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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결국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지난해 10월에 원하는 모델까지 선택했다가 보류, 5개월 정도 망설이던 끝에 바꾸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것을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필요이상으로 시간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무엇보다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할 거라는 막연한 염려 때문이었다.

 국내 출시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들(자료사진)
ⓒ 김시연

막연한 염려는 스마트폰을 쥐는 순간 현실이 됐다. 꼭 필요할 때만 쓰자고 그렇게 스스로 다짐했건만, 나도 모르게 손과 마음은 자꾸 스마트폰으로만 갔다.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직전까지 눈을 뜨면서부터 잠 드는 순간까지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던 나인데... 나 역시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에 홀딱 빠지고 만 것이다.

프리랜서로 5년째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이 걸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집에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업체 사무실로 출근해 일을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지만,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12시간 가까이 밖에서 보내야 한다. 게다가 주부이다 보니 퇴근 후에도 집안일을 해야만 한다. 이런지라 출퇴근 시간이나 잠깐의 틈, 잠자는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곤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책 읽을 시간이 좀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리하여 잠자는 시간을 줄여보고 그래도 몰려드는 피곤으로 책 읽을 시간을 낼 수 없는 날도 많다. 이런 내게 비교적 책 읽기 좋은 지하철은 여간 유용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읽기 힘들 때도 있고, 서서 갈 때가 더 많지만 내게 지하철은 단지 교통수단만이 아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들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런지라 일 때문이든 개인적인 소소한 볼일이든 지하철로 가는 방법을 먼저 알아보곤 한다.

단 두 정거장 거리도 책만큼은 꼭 챙기곤 한다. 읽든 못 읽든 말이다. 책 없이 가는 것이 뭔가 허전하고 짧은 거리도 지루하다. 그런데 이런 내가 책을 놓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스마트폰 때문에, 검색만 하면 책은 물론 뭐든 찾아 읽을 수 있는 스마트폰의 무한 정보에 홀려서 말이다. 아동기에 책의 맛을 본 후 집안에 경황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를 제외하곤 책을 읽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스마트폰에 미쳐 책을 읽지 않고 보내는 날이 많아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엄마한테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스마트폰으로 매일 책도 읽는다고요. 엄마는 종이책만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해. 그런데 꼭 책을 읽어야만 하나? 스마트폰으로 살아가는 데 실제 도움이 될 살아있는 정보들을 많이 읽는 것이 책 읽는 것보다 오히려 더 도움이 많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사실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전 걸핏하면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좀 그만 하고 책 좀 읽어라"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의 역성을 들었다.

그리 많지 않은 세월을 살았음에도 두 번의 화재와 여러 번의 사업 실패, 죽음 직전까지 갔던 교통사고 등 어떤 사람은 일평생 한 번 겪기 힘든 악재들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지 않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책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의 힘이랄까. 지난날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동안 느끼고 얻은 자긍심과 자신감, 삶의 의지와 용기, 어려운 시점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지혜와 사고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여하간 지난날 책 덕분에 참으로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고, 지금 역시 참 많은 위로를 받곤 한다. 이런지라 경황없이 바쁘고 힘들어도 거의 매일 책은 읽는다. 세상의 수많은 '-꺼리'들 중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수많은 현자들이 좋아했으며 많이 읽기를 강조했던 책을 선택했음을, 언제든 읽으려고 하는 습관을 들였음을 내 삶의 최고 행운으로 생각하며 말이다.

이런 내가 변했다. 어쩌면 아이들의 말도 어느 정도는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스마트폰의 정보력을 은연 믿게 된 것이다. 또래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정보를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얻는데, 우리 아이들만 옛날 방식으로 얻는 것을 고집한다면 뒤쳐질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에 빠져 산 지 이십 일, 안구건조증에 걸리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지 않아 깨졌다. 스마트폰에 홀딱 빠져 산 지 대략 이십여 일 만에 안구건조증으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이러다가 영영 앞을 못 보게 되는 것 아냐? 우리 애들도 눈이 많이 나빠졌을지도 몰라'라며 마음 고생도 함께 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아무 때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읽는 순간으로 그치고 말아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깊은 감동은 물론이요, 여운도 거의 남지 않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책읽기의 가벼움에 헛헛한 갈증을 느끼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함께 해오며 어려울 때 힘과 용기를 얻고 위로 받곤 하던 책을 멀리했음이 슬펐다. 스마트폰을 통한 책 읽기도 좋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나만 느끼는 그 무언가를 얻지 못하는 사이, 난 황폐해지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가 보네? 이젠 정말 지하철에서 엄마처럼 책 읽는 사람들 없는 것 같아. 정말 볼 수 없어. 그래도 작년에는 책 읽는 사람 볼 수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아냐. 주엽역까지 가는 동안 한 사람도 없을  때가 더 많아. 책 읽는 어른들도 많았거든. 어른들도 다들 스마트폰만 해. 애니팡 나오고 더 그런 것 같아. 난 시시해서 한번 해보고 안하는데,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그 게임 별거 없던데. 엄마 말대로 기계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거잖아. 그런 게임에 시간을 그렇게 낭비한다는 게 난 좀 한심하단 생각이 들어. 학교에서도 책 읽는 애들 하나도 없어. 이젠 다들 스마트폰만 해."

