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을 벌이는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가족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 이 땅에서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10월 5일 제주도에 모였다. 이들의 발걸음에는 '생명평화대행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뭍으로 올라 서울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 있다. 이제 막바지다. 지난 29일 평택을 출발해 오는 11월 3일 서울광장에 도착하는 마지막 일정 참가자들이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
지난 4일 시작된 2012 생명평화대행진이 이번 주 토요일(3일) 서울시청광장에서의 문화제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한 달 이상의 기간 동안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국 38개가 넘는 지역을 거치며 곳곳의 소외된 사람들과 만날 계획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일정을 보면 "이 좁은 나라에 참 소외된 사람들이 많구나"하는 느낌과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이렇게 힘든 방법을 동원해야만 하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과 실정에 시달리는 이 땅의 민초들에게 대선후보들은 다른 세상을 약속하며 희망을 가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공약과 각종 제안들이 떠들썩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빼앗기며 고통 받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의 요구에 대한 반영이 없으니 구체적인 해법 제시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출정 선언문 중 한 부분이다. 이는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이렇게 힘든 방법을 동원해야만 하는가"하는 의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으로 다가온다. 즉, 기존의 정치세력과 정치적 절차에 의해서는 소외된 사람들이 대의(대변)되지 않기에 허용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과 수단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의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2003), 평택미군기지이전(2006),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2007), 한진중공업 희망버스(2011) 등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모두 별다른 이견이 없었거나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안이었으나 대중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사건들이 무수하다(소위 정치권의 '의견 일치'와 대중들의 '의견 불일치'의 대비).
이에 대중들은 정치적 영역에서 자신들이 제대로 대의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외감(그로 인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느끼게 되었다. 2008년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여야 정치인 모두가 대중들에 의해 집회참석 및 발언이 거부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소외감(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한 표현이었다. 이러한 소외감은 치유되지 않고 계속 강화되어 안철수 현상 등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정당정치의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사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한마디로 '진정한 대표(대의)'를 찾는 시도였다. 주지하다시피 87년 운동의 대표적인 구호는 '직선제 쟁취'였다. 그런데 최근의 문제는 대통령이 국민이 뽑은 사람이 아니어서도 아니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뽑은 사람들이 아니어서도 아니었다. 2000년대 대중들이 본 것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진정한 대의기구'가 대중을 진정으로 대의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더 많은 민주주의, 사람이 하늘이 되는 길!소외된 사람들이 대의되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정치적 영역에 반영할 수 있는 길(①대의자들을 통제하거나 대의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 ②더 나아가서 대의자를 통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이 보다 넓게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더 많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2012 생명평화대행진이 꿈꾸는 세상도 바로 그런 곳이다. 즉, 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출정선언문은 참가자들이, 아니 이 땅의 소외된 민초들이 살고 싶은 세상을 "쫓겨나고 내몰리는 모든 사람들과 뭇 생명들이 하늘이 되는 세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소외된 사람(民)이 하늘(主)이 되는 곳이란 바로 민주(民主)주의가 구현되는 곳이다.
'대의자들을 통제하거나 대의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가장 강력하고 기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은 바로 선거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정체(政體)에서 권력의 주체인 국민이 정책결정자인 정치가들에게 그들의 공공정책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실현된다.
유권자는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선거에의 참여를 통해 특정정책을 실행한 정치집단에게 책임을 묻고,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이 교체되거나 영향을 받아 국민에 대해 보다 책임있는 정치를 구현하도록 하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중요한 작동기제이다. 이렇기에 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부는 최소한 국민 다수의 의사가 폭넓게 수렴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최근 연장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투표시간은 무려 41년 전부터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되어 있다. 41년 전에는 오후 6시에 투표를 종료해야 투표관리를 원활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산망이 갖추어져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교통로나 운송수단이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산망과 교통로, 운송수단 등이 발달하여 굳이 오후 6시에 투표를 종료해야 할 실질적 필요성이 없다. 반면에 41년 동안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비정규직과 혼자 가게를 운영하기에 일과시간에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영세한 자영업자가 급증했다. 정규직 회사원들도 근무시간이 길어졌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투표시간만으로는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정치학회가 제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답변이 무려 64.1%에 이르렀던 것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를 포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바빠서 투표를 못 했다'는 응답이 55.8%에 이르게 나왔던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없어서 투표를 하지 못 했던 국민들이 투표시간의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주민은 변호사입니다.