라오던 아주머니
아직도 떡 팔고 있다
김밥말이 인절미 절편 튀김 담긴 고무대야를 내려놓으며
떨이떡이니 팔아달란다
아니 할머니가 다되어 등장할 대목이 아닌데
누가 쓴 쪽대본일까
떡 팔아 빌딩 몇 개는 샀다는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줄 알면서도
괜히 믿고 싶어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던 언덕길만 해도 지구 몇 바퀴는 되었을 텐데
간간히 오리배 타는 유원지에도 나타나곤 했던
신출귀몰한 떡들은 왜 아직도 생계형 떡으로 달라붙어 있을까
아직도 밖으로 내모는 떡의 자식들
돈 없어 못 사먹던 그때나 있어도 안 먹는 지금이나
떡은 마천루를 짓고도 남을 이문 없는 일이거나
늘 꼭대기나 벼랑에 부리고 돌아가는
저것을 달함지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달함지> 모두

시인 이종수가 첫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2002년·실천문학사)을 펴낸 지 10년 만인 지난 8월 두 번째 시집 <달함지>(푸른사상)를 펴냈다. 이 시집 제목이 된 '달함지'는 다름 아닌 '떡함지'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이 세상에 있는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 같은 모든 것들을 달함지에 쓸어 담는다. "떡 팔아 빌딩 몇 개는 샀다는 /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줄 알면서도" 말이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63편에 이르는 시들이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향해 악을 쓰기도 하고, 눈물을 퐁퐁 쏟기도 한다. <작은 새> <담배꽃 핀다> <빈집> <가은 장날> <개구리 없는 봄> <메주 만드는 날> <콩타작> <박새점이나 쳐볼까> <땀귀걸이> <자폭 시집> <쌍놈의 새끼> <오래된 집> <선암사 두꺼비> <탱자 울타리> <처녀로 돌아가시다> <돌오줌> 달리는 막장 등이 그 시편들.

이종수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버젓이 살아 있으면서도 시를 쓰고 있었으면서도 죽어 있었던 느낌"이라고 속내를 털어 놓는다. 그는 "매미처럼 여름 실습을 다녀온 기분이다, 고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견디고 우화하는 데는 지름길이 없다는 걸 돌오줌으로 일어난 참깨밭 마음을 조금은 알았다고 해야 하나"라고 적었다.

돌오줌, 듣다 듣다 별 오줌 같은 소리 다 들어보네

돌오줌이라니. 세상에. "그야말로 '돌오줌 돌오줌, 듣다 듣다 별 오줌 같은 소리 다 들어' 보네"라는 소리가 절로 비어져 나온다. 그래. 시인이 툭 내던지는 이 말은 돌이 오줌을 눈다는 뜻일까, 사람이 돌에게 오줌을 눈다는 그런 뜻일까. 이쯤해서 시인이 말하는 '돌오줌'이라는 시를 살짝 엿보자.

지난여름 여동생네가 빚 폭탄을 맞고
집도 절도 없이 시골 빈집으로 이사 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그나마 마음을 놓았던 건 깨밭 때문이었다
외양간을 허물고 난 돌구럭 땅이었지만
온 식구가 돌을 골라내고 이랑이라도 내볼 셈으로 달라붙었는데
고르고 골라도 너벅너벅한 돌부터 골재 더미까지
돌죽이라도 끓여야 할 판이었는데
옆집 아저씨 말이 그렇게 고르다가는 세월 다 간다고
땅이 좋아 그냥저냥 심으면 될 거라고 하고
옆집 할머니가 내다 팔려고 심은 깨 모종을 얻어다 주었다

-<돌오줌> 몇 토막(122쪽)

이 시에서 말하는 '돌오줌'은 돌이 수없이 많은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은 돌이 누는 오줌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그 돌밭에 심은 깨 모종이 자라 마침내 깨가 쏟아지는 것도 "돌들이 오줌을 누고 웃어대서" 그렇다고 여기는 아버지와 어머니. 참 재미있는 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기가 막혀 가슴이 슬며시 미어진다.

이 세상살이에서 얼마나 수많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얼마나 지독한 돌오줌을 맞았으면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래. 깨 모종만 돌오줌을 맞으며 어엿하게 자라 마침내 구슬 같은 깨를 쏴아쏴아 쏟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 빚 폭탄을 맞은 여동생네도 돌오줌을 맞으며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있지 아니한가.