"그런데 너도 이젠 책 읽지 않잖아. 너도 스마트폰만 하잖아."

"그렇지. 그게 아쉽긴 해. 엄마가 전에 말했잖아. 무엇을 얻든 못 얻든 책을 읽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라고. 엄마 말대로 책(책읽기)은 직접 넘겨 읽으며(종이책을) 읽는 것이 왠지 좋은 것 같아. 작년 겨울방학 때 읽은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씀) 그 책 참 좋았는데…, 다시 읽을까? 책…, 읽긴 읽어야지. 다시 옛날처럼. 그런데 쉽지 않네."

"이제부터라도 다시 읽기 시작하면 되지. 많이 읽든 적게 읽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다시 놓지 않고 꾸준히 읽으면 되고."

'책 읽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지하철'

며칠 전, 요즘 출·퇴근길에 읽고 있는 책을 가방에서 꺼내는 것을 옆에 있던 둘째(고2)가 보더니 시무룩하게 '책 읽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요즘 지하철과 학교'에 대해 말했다. 마음이 짠한 한편 '오랫동안 책과 함께 해왔던 나도 이십 여일 남짓에 불과하지만 스마트폰에 미쳐 책을 멀리하기도 했는데 책의 가치와 책 읽는 맛을 아직 다 모르는 너는 오죽할거냐? 이제라도 책의 가치를 알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스마트폰으로 바꾼 후 한동안 이미 등록된 전화번호는 친구로 알아서 등록해준다거나, 길가에서 낯선 누군가를 붙잡고 길을 물어보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찾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 예전 같으면 유로 문자메시지나 전화로 아이들과 소통하곤 했는데, 돈이 들지 않는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무척 좋았다.

또, 어찌 어찌 잊고 지낸 친구들이나 지인, 일 때문에 알게 된 사람들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간단하고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런지라 스마트폰의 부작용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도 와 닿지 않았다.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건 통제능력 혹은 조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문제일 뿐이라며. 나는 얼마든지 스스로 조절해 가며 쓸 거니 그런 문제는 없을 거라며.

그런데 내가 스마트폰의 부작용, 그 위험에 처했던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까지 멀리하면서 말이다. 어쨌건 이 가을 예전처럼 잠깐의 틈에도 책을 열렬하게 붙잡고 있음은 내가 책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왔고, 언제든 책을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컴퓨터 같은 것들이 는 것 같다. 컴퓨터 같은 것들이 없어 그만큼 책을 가까이 하며 자랄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책은 언제든 기회만 되면 붙잡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책보다는 컴퓨터 등과 가까이 하며 자란 사람들에게도 책이 그런 존재일 수 있을가.

그간 컴퓨터로 인한 책읽기의 부제를 종종 걱정하곤 했는데 그런 컴퓨터보다 훨씬 접근이 쉬워진 스마트폰의 정보와 함께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는 세대들에게 책은 무엇일 수 있을까? 취업포털 인쿠르트가 직장인 388명을 대상으로 조사, 10월 말에 발표한 '우리나라 직장인 한달 독서량 1.8권이 아쉽기만 하다. 지난 해 같은 조사 '2.6권'이라는데 말이다. 문득 지난 10월말 낯선 사람들인데도 '책'만으로 선뜻 이야기를 나눴던 어떤 그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엇이든 읽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스마트폰은 있지만, 스마트폰으로는 책을 읽어 본적은 없어요. 읽어보려고 했는데, 책을 읽으려고 조작하는 것이 도리어 불편하고, 또 눈도 많이 아프더라고요. 전자파가 많이 나온다던데 맞나 봐요. 앞으로도 스마트폰으론 책을 읽진 않을 거예요. 지식만 쌓자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잖아요? 전, 길을 가며 스마트폰 하고 그러는 거 좀 그래 보이더라고요. 위험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길을 가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스마트폰 하는 거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전화 받는 것 빼곤 스마트폰 잘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당연하게 알고 그대로 따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요즘 참 많이들 그러는 것 같은데, 제 생각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좀 무책임한 것 아닌가 싶어요." (10월 30일 홍제역에서 책을 읽던 어떤 여자와의 이야기 중에서)


마음의 고향 제1권 - 순선안심법문 - 청화 큰스님 법문집

청화 지음, 상상예찬(2008)


태그:#책읽기, #독서, #지하철, #스마트폰,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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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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