"잘 여문 놈들은 잘 까불고 멀리 튄다"

잘 여문 놈들은 잘 까불고
멀리 튄다
꽃밭으로 자갈밭으로
잘도 숨는다
꼭꼭 숨어 저 닮은 놈들
낳고 콩들콩들
잘살겠지

-<콩타작> 모두(58쪽)

이종수 시인은 아주 작고, 아주 여리고, 아주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시인 눈에 비치는 사람들은 어머니, 국숫집에서 만난 사람들, 시장 사람들, 오지그릇 같은 사람들, 식당 할아버지들, 다방 아가씨, 떡장수, 노동자, 아들을 셋이나 낳고도 호적에 오르지 못한 채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 등이다.

'콩들콩들 / 잘 살겠지'라는 표현이 아주 재미있는 '콩타작'이란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콩타작을 하면서 "잘 여문 놈들은 잘 까불고 / 멀리 튄다"라며 이 망나니 같은 세상살이에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고개 숙이고 손바닥을 슬슬 잘도 비비는 약삭 빠른 사람에 빗댄다. "꽃밭으로 자갈밭으로"는 돈이 되든 돈이 되지 않든 어쨌든 잘도 부비며 그 그늘 속에 숨어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시인이 이 세상이 지닌 날선 모서리를 꼼꼼하게 찾아내는 시들은 이 시집 곳곳에 씨앗처럼 몸을 묻고 새싹으로 솟아오를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에 박힌 못 / 못이 박힌 나무 / 나무가 아플까 / 못이 아플까"(집)라거나 "개는 진정 나의 전생이었을까"(개 약초꾼), "몇 마장 기다리면 / 비 그칠 것을 / 기어코 장대비 작달비 속을 뚫고 / 가야 할 때가 있다"(길),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 문살이 되어야 하는 것이네"(문살), "사는 내내 고통은 / 내 몸 빌어 숨을 쉴 것이다"(꼬막), "긴 꼬투리 끝에 꿀을 감춰두고 벌일 받아들이는 / 탁발,"(탁발-물봉선), "썩지 않는 시집들은 억울하다 / 썩는 내가 진동해도 고급종이 때문에 / 욕먹고 사는 시들,"(자폭 시집), "멍이 든 사과들이 운다"(꽃꽃꽃) 등이 그러한 시편들이다.

다이아몬드 귀걸이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는 땀방울 귀걸이

그가 웃는다
땀나게 일하고 쉬는
그의 귓불에 매달린 땀방울
진주, 다이아몬드,
그 어느 보석보다 빛나는
땀방울 귀걸이
하루일 끝낸 연장에 내려앉는 햇살처럼
귀에 걸린 웃음이여

-<땀귀걸이> 모두(67쪽)

그래. 이 세상에 땀방울 귀걸이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는 귀걸이가 어디 있을까. 이종수 시인 두 번째 시집 <달함지>는 이 고단한 세상살이에서도 절대 물러서거나 적당히 어울리지 않고 마빡을 들이밀며 힘차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용기와 힘이 희망으로 샘솟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힘겨운 우리네 삶이 이 세상에 내놓는 '달함지'(떡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는 "이종수 시편에는 여전히 '하루하루 어금니 꽉 물고 살아낸 사람들'(달력)의 고단한 삶이 빈도 높게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는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자들의 삶을 투시하면서 오늘도 이종수 식 만인보(萬人譜)를 아름답게 펼쳐낸다. 그 목록에는 참나리꽃 같은 사람들, 오소리나 햄스터 혹은 배추흰나비애벌레 같은 작은 생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고 썼다.

그는 "백석 시편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생명을 향한 지극한 연민은, 때로는 지구 밖까지 걸어가버릴 것 같고 때로는 흐릿한 골목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가녀린 존재자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으로 차차 번져간다"며 "그 연민과 사랑이 시인의 시선으로 하여금 '자본의 심장 위에 떠가는 별'(용산에서 본다)처럼 망루를 오르는 '몇 켤레의 나사와 볼트로 남는 노동자들'(기린 85호)에게까지 향하게 하는 근원적 힘이 된다"고 평했다.

시인 박성우(우석대 교수)는 "단 한 편의 시도 겉말이 없는 맑은 시집"이라며 "과연, 제 안을 식힐 줄 아는 시인의 시집답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시인이 십 년 동안이나 고행하듯 숨죽여 지고 온 <달함지>에는 그간 우리가 내려놓기 바빴던 이야기와 거들떠보지도 않던 풍경이 귀하게 담겨져 있다"고 적었다.

시인 이종수는 1966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닭공화국>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처럼>과 산문집 <요놈이 커서 무엇이 될꼬>를 펴냈다. 지금 월간 <엽서시>를 펴내며 작은도서관 참도깨비와 흥덕문화의집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달함지

이종수 지음, 푸른사상(2012)


태그:#시인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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